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제도는 마련되는데 예산은 없다는 얘긴가.

▲ 그렇다. 우리나라는 세계 11위 경제대국이지만, OECD 30개 국가 중에 장애인 복지예산은 최하위다. 경제 등 돈의 규모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음에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복지예산은 부끄럽게도 꼴찌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은 충분히 있다. 지금까지 모든 역대 정권들이 그랬듯이 장애인 같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지역 공동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환경을 조성하는데 투자를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이런 현상이 매번 반복되고 있다.

 

- 정부가 장애인복지법을 내놓았는데.

▲ 사실 복지법이라기 보다 장애인 ‘탈 시설’(脫 施設) 법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과거의 박근혜 정부 때보다는 굉장히 진보적인 제도다. 박근혜-이명박 정부는 탈 시설 개념조차 아예 거부했다. 문재인 정부 이전까지 그런 정책이 전혀 없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맞춤형 복지정책이 도입된 것이다. 그동안 감옥 같은 장애인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와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돕지 않았고 책임을 방기해 왔었다. 지난 박근혜-이명박-노무현-김대중 정권도 장애인거주시설 같은 지원이 없었다. 그랬다가 달라진 게 바로 ‘탈 시설’ 정책이다. 예산을 확보하고, 지원정책을 세웠다는 점에서 지난 정권과 다르다. 하지만 아쉽게도 예산이 굉장히 미미하게 반영되었고 기대에 미치지 못해 있으나 마나한 정책에 불과하다.

 

- ‘탈 시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 ‘탈 시설’은 장애인들이 대형거주시설을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개인주거와 장애인 개인별 지원서비스 등 인권이 보장되는 곳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와 같이 장애인을 비인간적이고 집단적 통제방식으로 수용하는 식으로 문제를 풀기 어렵다. 이제는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지 말고 지역사회로 나오게 해야 한다. 공동체와 소통하며 동참하고 자유롭게 살아 갈 수 있도록 국가와 시민이 협조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전장연은 장애인 거주시설 폐지법을 만들 것을 주장한다. 국가가 기존의 30인 이상 대규모 장애인시설을 폐지하고, 장애인 복지정책에 따른 예산증액과 함께 유엔이 정한 보편적 삶에 대한 지원책과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 장애인 예산정책이 엇박자다.

▲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기획재정부가 모든 돈줄을 틀어쥐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개혁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 사회적 환경변화에 따라 맞춰져야 할 예산들을 반영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보다 올해 예산을 많이 반영했다고 하지만, 장애인예산은 다른 거대사업에 비하면 25%만 반영됐다. 예산총액 2조 2000억 원에서 5000억 원 늘어난 2조 7000억 원에 불과하다. 외형상은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5000억이 늘게 된 조건들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장애인의 삶을 질적으로 높일 진정한 복지예산은 아예 빠져 있다. 증액된 5000억도 최저임금 때문이다. 개인보조 활동서비스 시간제 노동자의 시급인상에 따라 증액된 예산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장애인들의 삶과 개인생활에 영향력을 끼치는 예산은 없다. 31년 만에 변화를 가져온 장애인등급제 폐지, 쥐꼬리 예산만 반영했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다.

 

- 장애인거주시설에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 지난 2월22일, 또 다시 장애인거주시설 범죄사건이 일어났다. 사회복지법인 성심동원 산하 성심재활원에서 생활재활교사가 거주인간 폭행을 지시한 뒤 이를 촬영하면서 욕설과 조롱을 일삼았다. 그리고 해당 영상을 동료들과 돌려봤다. 부산의 한 사회복지법인에서도 재활원과 요양원에 있는 무연고 시설 거주인들을 병원에 강제로 입·퇴원을 반복해가며 돈벌이를 해온 점도 밝혀졌다. 시설 거주인에 대한 폭행과 학대, 금품갈취, 강제노동 등으로 세상에 알려진 대구시립희망원은 7년 동안 309명이 사망해 공분을 샀다. 전장연이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 제정과 서명운동을 하고 있는 이유다.

 

- 처벌도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거주인에 대한 인권침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장애인거주시설의 감옥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다. 인권침해를 저질렀던 재활교사가 단순히 사직서를 제출하거나 개인적 처벌만 받는 등 대충 무마되어서는 안 된다. 즉각적인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기본 사항이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의 인권침해와 시설 비리의 상징적 사건이었던 에바다농아원과 프리웰((구)석암재단), 대구청암재단, 성람재단, 인강원, 남원평화의집, 대구시립희망원, 충주 성심맹아원 등 지긋지긋한 수많은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 국가가 방조한 꼴 아닌가.

▲ 이런 사건은 개별적인 우연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범죄적 환경에서 필연적으로 발생되는 사태다. 사회복지법인 성심동원은 산하에 장애인특수학교 성심학교와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성심보호작업장 그리고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성심요양원에 거주인 30명과 종사자 22명이 있고, 발달장애인거주시설 성심재활원에는 거주인 81명, 종사자 48명을 두고 있다. 문제가 발생한 성심재활원은 거주인 81명이 집단적으로 살아가는 거대 장애인거주시설이다. 정부는 2011년 장애인복지법 제59조 제4항에 따라 장애인복지법을 개정해 장애인거주시설 정원을 30명 이하로 제한했다. 그러나 성심재활원은 예외시설로 구분되어 지금까지 발달장애인 81명이 거주하는 거대 시설로 유지되고 있다.

 

- 정부의 탈 시설 정책도 주먹구구식이라는 지적이다.

▲ 보건복지부는 성심재활원 거주 발달장애인 등 81명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고 탈 시설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성심재활원을 폐쇄해야 한다. 여기에 30명 정원 중증장애인 요양시설 성심요양원 거주인에 대한 탈 시설계획도 수립해 지원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성심요양원을 폐쇄할 것도 보건복지부에 요구한다. 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회복지법인 성심동원의 이사진 해체와 나머지 시설에 대한 공적운영과 자산의 국고환수도 필요하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중중장애인이 공존하는 대책도 필수적이다.

 

- 대안은 없나.

▲ 언론에 충격적으로 보도가 되지만 석암재단, 성람재단, 인화원, 자림복지재단, 인강재단, 인천해바라기, 남원평화의집, 마리스타의집 등 장애인거주시설범죄는 끊임없이 벌어져왔다. 비리와 횡령, 인권침해 등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어떤 조치도 않고 거주인에 대한 대책을 민간에 전가해왔다. 올해 초 정부가 ‘지역사회 통합 돌봄(커뮤니티케어) 사업’으로 장애인 탈 시설과 자립생활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실현할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7월부터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에 돌봄 지원영역의 공적서비스로 거주시설 포함을 약속했지만 예산도 없이 장애인에게 거주시설 입소 정책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3회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