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은 된다”를 읽고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은 된다”를 읽고
  • 박석무
  • 승인 2019.05.1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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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SBS의 보도와 인터넷의 기사를 읽으면서 예절에 밝았던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참으로 예절이 바른 국민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자신을 호칭하고 남을 호칭하는 일에도 모두 예의가 정해져 있어 가능한 ‘남은 높이고 자신은 낮추는 〔自卑尊人〕’ 예절에 철저했습니다. 부모에게 자신을 칭할 때에는 ‘불초자’나 ‘소자’라고, 스승에게는 ‘소자(小子)’·‘소생(小生)’이라 칭하여 철저히 자신을 낮추었지만 부모나 스승을 칭할 때에는 절대로 이름자는 피하고, 최고의 존칭어를 사용하던 것이 습속으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이름’이라는 말도 쓰지 않고 이름의 경어가 ‘함자(銜字)’이기 때문에 남에게 이름을 물을 때에도 ‘함자’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부모·스승이 아닌 타인들에게도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는 언제나 문제가 되어 참으로 오랜 세월 이전부터 남을 호칭하는 ‘호(號)’라는 명칭이 나와 자식이 부모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젊은 사람이 어른들에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호칭할 수 있도록 된 관습이 ‘호’라는 편리한 제도였습니다. 민족의 큰 스승들인 이황(李滉)은 퇴계(退溪), 이이(李珥)는 율곡(栗谷)이라는 호로 부르면서 뒤에다 경어만 붙이면 아무런 불경함이 없도록 관행으로 되어버렸습니다.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기피하고 꺼리는 이유로 호라는 명칭이 나와 남을 호칭하기가 그렇게 편리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5백 년 동안만 해도 누구라는 사람으로 호가 없는 사람이 없어, 호만 부르면 그가 누구인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도록 보편화된 일입니다. 

그런데 “‘다산’은 안 되고 ‘정약용’만 된다.”라는 내용의 보도와 기사를 보면서, 세상에 이런 황당한 일이 어떻게 해서 생겨난 일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민족의 큰 스승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름 못지않게 ‘다산’이라는 호로 200년이 넘도록 국민 모두에게 보편화된 호칭인데, 설혹 ‘정약용’이라는 호칭이 있다고 해도 ‘다산’으로 바꿔 불경함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다산’의 호칭 대신 기피해야 하고 꺼려해야 할 ‘정약용’으로 바꾸자는 발상은 어떤 이유에서 나왔을까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산사람은 고사하고, 죽은 사람의 이름조차도 참으로 부르기 꺼려서 ‘휘자(諱字)’라고 하여 ‘이름’이라는 말도 쓰지 않는데, 그 좋은 호는 버려두고 꺼리는 이름자인 ‘정약용’으로 대치할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요. ‘퇴계학연구원’도 이황연구원으로 ‘율곡사상연구원’도 이이사상연구원으로 바꾸자는 말인가요. ‘다산문화제’에 무슨 탈이 있다고 ‘정약용문화제’로 바꾸자는 것입니까. 

 

박석무
박석무

유배 살던 강진의 귤동마을 뒷산 이름이 다산이고, 그 산에 있는 초당이 다산초당이고, 그 지역은 차가 많이 자생하는 곳이며, 다산 선생은 차를 좋아하던 습성까지 있어 ‘다산’은 참으로 격에 맞는 다산 선생의 호였습니다. 그리고 또 온 국민이 다산으로 불러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호를 왜 버리고 이름자만 고집할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요. 남양주시는 전문가들과도 의논하십시오. 변화를 일으키는 행정이야 좋지만 교각살우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남양주시에서 다산이 붙은 호칭을 정약용으로 바꾼다는 시의회의 조례가 통과되었다는 보도를 듣고 해드리는 말씀입니다. 전국적으로 ‘다산’을 브랜드로 삼고 있는 호칭이 얼마나 많은가도 한 번쯤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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