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봉 정상, 뿌연 안개 속 그림처럼 펼쳐진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의 산하
삼도봉 정상, 뿌연 안개 속 그림처럼 펼쳐진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의 산하
  • 김초록 기자
  • 승인 2019.05.0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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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록 여행스케치] 산, 강, 계곡이 아름다운 레인보우 영동

자연환경이 깨끗한 영동땅은 천태산(714m), 민주지산(1241m), 삼도봉(1239m), 백화산(933m) 따위의 험산에 둘러싸여 있다. 이런 지형은 곳곳에 강과 계곡, 소, 폭포들을 만들어 놓았다. 더불어 지울 수 없는 역사와 체험거리, 배울거리는 여행의 의미를 더해준다.

 

노근리 사건 현장에 세워놓은 위령탑
노근리 사건 현장에 세워놓은 위령탑

금강산을 옮겨놓은 듯한 한천팔경(寒泉八景)

영동 여행은 경북 김천과 경계를 이룬 황간에서 시작한다. 먼저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노근리로 간다. 이곳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 동안 북한군 공격에 밀려 후퇴하던 미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현장으로 쌍굴다리 시멘트벽에는 기관총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어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짓누른다. 쌍굴에 피신한 피난민을 향해 미군이 무차별적으로 기관총을 난사해 수백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학살 현장인 쌍굴다리 옆에 그때의 참상을 잊지 말자는 평화공원이 조성돼 있다. 평화기념관과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위령탑, 인권과 평화의 뜻을 배우는 교육관 등이 들어서 있다.

 

1월류봉의 빼어난 풍광
월류봉의 빼어난 풍광

이번엔 해발 407미터의 산봉우리, 월류봉에 올라보자. 한천팔경의 하나인 이 기묘한 모양의 산봉우리는 동서로 6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고 있는데, 북쪽은 냇물을 따라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이고 남쪽은 완만한 경사 지대다. 한천팔경의 자태는 월류봉의 여러 다른 모습을 이르는데, 봄에 진달래와 철쭉이 홍조를 띨 때를 일러 花軒岳(화헌악)이라 했고, 3경인 龍淵洞(용연동)은 월류봉 아래의 깊은 沼(소)를, 4경인 山羊壁(산양벽)은 월류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가리킨다. 여기에 청학이 드나들었다는 청학굴이 5경, 6경은 범존암, 7경은 사군봉, 8경은 냉천정을 말한다. 1경에서 8경까지 마치 중국의 계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물줄기는 금강으로 흐른다.

월류봉 밑으로 흐르는 강물은 맑고 우렁차다. 오랜 세월 형성된 강변 백사장은 사철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강물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가르는 삼도봉과 민주지산에서 발원한 초강천의 한 갈래다. 초강천은 물이 맑고 차기로 유명한 물한계곡을 이루고 다시 추풍령 계곡물과 만나 월류봉으로 흘러든다. 월류봉 아래에는 우암 송시열이 머물렀던 한천정사가 있다. 송시열은 병자호란 직후인 32세 되던 해부터 한천정사에서 많은 날들을 보냈는데, 아침마다 월류봉 중턱의 샘까지 오르내렸다고 한다.

 

문수전에서 본 훤칠한 산줄기와 깊은 계곡
문수전에서 본 훤칠한 산줄기와 깊은 계곡

봄이 찾아온 석천계곡과 물한계곡

월류봉에서 국도를 빠져나오면 석천계곡이 이어진다. 수림이 울울한 계곡길은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데, 이 길은 반야사(般若寺)까지 이어진다. 석천계곡 가에 오두마니 들어선 반야사는 아담하고 운치 있는 사찰로 신라 성덕왕 19년(720년) 상원 스님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경내에 서 있는 삼층석탑과 배롱나무 2그루가 절집 특유의 고요함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대웅전에서 맞은편 산비탈을 바라보면 호랑이 모양의 자국이 보이는데 신비로움이 감돈다. 절집 옆으로 난 석천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문수전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올라앉은 문수전은 백화산의 기개를 온몸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다. 남북으로 뻗은 날카로운 주능선 양옆으로 호랑이 꼬리 같은 계곡이 펼쳐지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다가온다. 종주 산행코스: 반야사-산림욕장 주차장-전망대-정상-갈림길-헬기장-반야사. 약 6시간 소요.

 

백화산이 만든 아름다운 석천계곡
백화산이 만든 아름다운 석천계곡
백화산 자락에 안긴 반야사
백화산 자락에 안긴 반야사

영동땅 북쪽에 석천계곡이 있다면 남쪽에는 물한계곡이 있다. 황간에서 지방도로 579번을 타고 상촌 쪽으로 가다 만나게 되는 물한계곡은 골 깊고 물 맑은 보기 드문 생태계의 보고이다. 상류로 오르노라면 기암괴석과 폭포가 연이어 나타나고 울창한 숲이 내내 펼쳐진다. 물한리에서 도마령을 넘어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5km가 넘는 심산유곡으로 태초의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 왕복 4~5시간 거리로 삼도봉 정상에 오르면 뿌연 안개에 휩싸인 전라도와 경상도, 그리고 충청도의 산하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삼도봉에서 석기봉-민주지산-각호봉-도마령-민주지산자연휴양림(조동산촌마을)으로 이어지는 해발 1000미터의 마루금은 강원도의 어느 심심산골을 연상케 할 만큼 깊고 헌걸차다. 무주로 이어지는 도마령 고갯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이다. 험하기로 소문난 대관령길에 뒤지지 않는데, 짜릿한 드라이브 코스로 제격이다. 도마령 길은 용화면을 지나 학산으로 이어진다. 이 길 또한 꽤나 험한데 자계리재-질뱅이재를 지나면서 순해진다.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성위제 가옥의 안채
독특한 양식으로 지은 성위제 가옥의 안채

학산을 지키는 백로떼

용화에서 양산 쪽으로 가다 만난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의 작은 시골 마을. 마을 옆으로 금강 지류인 시항천이 흐른다. 마을 골목으로 들어서자 오래된 고가가 눈에 띈다. 초가와 기와로 이뤄진 성위제 가옥이다. 안채와 사당, 담장은 기와집이고 사랑채, 광채, 문간채는 초가로 되어 있다. 기와 담장과 연결된 초가 대문채의 조화가 꽤나 멋스럽다. 대문 앞에 연자방아가 있고 대문채로 들어가면 널찍한 안마당이 나온다. 사랑채에는 두 칸의 온돌방과 한 칸의 골방이 있으며 골방 뒤로 아궁이가 있는 부엌이 있다. 방 사이에는 미닫이문을 두어 방을 구획하였고 사랑방의 뒷문을 열면 토벽 사이로 안채의 부엌문이 보이는데 이 문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매해 봄에 찾아오는 수백 마리의 왜가리와 백로떼는 이 마을의 반가운 손님이다. 마을 뒷산 소나무와 참나무 숲에 보금자리를 틀고 지내다 찬바람이 부는 9월경 떠나 이듬해 다시 찾는다. 이렇게 찾아온 왜가리와 백로는 마을의 자랑거리이자 영물로써 해가 뜨는 곳을 보고 앉는다는 속설이 있고 많이 날아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전해오고 있다.

 

양산팔경의 하나인 강선대.금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양산팔경의 하나인 강선대.금강을 바라보고 서 있다

금강이 만든 양산팔경(陽山八景)

학산에서 양산으로 접어든다. 양산이 아름다운 건 사철 마르지 않는 금강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양강(陽江)으로도 불리는, 굽이굽이 흐르는 금강은 그 주변에 양산팔경이란 여덟 곳의 명승지를 만들어놓았다. 천태산 동쪽 기슭의 천년고찰 영국사(누교리), 옛날 봉황이 둥지를 틀었다는 봉황대(수두리), 해넘이가 아름다운 비봉산(가곡리), 강변의 높다란 대(臺)위에 노송과 정자가 어우러진 강선대(봉곡리), 시인묵객들의 쉼터였던 함벽당(봉곡리), 울창한 숲속 한가운데 자리한 여의정(송호리), 금강 한복판에 우뚝 솟은 용암(송호리), 조선시대 서당인 자풍당(두평리)이 그것들이다.

 

옥계폭포
옥계폭포

이밖에 팔경엔 들지 않지만 양산 중심지인 송호리 강변의 송림(松林)도 빼놓을 수 없다. 수천 그루의 소나무가 들어차 있는 솔밭은 삼림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또한 금강 끄트머리인 심천면 고당리의 옥계폭포도 이름값을 한다. 폭포의 높이는 20여 미터에 불과하지만 폭포수의 양 옆으로 깎아지른 암벽이 둘러쳐져 있어 풍광이 빼어나다.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물줄기는 서늘함을 넘어 오싹함까지 느끼게 한다. 파린 빛의 소와 그 주변의 계곡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에는 폭포수가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데 폭포 앞에 서 있으면 금방이라도 몸이 빨려 들어갈 듯하다. 옥계폭포를 찾았다면 월이산(해발 550미터)에도 올라볼 만하다. 옥계폭포에서 출발해 범바위(일명 투구봉)를 지나 서봉을 거쳐 다시 옥계폭포로 내려오는데 4시간(약 6km) 정도 걸린다.

 

천태산 들머리에 있는 영국사
천태산 들머리에 있는 영국사

영국사는 양산팔경의 제1경이다. 절을 에워싼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이라 불릴 만큼 수림이 울창하고 산세가 빼어나다. 천태산은 원래 ‘지륵산’이라 불리다가 천태종의 창시자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산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사로 오르는 산길은 가파르지 않아 그윽함이 일품이고, 중간 중간에 쉴만한 암반이나 계곡물이 있어 땀을 식힐 수 있다.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높직한 암반을 타고 내리는 3단 폭포가 나타난다.

 

천태산 3단폭포
천태산 3단폭포

삼단폭포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다시 야트막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천태산을 베게 삼고 누워 있는 영국사의 전경이 한눈에 잡힌다. 찾아오는 이 누구라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절집에 들어서면 속세에서 얻은 마음의 병이 깨끗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고풍스런 맛은 별로 느낄 수 없지만 절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는 이 절의 역사를 짐작케 해준다. 높이 35m, 둘레 11m의 우람한 몸체도 놀랍거니와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와 땅 위로 드러나 비틀린 뿌리는 가히 장관이다. 이 은행나무는 천재지변이나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 소 울음소리를 내며 운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박연 선생을 기리는 난계사
박연 선생을 기리는 난계사

난계(蘭溪) 박연(朴堧)의 고향

옥계폭포에서 가까운 곳에는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으로 꼽히는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영정을 모신 난계사당이 있다.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난 박연 선생은 조선 세종 때 왕명을 받들어 석경, 편경 따위의 아악기를 만들고 악서(樂書)를 편찬하는 등 우리 국악 발전에 많은 공헌을 했다. ‘난계’라는 그의 호는 집 정원에 난초가 많아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사당 외에 난계국악박물관, 난계국악기제작촌, 천고각, 국악기체험전수관 등 박연과 국악기를 소재로 한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천고는 울림판 지름이 5.54m, 무게는 7t에 이른다. 영동은 국내 3대 포도 산지이며 42곳의 와이너리가 있는 와인의 고장이다. 그 중 와인코리아(1577-3203, www.winekr.co.kr)는 포도 생산지로 유명한 영동 지역의 포도 재배부터 와인 제조와 저장,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원스톱으로 관리한다. 지하저장고와 판매장, 와인바, 갤러리, 개인 와인 셀러 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13~15도를 유지하는 지하 토굴에서는 와인이 저장된 오크통을 볼 수 있다. 영동은 고풍스런 고택이 유난히 많다. 읍내에 있는 규당고택과 김찬판고택에 들러보는 것도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작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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