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無’, 정책 ‘無’ 외화내빈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가짜”
“예산 ‘無’, 정책 ‘無’ 외화내빈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가짜”
  • 한성욱 선임기자
  • 승인 2019.04.24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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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1회

재미있지 않다면 비극일 것”이라고 말한 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21세 때 루게릭 병에 걸렸다.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절망보다 적극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생전 “더 열심히 살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장애가 당신이 성취하려는 무엇인가를 막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장애가 돼선 안 된다.” 76세에 세상을 떠난 천체 물리학자 호킹이 남긴 족적은 세계의 모든 장애인에게 위대한 가르침을 남겼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해 학창시절 스포츠 광이었다. 그의 꿈은 마도로스였다. 활달한 성격이었던 그는 1980년 해병대 수색대에 입대했다. 그곳에서 수영, 스킨스쿠버, 낙하산 등을 배웠다. 제대 후 복학한 1983년 8월 행글라이더 동호회 활동 중 경주 토함산에서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를 당해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차라리 깨끗이 죽자고 결심하고 사랑하던 여인도 떠나보냈다. 하지만 5년간 칩거하면서 이대로 살아선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섰다. 1988년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전산과에 갔다.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장애인을 만나면서 장애인 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스티븐 호킹과 헬렌 켈러가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장애인차별법이 논란이다. 이와 관련 박 대표는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장애인 차별법이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차별’을 좀 더 구체화해서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때마침 지난 20일은 39주년 장애인의 날이었다. “1989년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개정돼 매년 4월 20일 국가가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장애인을 6등급 체계와 의학적 기준으로 묶어 놓는 체계가 문제다.”

박 대표는 2010년부터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위해 투쟁을 벌여왔다. 장애인등급제는 올 7월부터 단계별로 폐지될 예정이다. 박 대표는 “그마저도 한꺼번에 폐지되는 게 아니다”며 “단계적 돌봄의 영역과 이동의 영역, 소득기준의 영역 등을 고려한 맞춤형서비스”라고 지적한다.

박경석 대표를 제17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마로니에공원 다목적홀에서 만났다. 이날은 2박3일 동안 ‘차별에 저항하라’, ‘사다리 잇다’를 표제로 열린 영화제가 폐막하는 날이었다. 장애인인권과 복지에 힘 써온 박 대표로부터 장애인차별법과 등급제 폐지, 정부의 장애인복지법, UN장애인권리협약, 장애인수용시설 문제, 복지예산 문제 등을 짚어보았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

 

- 인권영화제가 폐막됐다. 소감이 어떤가.

▲ 올해로 벌써 17년째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영화를 즐겼던 날이었다. 막상 끝나니까 아쉽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서 시민들이 좀 더 장애인 인권에 대해 배려해주고 생각해주고 앞으로도 많이 봐줬으면 한다. 장애인의 삶과 투쟁에 대한 영상을 더 많이 만들어 갈 것이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사회적 약자인 500만 장애인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 행사 중에 송국현 씨 추모행사도 열렸는데.

▲ 그는 20대 때 장애를 앓으면서 지역 내 장애인시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30여년을 살다보니 50대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고 정부가 활동보조서비스라는 개인별 지원서비스제도를 만들었는데, 이 제도를 통해 송국현 씨는 이제는 지역사회에 나가서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후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장애인등급제였다. 그는 3급 장애자였고, 활동보조서비스 적용대상은 2급 장애인에게만 해당됐다. 여기서 탈락했다. 긴급 재심사를 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어쩔 수없이 집에서 기다리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그를 교회의 신도가 데리러 오기 전 새벽에 집에 화재가 나는 바람에 참화를 당했다. 송국현 씨는 정부 정책을 믿고 새 삶을 찾기 위해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왔다가 화를 당한 것이다. 정부로부터 충분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았어야 함에도 불평등한 장애등급 커트라인에 걸려 일어난 불의의 사고다. 복지부에 책임을 묻고 싸웠다.

 

- 음성적 장애인 차별이 문제 아닌가.

▲ 맞다. 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강제력이다.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렸다면 강제로 부과금을 매기는 것처럼 법의 효력이라는 것이 있다. 장애인차별법(장차법)도 법의 효력과 강제력이 있는가 하는 점에서 여전히 숙제다. 차별법도 다분히 추상적이다. 이제 ‘차별’(差別)이라는 단어를 넘어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법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제점과 관련 진정도 했고, 확인하고 권고해왔다는 측면에서 여러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권고에만 머물고 있는 상태이고 강력한 효력이 없다. 법적으로 차별을 개념화하고 법률로 명문화해야 하지만, 그 법이 얼마나 강제력과 실현성이 있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과정이 필요하다.

 

- 39주년 장애인의 날, 장애인등급제가 도마에 올랐다.

▲ 1989년 심신장애자 복지법이 개정되면서 39년째 장애인의 날이 지났다. 지난한 역사를 간직한 채, 매년 4월 20일이면 국가가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을 6등급 체계로 가두고, 의학적 기준을 만들어 묶어 놓은 체계도 문제다. 이미 장애문제는 사회공동체의 문제이자 윤리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문제를 개인의 일로 치부한 세월이 39년이나 됐다. 2010년부터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외쳐 왔고, 지난 5년 동안 광화문 지하철역 부근에서 장애인등급제 폐지투쟁을 해왔다. 정부가 올 7월부터 장애인등급제를 단계별로 폐지한다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어떻게 바뀌고 문제점은 무엇인가.

▲ 일괄폐지는 아니지만 단계적으로 돌봄의 영역과 이동의 영역, 소득기준의 영역 등을 심사한다. 등급과 관계없이 개인과 필요에 의한 맞춤형 서비스다. 1~6등급을 체제가 아닌 사회적 환경 등 종합적인 전수조사를 통해 필요한 서비스제도로 바꾸겠다는 거다. 기존의 체계보다 좀 복잡한 요소들이 많이 요구된다. 7월부터 등급제가 사라져 장애인에게 해방감을 주는 것 같지만, 우리 전장연은 이것을 장애인등급제 ‘가짜 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면 사회적 변화와 법적기준에 따른 예산반영이 제대로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이 된 다음에 등급제를 폐지해야 맞다.

<2회로 이어집니다.>

 

박경석 대표는…

1960년 대구 출생
1991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석사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장애인 인권운동가
노들장애인야학교 교장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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