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오늘 밤에 어울리는
[신간] 오늘 밤에 어울리는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04.23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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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은 지음/ 창비

 

2014년 문예중앙신인상을 통해 등단한 이래 기묘하고 새롭다는 평을 받아온 젊은 작가 이승은의 첫번째 소설집 '오늘 밤에 어울리는'이 출간됐다. 

2018년 여름까지 집필한 작품들을 묶은 이번 소설집은 “세련되고도 정제된 방식의 개성적인 울림”을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등단작 「소파」와 미발표작 「찰나의 얼굴」까지 총 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우리를 “타인이 되어보는 연습으로서의 독서가 아니라 타인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는 독서”(해설, 양경언)로 이끌어가는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면 주어진 삶 너머의 불안을 그대로 품은 채 우리의 삶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스스로 깨닫게”(추천사, 정영수) 만드는 기묘한 서사 속에서 이승은은 이해와 오해의 사이를 헤매는 인간관계의 모습과 청년들이 체감하는 불안하고 답답한 현실을 감각적이고 영리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오늘 밤에 어울리는'의 소설들은 종전의 소설들과는 다른 방식의 독서를 요구한다. 작품들은 마치 소극장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정갈한 식기들과 우아한 분위기가 흐르는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 혹은 네 사람이 등장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얘기를 나누면서 소설이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큰 갈등을 겪고 있다거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시종일관 평범하고 평온한 대화를 이어나가지만 “그들에겐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긴장”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풍부한 표정을 지어보이거나 적극적인 행위로 사건을 끌어가지 않는다. 독자는 작가가 마련한 서사의 공간 속에서 인물들을 ‘목격’하면서 상황을 유추해야 하며 소설은 끝까지 독자들이 진실을 쉽게 파악하도록 친절하게 돕지 않는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만큼의 거리감을 느끼며 그들의 긴장된 상태가 남기는 윤곽만을 좇는 경험”(해설)이 바로 이승은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우리의 뒤틀린 관계와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지 5년 만에 묶인 이승은의 '오늘 밤에 어울리는'에선 이처럼 최근에 만나본 다른 어떤 소설보다도 고유한 목소리가 들린다. 소설은 인물들이 애매한 상황과 답답한 현실에서 헤매는 모습을 관람하게 함으로써 독자를 고민에 빠뜨린다. ‘내가 숨죽여 앉아 있는 관객 이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소설 속 인물들과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 이승은의 소설은 삶의 불안과 혼란이 무엇이라고 섣부르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건조한 말투로 재현하면서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서사적 공간과 평범한 등장인물들을 마련한다. 이 무대를 보는 동안에 독자는 이승은의 소설이 바로 지금 시대가 겪는 불안과 혼란을 본뜬 모형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문학이 새로움을 모색하는 요즘, 첫 소설집에서부터 자기만의 방식을 분명하게 밀고 나갈 줄 아는 소설가의 이와 같은 뚝심이 자못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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