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 지음/ 글항아리

 

철학자 김영민은 지난 25년여 간 꾸준히 새로운 글쓰기와 철학적 개념들로 한국 인문학의 독특한 줄기를 이뤄왔다. 4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신간은 그간의 공부론을 집대성하고, 공부론의 실천을 통한 인간의 가능성을 가장 밀도 있게 담아냈다. 이 책의 주제는 제목에 드러나 있다시피 "집중"과 "영혼"이다. 말하자면 인간이 즉자적 동물성을 벗어나는 메타적 순간들을 살핀다. 공부의 목표에 "열중"하는 일에서 벗어나, 공부의 수행성을 다양한 각도로 "집중적"으로 살핌으로써 "영혼"이라는 삶의 내용을 모아내고 있다.

인문학의 토대는 무엇보다 문자학으로, 그 알짬은 ‘(새로운) 말을 배우는 일’이다. 그런 뜻에서 문학적 감수성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문학은 곧 문학’으로, 어쩌면 문학 혹은 문학스러운 것들은 철학이니 과학이니 하는 근엄한 인상의 신사들이 감히 내뱉지 못하는 말과 글을 쉼 없이 흘리면서 인간의 앎과 그 의미를 내내 드러내왔는지도 모른다. 모든 좋은 문학은 그 글쓰기의 의도를 벗어나 빛살처럼 사방으로 튄다. 논리나 추론보다 빠르고, 인정이나 공감보다 빠른 곳곳에서 독자들은 인간 및 삶의 진실과 마주친다. 진리와 의미 생성에서 문학스러운 표현들은 논문처럼 쥐어짜내지 않아도 오히려 생생하게 그 취지를 그려낸다. 그리하여 토대로서의 문학은 철학, 경제학, 법학 등 학문 전 영역에 스며들어 그 실천적 지평에서 공감의 기반을 만들어내며 배제와 편향으로 기우는 이론들이 해결 못한 빈곳들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세계는 이로써 조금씩 자기수정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인문학은 말 그대로 ‘사람의 무늬人紋’를 다룬다. 사람이 지금의 삶의 형식과 무늬를 얻게 된 내력을 살피고, 그것의 문제점을 비평하며, 아름답고 생산적이기까지 한 무늬를 얻을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자리에는 당연히 여러 ‘값price’을 가진 것들이 오간다. 그러나 값의 체계는 흘리는 미소에 감동할 뿐, 의식의 집중을 넘어 영혼을 생성해내는 인간적 가치의 세계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 사람은 값이 매겨지는 차원을 훌쩍 넘어서면서 고유한 무늬를 얻고, 이에 따라 주변의 값을 지닌 물건들은 ‘가치value’를 띠게 된다. 

따라서 인문학적 초심이란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 가치와 값 사이를 가르는 심연을 응시하면서 그 심연을 가로지를 도약을 앞둔 상태다. 그러니까 ‘아직 아무것도 아닌 것’이란 값이 매겨지긴 했으나 사람의 무늬 앞에서 아직 가치를 얻지 못한 상태 혹은 이제 막 얻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 

인문학적으로 되려면 공부가 필요하며, 인간의 자아가 문제의 중심에 놓이는 것이 그 핵심이다. 즉 공부에 형식이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자아의 형식과 창의적으로 길항하는 길일 것이며, 글쓰기가 에고의 죽음을 거쳐 생기는 지경을 바라보고자 한다면 우선은 “칠십 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추사식의 절차탁마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부와 수행의 눈은 특정 대상을 포착한다기보다 자기 자신의 에고를 깨고 비우고 넘어서려는 공력의 총체적 집중을 뜻한다. 그러므로 몸에 근착하고 있는 버릇을 손대지 않고서는 교양도 기도도 반성도 결심도 필경 도로 아미타불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정작 중요한 것은 ‘주체화’ 과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스스로 지며리 지워나가는 희생양적 삶이며, 자신을 ‘체제와 창의적으로 불화하는 삶의 양식’에 따른 제물로써 주변을 차분하게 정화하는 데 진력하는 삶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시속時俗과 제 생각을 닮은 ‘꼴’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의 사유와 실천을 바꿀 수 있는 ‘본’을 얻어낼 것인지 하는 선택에 있다. 자신의 생각과 이유와 변덕과 냉소와 허영을 죽이고 이 선택에 조응하는 좁은 ‘틀’ 속에서 살아갈 의지와 실천력이 있는지 하는 데 공동체적 삶의 알속과 요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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