이렇게 추억과 감성 넘치는 거리를 없앤다니요?
이렇게 추억과 감성 넘치는 거리를 없앤다니요?
  • 정다은 기자
  • 승인 2019.04.18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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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동네 마실하기] 청계천공구거리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 하겠다.” 서울 도심 재개발 논란과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의 얘기다. 서울시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을 도심전통산업과 을지면옥 등 노포 보존 측면에서 재검토하고 올해 말까지 관련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재산상의 손실을 보게 되는 토지주들은 재개발이 보류되면서 반발하고 있고, 쫓겨날 위기에 몰린 공구상가 등 임대업자들은 재개발 반대를 외치고 있다.

 

청계천, 을지로공구거리의 역사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다. 조선 중기 이곳은 기술 장인들의 집성촌이었다. 궁궐과 관공서가 가까워 납품할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이 모이며 자연스레 집성촌이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그대로 보존되다가 1968년 세운상가가 세워져 지금의 모습이 갖춰졌다. 오래된 식당들이 골목골목 들어서 있고 아직도 빈티지 오디오 기기를 사거나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세운상가를 중심 양옆으로 펼쳐진 골목 일대를 청계천공구거리라 부른다. 그리고 청계천을 건너 펼쳐지는 곳을 을지로공구거리라 한다. 현재는 재개발 때문에 공사장이 돼버렸다. 삭막하다. 다시 살아날 을지로공구거리를 기대하며, 아쉬운 대로 청계천공구거리만 탐방에 나섰다.

 

종묘에서 봤을 때 세운상가의 왼편에 비교적 상점이 많다. 바쁘게 오고가는 오토바이와 손수레는 시장의 분위기를 한껏 살려준다. 대로변에는 주로 아크릴, 디스플레이, 파이프와 같은 가공 가게들이 많다. 안에서는 아크릴을 자르고 덧대는 등 가게라기보다는 거의 공장 분위기가 난다. 뭐 가게 겸 공장이라 보면 되겠다. CNC가공, 폴리카보네이트, 디스플레이, 테프론‧PE 제작, 과학실험기기까지 다양하게 제공된다. 이곳에선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실제로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만들어 러시아 로켓에 실어 쏘아 올렸던 송호준 작가는 어디에서도 구하지 못한 스프링을 이곳에서 10분 만에 만들어줘서 인공위성 제작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없는 게 없고, 못 만드는 게 없는 청계천공구거리다.

 

파이프만 전문으로 파는 곳에서 히터와 열풍건조기 등도 제조를 해준다. 각종 볼트와 너트, 못, 드라이버, 망치, 톱 등도 크기 별로 용도 별로 다양하게 진열돼있다. 작은 가게 안에서 옷과 음식이 아니라 묵직한 공구들이 천장까지 진열돼있으니 위엄과 묵직함이 느껴진다. 마치 공구박물관을 연상시킨다. 중고 공구들을 고쳐 판매하는 가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골목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마치 만물상을 연상케하는 공구가게들이 넘쳐난다. 자석 전문 가게도 있다. 네오디움자석, 고무자석, 사마륨자석, 알리코자석 등. 주문제작도 가능하다. 그 옆엔 테이프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도 있다. 다양한 테이프와 접착제를 판매한다. 액체타입, 스프레이타입, 줄타입 등 그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이 외에도 배터리, 안테나, 컴퓨터부품, 기계축, 센서, 실리콘, 우레탄 등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게가 많다. 때문에 청계천공구거리는 한 개 한 개 가게를 따로 보지 않는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구거리의 여러 군데 가게를 들려야 한다. 

 

청계공구거리의 가게들은 하나의 시스템,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탐방을 하다 보니 거리엔 아무래도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무거운 짐을 자르고, 붙이고, 옮겨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분야의 일을 하지 않는 이상 청계천공구거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구거리라고 해서 위험하고, 컴컴한 분위기가 아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가게가 있는가 하면, 완전 현대식 건물로 새롭게 단장한 가게도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골목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오랜 세월이 엿보이는 가게들, 간판 따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좁은 골목 안에는 상인들이 애용하는 숨겨진 맛집도 많으니 찾아가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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