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된 안보 위협 속 스웨덴의 징집제
고조된 안보 위협 속 스웨덴의 징집제
  • 이석원 기자
  • 승인 2019.05.2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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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전시에는 중립, 평시에는 비동맹’이라는 외교 기조를 가지고 중립국을 표방하고 있는 스웨덴은 원래 ‘북방의 사자’라고 불리며 북유럽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찍이 13세기부터 북유럽의 패권을 놓고 덴마크와 경쟁했으며 핀란드를 640년, 노르웨이를 180년간 지배했던 북유럽의 강국이었다.

가장 참혹한 종교 전쟁으로 일컬어지던 30년 전쟁(1618년~1648년) 때 스웨덴은 이로 인해 가장 강력한 신교 국가로 맹위를 떨치기도 했다. 17세기 중엽 스웨덴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대제국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나 제정러시아도 스웨덴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정도다.

 

실제 스웨덴 군인으로 구성된 왕궁 경비대. (사진 = 이석원)
실제 스웨덴 군인으로 구성된 왕궁 경비대. (사진 = 이석원)

그러나 19세기 후반 이후 스웨덴은 자국이든 외국에서든 적극적인 전쟁 행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1950년 한국 전쟁에 의료부대를 파견하고, 이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스위스와 함께 중립국감독위원회로 참여하고 있으며, 중동이나 아프리카 등에 UN 평화유지군의 이름으로 파병을 하지만, 적극적인 전쟁에 가담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스웨덴은 발트해를 중심으로 러시아에 의한 안보 위협을 받고 있다. 호시탐탐 발트해 핀란드 영역을 넘보던 러시아의 핵잠수함이 심심찮게 스웨덴 영역까지도 침범하더니, 급기야 스웨덴 해군 기자에 대한 염탐 행위까지 하고 있다.

이런 안보 위기감 속에서 스웨덴이 군사력 증강에 나선 것이 지난 2017년부터다.

스웨덴은 20세기 초반부터 현대적인 군 복무 체계를 도입한 후 100여 년간 징병제, 즉 국민개병제를 실시했다. 그러다가 2010년 징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에 의한 직업 군인 제도를 도입했다.

그런데 2017년 러시아로 인해 안보 위협이 높아졌다. 스웨덴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비회원국이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할 경우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기가 어렵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안보 위협 때문에 즉각적으로 병역 제도가 바뀐 것은 당연하다.

2017년 부활한 징집제에 따라 1998년 이후 출생자부터 징집 대상이 됐다. 물론 징집 대상은 남녀 모두다. 그 후 매년 4000명의 병력 증강됐다. 현재 유럽에서 징집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스웨덴을 비롯해 이웃 핀란드와 스위스, 그리고 그리스 뿐이다.

 

스웨덴 육군의 훈련 모습을 담은 국방성의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스웨덴 궁방성 홍보 영상 캡처)
스웨덴 육군의 훈련 모습을 담은 국방성의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스웨덴 궁방성 홍보 영상 캡처)

징집제에 의한 국민개병제라고는 하지만 병역을 면제받는 일도 적지 않다. 물론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유를 발생시키는 건 그들 성격에 맞지 않는다. 그래도 적잖은 사람이 합당한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는다. 그래서 스웨덴 정부는 자기 안보를 지키기에는 스웨덴 병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올해부터 병력 증강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잇다.

스웨덴 젊은이들은 입대하면 최단 4개월에서 최장 12개월 동안 복무한다. 모든 병과를 막론하고 처음 3개월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병과에 따라서 1개월에서 9개월 동안 현역으로 군사 훈련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사들은 12개월을 근무한다고 보면 된다.

스웨덴 국방성에 따르면 2019년 현재 스웨덴의 병사는 매월 4380크로나(약 54만 2000원)의 급여를 받는다. 휴가나 휴일 외출 때 식비 등의 명목으로 하루 75크로나(약 1만원)를 받고, 교통비 전액을 지원받는다.

이런 항목들을 모두 합해도 20대의 병사들이 받는 급여는 같은 또래의 직장인들이 받는 급여의 20%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병사들이 제대할 때 퇴직금 명목으로 기본 급여를 복무 개월 수에 곱한 금액을 일시금으로 지급한다. 즉 10개월을 복무했을 경우 4만 3800크로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징집제가 실시된 것에 대해 대체로 스웨덴 젊은이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에 복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자랑스러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처럼 군 복무에 대한 가산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회사에서는 군 복무자에 대해 우대하기도 한다. 어차피 징집 대상이 남녀 모두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군 가산점 문제를 놓고 젠더 갈등은 벌어지지 않는다.

 

지난 2018년 5월 전국에 배포된 스웨덴의 전시 매뉴얼 브로셔. (사진 = 이석원)
지난 2018년 5월 전국에 배포된 스웨덴의 전시 매뉴얼 브로셔. (사진 = 이석원)

징집제 실시와 함께 지난 2018년 5월 스웨덴 시민보호 및 비상사태 관리국(Myndigheten för samhällsskydd och beredskap)이라는 행정부처에서는 스웨덴 전국 약 480만 가구에 ‘위기 또는 전쟁이 일어나면(Om kris eller krig kommer)’라는 제목의 전시 매뉴얼을 발송했다.

스웨덴어 뿐 아니라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와 13개국어로 만들어진 이 20쪽 분량의 이 매뉴얼은 1961년 이후 57년 만에 개정판이 나온 것이다. 매뉴얼에는 “스웨덴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안전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위협은 존재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웨덴을 위협하는 다른 나라가 러시아라고 적시하지는 않았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해서 불필요한 전쟁의 불안감을 부추기지는 않은 것이다. 전쟁의 위협은 간과하지는 않으면서도 2017년 4월 스톡홀름 테러를 비롯한 유럽 각국의 테러 위협과 잇단 자연재해를 대비해야 하는 것과 함께 전쟁의 위협도 자연스럽게 거론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스웨덴 시민들은 전쟁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기도 했고, 이 때문에 군 징집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적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됐다.

징집제에 의해 스웨덴은 2020년까지 최고 9만 명 이상의 병사를 확보할 계획이다. 사실 핀란드의 30만 병력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지만, 스웨덴은 전시에 동원할 수 있는 예비 병력(만 19세~49세 남녀)을 최고 450만 명이라고 보고 있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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