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사람만이 다르다, 달라졌다, 엄청나게 달라졌다
오직 사람만이 다르다, 달라졌다, 엄청나게 달라졌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5.10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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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옛날옛적 촌놈의 연애행각(3)

 

골담초꽃
골담초꽃

요즘 뉴스가 참 흉악하다. 소쩍새는 사랑의 계절이 왔다고 밤마다 애간장이 타는 소리를 내고, 사과나무와 배나무 등 각종 과일나무들은 겨우내 잘 쉬었으니 이제부터 일을 해야 한다고 열심히 꽃들을 피워내고 있건만, 오직 사람만은 사랑 따윈 난 몰라, 그냥 죽을래 하는 무슨 그런 노래라도 부르듯이 흉악한 뉴스거리를 열심히 생산해 낸다.

새들은 옛날 옛적 그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소리를 냈었다. 사과나무와 배나무 등 각종 과일나무들이 피워내는 꽃들은 지금의 것과 옛날의 것이 다르지 않다. 오직 사람만이 다르다. 달라졌다. 엄청나게 달라졌다. 이것을 발전이요 진화라고 한다면, 사람은 결국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셈이다.

파릇파릇한 청년이었던 옛날 옛적의 나를 돌아보며, 오늘날의 파릇파릇한 몇몇 연예인 청년들의 행태를 접하고 있노라니 그저 가소롭기만 하고, 쓴웃음밖에 안 나온다. 애들이 어쩌면 저렇게도 희망도 설렘도 그 무엇도 없는 채로 마구 뒹굴어대는 것일까. 희망이란 누가 내 손에 공짜로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내 스스로 찾아내서 거머쥐는 것이거늘, 애들이 어쩌면 저렇게도 희망 따윈 개나 물어가라는 듯이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타인을 파괴하는 유치한 놀이에나 몰두하고 있는 것인가.

하긴 그것도 어쩌면 별장 성접대니 뭐니 하는 장치를 꾸며놓고 ‘지랄’들을 해온 어른이란 자들의 행태를 보고 느끼며 배운 바 있다고 보기는 봐야 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른이란 자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다고, 그렇게도 함부로 막 믿어버리고 어른들의 행태를 열심히 모방이나 하고 있는가 말이다.

이천오백여 년 전에 공자가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시경은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시경에 등장하는 남녀상열지사에 관한 이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청년이었던 시절이 절로 떠올라 온다. 그러니까 나는 이천오백여 년 전의 청년들과 같거나 최소한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원하면서도 그 마음을 차마 공개하지 못 해서 몇날며칠씩 끙끙 앓아야 하는 그 깊은 부끄러움과 머뭇거림의 정서 말이다.

 

둥글레꽃
둥글레꽃

여기서 오늘날의 저 유명짜한 몇몇 젊은 연예인들이 과연 그런 정서를 알고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부끄러움과 머뭇거림은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핵심이요 절대적 가치이다. 부끄러움에서 내 몸의 아드레날린은 분출하고, 머뭇거림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의 시간은 탄생하는 것이니, 부끄러움과 머뭇거림이 제거된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람 이상의 무엇이거나 사람 이하의 무엇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열여섯이나 일곱 살쯤으로 기억되는 옛날 옛적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면 부끄러움만한 재산도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 당시에는 다만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어서 고개조차 제대로 들 수 없었다 해도, 흐르는 세월 속에서 부끄러움은 나를 한 명의 어엿하고 당당한, 사람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평균치의 부끄러움 없는 사람으로 완성시켜 놓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니, 부끄러움은 분명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에너지요 재산이라고 말할 만하다.

부끄러움이 부끄러움 없는 인간을 완성한다는 말은 얼핏 형용모순으로 들리기는 한다. 하지만 좋아 죽겠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고 있는 게 사람이고 보면, 모순이야말로 어쩌면 사람다움의 증표인지도 모른다. 특히 이성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곧바로 부끄러움과 연동되면서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거꾸로 자꾸 숨어들고 싶어 하게 하는 것이니, 사람 마음이란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하다는 말 이상의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어쨌든 옛날 옛적 그 시절의 나는 무한히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그녀의 이름조차도 함부로 묻지를 못했고, 선물을 주고자 하면서도 직접 건네줄 용기를 낼 수 없어 우체국 소포로 보냈고, 답이 없는 그녀를 찾아가고자 하면서도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내고 사촌에서 구촌까지 여동생을 여섯 명이나 데리고 갔으니, 지금 생각하면 그게 무슨 ‘생쇼’였나 싶기도 하고,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서 벙긋벙긋, 피식피식, 그런 소리 없는 웃음밖에 안 나온다.

게다가 나는 여동생들을 속이고 있기조차 했다. 그 동네에 가면 멋진 남학생들이 많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해도, 내가 혼자서만 은밀하게 좋아하는 여자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은 언급조차 안 하고 꼭꼭 숨기고 있었으니, 내가 여동생들을 교활하게 속이고 있었다는 것만은 재론의 여지가 없었다.

 

모과꽃
모과꽃

그랬다. 그 해의 그 겨울, 그 날, 나는 여동생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생각만 있었을 뿐 그녀들에게 무슨 멋진 남학생들을 연결시켜 주자는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도 못했다. 지들이 알아서 뭘 어떻게 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내가 나서서 훈수를 하고 어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래서 벌을 받았던 것일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가 선물을 보낸 그녀는 그녀가 아니었다. 사촌에서 구촌까지, 여동생을 여섯 명이나 데리고 고모님 댁에 가서야 나는 그 사실을 알았다.

고모님은 나의 예상대로 친정에서 조카들이 무더기로 놀러 왔다고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열어주었다. 기타를 든 남자애는 물론이고, 여자애들도 다수 불러서 뽀빠이 과자 파티를 열어주었지만, 슬프게도 내가 찾는, 내가 보고자 하는,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시집과 일기장까지 사서 우체국 소포로 보냈던 그녀는 없었다.

아니다. 그녀가 있기는 있었다. 그날 밤 수건돌리기 현장에서 나와 제법 케미가 맞는다고 내가 일방적으로 생각했던 그녀가 오기는 왔다. 그런데 이름이 달랐다. 내가 내 전 재산을 털어 선물을 사서 보냈던 그녀의 이름은 ‘연’자로 시작되는데, 웃을 때 손바닥 끝으로 입술을 가리고 웃는 그녀의 이름은 ‘혜’자로 시작되고 있었다. 고모가 직접 그녀의 이름을 불러서 뭔가를 물어볼 때, 그때 명확하게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전혀 엉뚱한 여자에게 내 전 재산을 투입한 선물을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오 맙소사. 어찌 이런 해괴한 불상사가.

뿐만 아니라 손바닥 끝으로 입술을 가리고 웃는 그녀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날 밤 수건돌리기 장면이 내 눈에는 그리도 선연하게 남아 있건만, 그래서 나는 그녀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에 벌써 알아보고 바싹 긴장도 했건만, 그녀는 나를 알아보고 수줍은 눈인사라도 건네기는커녕 덤덤하게 그냥 관심 없다는 투의 눈길이나 힐끗 한 번 던지고 말았다. 그것은 명백하게도, 내가 내 전 재산을 털어서 우체국 소포로 보냈던 선물을 그녀가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배꽃
배꽃

그렇다면 이게 뭔가. 배달사고? 아니다. 그렇다면 발송사고? 그것이었다. 그날 밤 남몰래 온갖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 뒤에 내린 결론은 발송사고, 한 마디로 말해서 내가 미련해서 일어난 사고였다. 그 동네에 그런 이름을 가진 여자가 아예 없었다면 내가 보낸 소포는 내게로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름을 가진 여자가 있었다. 그리하여 내 전 재산이 투자된 선물은 엉뚱하게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그녀의 손에 쥐어지고 말았다.

엉뚱한 소포가 배달됐다면 그녀는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내 이름도 동네방네 쫙 퍼졌을 것이다. 저기 고창읍 매산 마을에서 김가 성을 가진 사내꼭지 하나가 시집이랑 자물쇠 달린 일기장을 보내왔다고, 안면도 없고 얘기 한 번 나눠본 바도 없는데 이게 뭔 시추에이션인지 모르겠다고, 깔깔대며 키득거리며 박장대소를 하며, 몇날며칠이나 내 이름 석 자를 놓고 입방아를 찧어댔을 것이다.

오 이런, 이런, 이게 대체 뭔 일이란 말이냐.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눈을 어디로 둬야 하는가. 무슨 가슴으로 숨을 쉴 수 있단 말인가.

의기가 잔뜩 소침해져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온갖 사람들의 눈치를 남몰래 살피며, 혹시 무슨 정보라도 흘러 다니지 않을까 싶어 귀를 바싹 기울여봤지만, 딱히 주목할 만한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소문이 퍼졌다면 누구든 나를 보며 실실 웃어대거나 뭐라고든 한 마디 놀림 투의 언사를 슬쩍슬쩍 던질 텐데 전혀 그게 아니고 보니 나로서는 뭐랄까, 새로운 의문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그녀는 내가 보낸 선물을 받자마자 재수 없다고 버려버린 것인가. 아니면 남몰래 시치미 뚝 떼고 그냥 쓰기로 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이를테면 시샘 많은 동생이나 오빠나 혹은 언니가 받아서 이건 내 꺼, 해버린 것인가?

 

사과꽃
사과꽃

연구를 하고 또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기가 막혀도 이런 기막힌 일이 세상에 있을 수도 있는가 싶어서 나는 그날 밤 거의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땅이 꺼진다 해도, 지구가 통째로 폭파된다 해도 아마 그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가슴이 터지거나 말거나 지구는 돌고 있었고,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박수 소리에 기타 소리, 노래 소리에 웃음소리는 화기도 애애하게 방안 가득 울려 퍼지고 있었고, 고모님은 이제 이만큼 놀았으면 잘 놀았다고, 다음을 기약하고 다들 돌아가서 자라고 산회를 선포하고 있었다.

“오빠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

어떻게 헤어졌는지, 어떻게 고모님 댁을 빠져 나왔는지, 고모님께는 또 무슨 말로 인사를 드렸는지, 하나도 기억할 수 없는 채로 고모님 댁을 나와서, 마을도 다 빠져나온 뒤에서야 나는 깜빡 정신이 돌아왔다.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고 있는, 한두 명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되는 여동생들의 정신없는 시끄러움이 없었다면 그나마 깨어나지도 못한 채로 넋 없이 벌판을 헤매고나 있었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동생들은 나를 그냥 두고만 있지는 않았다.

앞에도 여동생이요 뒤에도 여동생, 오른쪽에도 여동생이요 왼쪽에도 여동생이었다. 그 바람에 내 팔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동시에 내 팔 한쪽씩을 차지하고 있으니 나는 완전히 사로잡힌 몸이었다. 왼쪽의 여동생이 “오빠 고마워 정말로 고마워”하면 오른쪽의 여동생이 “오빠 우리 또 오자 응?”하고 있었고, 뒤 따르던 여동생이 갑자기 내 귀에 대고 “오빠 그 남학생 나한테 정식으로 소개해주라 응?”하고 속삭이는가 하면 앞에서 걷던 여동생이 갑자기 홱 돌아서며 “오빠 잉잉”하고 뜻 모를 아양을 떠는 것이어서, 나는 바야흐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착각으로 조금은 의기양양해 하고도 있었다.

 

으름꽃
으름꽃

하지만 대체로 봐서 나는 외로웠다.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다시는 고모님 댁에 갈 수 없으리라. 무슨 얼굴로, 무슨 배짱으로 다시 그 동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단 말이냐.

천지가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어서 달이 없어도 건너편 산을 볼 수 있었고, 까르르 깔깔 쉴 새 없이 웃어대고 있는 여동생들의 얼굴을 그 속눈썹까지도 볼 수 있었지만, 내가 진정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이게 무슨 꼴인가 싶기도 하고, 여동생들을 거칠게 확 뿌리치고 어디로든 마구 달려가서 그만 칵 죽어버리고도 싶었다.

만약에 여동생들이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쩌면 정말로 실의에 빠진 채로 딴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날을 시작으로 여동생들은 나를 잠시도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다. 고모님 댁을 다녀온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여동생들은 고모님 댁 마을에 또 놀러가자고 나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는 그 마을에 안 간다고 몇 번이나 강경하게 소리를 질렀더니 여동생들은 시무룩해 하다가 며칠 뒤에 다른 테마를 들고 왔다. 다리 건너 산 너머 마을에 친구가 있는데 친구의 부모님이 모두 집을 비웠다고, 거기 가서 제대로 한 번 놀고 오자는 것이었다. 그 말에는 나도 귀가 솔깃했다. 그렇게 해서 나의 연애행각은, 아니 ‘청춘사업’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나저나 그놈의 선물은 어떻게 된 것일까. 누가 받아서 말도 없이 그냥 챙겨버린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무슨 배달사고 같은 것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추리를 하고 또 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서 문득문득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래서 인생이란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제대로 한 번 가볼만 한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조차도 든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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