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거리의 변호인’ 권영국 변호사-1회

“돈 벌기 싫어서 데모한다고? 변호사까지 하면서 왜 데모하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나?”

경상도 출신인 권영국 변호사는 고등학생 시절까진 데모를 혐오대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데모는 공부하기 싫은 대학생들이나 하는 것.” 그러나 대학 1학년, 가족과 같았던 선배가 백골단의 곤봉에 맞아 얼굴에 피를 흘리며 끌려가는 것을 보며 그동안의 사고체계가 무너졌다. 공부하기 싫어 데모하는 게 아니라 데모하기 싫어서 차라리 공부하고 싶었다는 그의 심정은 80년대를 진실 되고 투철하게 살아온 지식인들의 한결 같은 변이다.

 

권영국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

변호사 생활 이전이나 이후나 체포와 감금으로 점철된 그의 삶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깡패 변호사’ 이미지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변호사가 경찰에 연행돼 가는 모습은 방송이나 신문에 늘 포착됐다.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쌍용차 사태 등 굵직굵직한 ‘현대판 시국 사건’에 거리의 변호인으로 앞장서 있었던 까닭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한 촛불항쟁과 민주주의도 그에겐 여전히 미완의 기획으로 남았다. 촛불항쟁 이후 권력감시가 강화된 듯하지만 민주주의의 ‘실체’는 드러난 적 없다는 게 권 변호사의 얘기다. 여전히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이지 더 깊이 전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장인 권 변호사는 우리사회 약자들을 위해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해왔다. 공신력 있는 로펌의 유혹을 뿌리치고 민주노총 원년 법률원을 설립했던 그는 그동안 가족의 만류에도 노동변호사-인권변호사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김용균 법’ 관련해서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체포와 연행 등 이런 저런 이유로 권 변호사의 투쟁 대상은 역시 검찰일 수밖에 없다. 검찰 권력은 누구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권 변호사에 따르면 검찰은 거의 모든 정보를 공유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자신들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권력유지를 위해 수사를 좌지우지 한다.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자기 피해를 더 이상 호소할 데가 없어진다. 불기소 내려버리면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권력을 계속 좇아서, 거기에 줄을 대서,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가버린다. 굉장히 잘못된 것인데, 거기에 병목처럼 서 있는 게 검찰이다. 검찰은 처벌이 불가능하다. 자신들이 선별하는 위치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힘과 권력 있는 사람은 검찰과 유착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검찰개혁은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고 권 변호사는 시민단체의 구호를 넘어선 다른 방식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야인이었던 그의 심경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권 변호사. “판결이 잘못을 정당화시켜주는 작용을 하겠구나 싶어서 사법정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고 탄식하며 한편으로는 제도권 정치에 성큼성큼 다가서고 있다.

권 변호사는 “개별소송사건으로 뭔가를 바꿔보려고 노력한다는 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얼마 전부터는 제도정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제대로 사회를 바꾸려고 해도 결국 제도정치에 들어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의구심을 주변 사람들이 갖게 마련이다. 그런 의심들이 저를 짓누르더라도 정치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신의 정체성에 벗어나는 현실정치를 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다음은 권영국 변호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활동 무대를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겼다. 근황이 어떤가.

▲ 주로 지방에 있고 요청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간다. 지금 중요하게 대두되는 게 환경 문제다. 주로 지방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해서 각종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것 아니더라도 지역의 정치를 바꿔야한다는 생각에 지역사회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 지역 현안을 지역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서울-수도권 현안과 연계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 제 내공이 좁아서 아직 거기까지는 무리인 것 같다. 그런데 지역 문제를 겪어보면 수도권과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사람의 문제다. 폐기물이나 태양광발전소 문제로 지역 주민들은 환경권과 생활권을 침해받는다. 안타깝게도 지역이 중앙과 공조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지역운동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2016년 경주로 내려갔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 2014년 11월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다. 저는 당시 고등법원 소송대리인 중 한 사람이었는데 엄청난 절망을 느꼈다. 개별소송사건으로 뭔가를 바꿔보려고 노력한다는 게 허망하게 느껴졌다. 판결이 잘못을 정당화시켜주는 작용을 하겠구나 싶어서 당시 저는 사법정의에 대한 희망을 버렸다.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정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정치에 뛰어들기로 했다. 처음엔 서울 쪽 출마를 고민했다. 근데 용산참사를 주도한 김석기 씨가 경주에 출마한다는 얘기를 듣게 됐다. 김석기 씨가 국회의원 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겠다 해서 도전했는데 아쉽게도 패배했다. 이후 계속 경주, 포항, 대구 등 경북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다음 총선도 도전할 계획이다.

 

- 얼마 전 세월호 참사 5주기가 지났다.

▲ 안 그래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재판도 진행됐고 수사도 진행됐기 때문에 세월호 문제가 웬만큼 해결된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되돌아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너무 없다. 애초에 의심을 품었던 문제들이 명쾌하게 확인됐거나 해명된 게 없다. 5년 전 당시 침몰원인-침몰 이후 구조활동, 이 두 가지가 핵심 쟁점이다. 침몰 원인에 대해선 내인설과 외인설로 나뉜다. 선박 자체가 결함이 있어 배의 무게중심이 무너졌다는 내인설을 얘기하다가, 요즘은 또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은 게 아니냐는 외인설이 부각된다. 구조와 관련 정부가 사실상 직무유기를 했다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 구조 과정에서 책임져야 할 사람은 책임을 졌는가. 최말단 경찰이 형사책임을 졌다. 구조과정을 지휘했던 고위 인사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여기에 사건을 은폐, 조작하려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배 안에 있던 CCTV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특별조사위가 만들어졌을 때 처음부터 이걸 해산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조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했던 사실들이 지금도 드러나고 있다.

 

-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논란으로 대한민국이 여전히 시끄럽다. 법조인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나.

▲ 윤중천 씨는 건설업자면서 여러 가지 뇌물혐의와 횡령혐의가 있다. 당연히 구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장이 기각되는 것을 보면서 영장전담 판사가 어떤 기준으로 기각했는지 생각해봤다. 이 사건의 핵심은 김학의 전 차관 등 유력한 권력자들에게 윤중천 씨가 불법 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뇌물을 주고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일종의 성상납 등을 약점으로 이용한 것 같다. 여기서 특수강간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성상납이나 특수강간과 같은 사안들과 성격이 다른 혐의들로 영장청구가 돼 있다. 일반 경제사범과 같이 영장청구가 된 것이다. 이게 판단의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으로 윤중천 씨의 경우 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과연 어느 정도 수사에 협조했는지 알 길이 없다. 김학의 전 차관의 경우 청와대로부터 보호를 받았고, 검찰조직도 협력해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렸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윤중천 씨 수사가 탄력을 받는다면 김학의 전 차관과 당시 검찰의 조직적 은폐 문제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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