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 봄의 시작, 그들은 밤새 술에 취한다
겨울의 끝 봄의 시작, 그들은 밤새 술에 취한다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04.2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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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북유럽 국가인 스웨덴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지만 계절과 기후에 대한 표현 중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이라는 말은 스웨덴의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러나 스웨덴의 기후를 한 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토 남북의 길이가 1800km가 넘고, 그 중 북쪽의 상당부분은 북극권에 속하기도 하지만, 수도인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비교적 온난한 연중 기후를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이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 왕국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사실이다. 스웨덴을 잘 모르는 아시아 사람들 뿐 아니라, 같은 유럽에 속한 다른 나라, 그리고 스웨덴 사람들도 자신들을 ‘길고 어둡고 추운’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다.

 

웁살라 발보리 전에 열리는 유럽 청년들의 핸드메이드 보트 대회. (사진 = 이석원)
웁살라 발보리 전에 열리는 유럽 청년들의 핸드메이드 보트 대회.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이 ‘길고 어둡고 추운’이라고 표현되는 이유는 11월부터 3월에 이르는 5개월 동안의 겨울 때문이다. 4계절이 뚜렷하지만 겨울의 비중이 크다. 게다가 상당수 스웨덴 사람들은 10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도 겨울로 인식하니 1년 중 절반이 겨울인 셈이다.

10월 중하순이 되면 급격히 짧아진 낮의 길이를 실감한다. 그러다가 12월 중순에 이르면 하늘에 해가 떠 있는 시간이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6시간에 불과하다. 해 뜨기 전의 어둠과 해 지기 전의 어둠까지 더하면 그나마 5시간도 안 되는 셈이다.

게다가 여름이 건기이고 겨울이 우기인 스웨덴의 기후는 어둠을 배가시킨다. 해는 떠 있지만 날이 흐리거나 눈이 오는 날이 많아 그나마 짧은 해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또 최대 도시인 스톡홀름도 이른바 시티 라이트라고 하는 도심의 불빛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와 비교해 현격히 적다. 요란한 네온사인이나 대형 건물의 휘황찬란한 조명은커녕 일반 가정의 조명 조도도 매우 낮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거주지가 밀집하지도 않은 탓에 밝은 도심의 불빛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겨울 스웨덴의 평균 기온은 영하 1도에서 영하 10도 정도다. 북부와 남부의 차이는 크다.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키루나(Kiruna)의 경우 한 겨울 최저 영하 40도까지도 내려가고, 평균도 영하 10도 이하지만, 남부는 한 겨울에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날도 많지 않다. 최근 3년간 스톡홀름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 간 날이 매년 10일을 넘지 않았을 정도다.

 

발보리 때 불타오르는 거대한 장작. (사진 = 이석원)
발보리 때 불타오르는 거대한 장작. (사진 = 이석원)

스웨덴이 춥다고 느껴지는 것은 눈과 얼음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대체로 각 가정의 난방이 높지 않아서다. 아파트는 대체로 실내 온도가 섭씨 20도 이하로 맞춰져 있다. 단독 주택도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바닥 난방이 아니기 때문에 따뜻한 느낌이 더 적다. 실내에서도 가벼운 겉옷을 입는 것이 일상이다.

5개월 정도 이어지는 겨울 동안 급격히 적은 일조량 때문에 비타민 D 부족 현상이 많고, 또 우울증 등 심리적 불안정 상태를 겪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겨울이면 지중해를 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와 그리스 등으로 장기간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을 이기기 위한 스웨덴 사람들의 노력은 치열하다. 단지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까지 인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난다면,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백야의 계절 여름이 다가온다면, 스웨덴 사람들이 흥분하고 열광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매년 4월 30일, 스웨덴 사람들은 마침내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을 끝내고 찬란한 여름을 준비한다.

4월 30일을 발보리매소아프톤(Valborgmässoafton). 줄여서 ‘발보리(Valborg)’라고 부른다. ‘발부르가(영어명 발푸르기스)의 밤’이라고도 불리는 이날은 영국 웨식스 출신으로 독일의 수녀원장을 지낸 성녀 발부르가(Walburga)가 교황 하드리아누스 2세에 의해 성인의 품에 오른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스웨덴의 명절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명칭은 다르지만 스웨덴 뿐 아니라 독일과 네덜란드(Walpurgisnacht), 핀란드(Vappu), 에스토니아(Volbriöö), 리투아니아(Valpurgijos naktis), 라트비아(Valpurģu nakts), 체코(Valpuržina noc) 등에서도 명절이다.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길고 어둡고 추운 겨울’을 끝내는 날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발보리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밤새 먹고 마시며 여름을 기다린다. (사진 = 이석원)
발보리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 밤새 먹고 마시며 여름을 기다린다. (사진 = 이석원)

이날은 각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된다.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은 일찍부터 함께 모여 먹고 마신다. 그러다가 마을의 공터에 모여 합창단의 노래 공연을 듣고, 오후 4시 무렵 공연이 끝나면 합창단과 마음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손에 횃불을 들고 이동한다.

마을 한 곳에는 발보리매소보렛(Valborgmässobålet)이라고 불리는 장작더미가 쌓여있다. 횃불을 든 사람들은 한 사람 씩 겨우내 잘 마른 나무가 높이 쌓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다. 이내 무섭게 타오르는 커다란 장작더미에 사위가 환하게 밝아온다. 그 크고 화려한 불더미를 보면서 사람들은 긴 겨울이 마침내 끝나고 찬란한 여름이 다가오는 것을 기대한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행사 후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먹고 마신다. 먹고 마시는 일은 밤새도록 이어진다. 평소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걸 꺼리는 스웨덴 사람들도 이날만은 누구든 흠뻑 취하고 함께 춤으 추며 밤을 샌다.

대학 도시로 유명한 웁살라(Uppsala)의 발보리는 젊은이들의 축제로 유명하다. 본격적인 발보리 행사가 시작하기 전 오전부터 유럽 각국의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핸드메이드 보트 대회도 열린다. 도시의 중심을 흐르는 퓌리스 강에 종이와 스티로폼 등으로 만든 기괴한 보트를 띄우고 발부르가의 밤을 축하한다.

그렇게 모인 유럽의 젊은이들은 웁살라 대학교 일대의 잔디밭에서 밤새 술을 마신다. 물론 요새는 술로 인한 사고나 사건도 꽤나 많이 발생한다. 스웨덴 경찰들이 테러만큼이나 긴장하고 신경을 쓴다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길고 혹독했던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는 발보리는 1년 중 스웨덴이 가장 흥청망청하는 날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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