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9.05.23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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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사진을 찍다-1회] 김혜영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말과 글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나를 표현하고 표출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을 찍으면서 변화한 나의 걸음걸이와 시선은 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진 이야기는 늘 그렇듯 불규칙적인 연재가 될 것이다.

 

처음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사립학교였는데,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선생님들은 서로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문화가 있었다. 어떤 선생님들은 옷과 신발까지 맞춰 입고 쉬는 시간마다 농구를 하셨고, 또 다른 선생님들은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으셨다. 그중 한 분은 흑백 사진을 찍는 동아리를 만드셨는데, 예고도 없이 나의 이름을 동아리 부원에 올렸다. 이제부터 화요일마다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통보가 내려온 것이다. 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마음을 다 잡던 2학년 봄,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사진을 찍으라니 황당했다. 어쨌든 나는 이미 흑백사진부원이 되어버렸고, 언제 만들어진 건지 알 수도 없는 오래된 카메라를 하나 받았다. 흑백 필름을 넣고 감아서 빼는 법, 사진을 찍는 법,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법들을 배워 틈이 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다보면 공부할 시간을 빼앗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필름카메라여도 사진을 찍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찍고 싶은 것이 생기면 잠깐 멈추어 서서 필름을 감고, 초점을 맞추고,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무엇을 찍어야 하는지 몰라서 내 앞에 다가와 브이를 그리는 친구들을 찍었다. 카메라를 쳐다보며 자세를 취하는 친구들을 찍다가 그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포착하고 싶어졌고,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찍다가 멈춰있는 사물도 담고 싶어졌다. 사진의 결과물과 상관없이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서 매일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괜히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친구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줄 수 있는 유쾌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진은 빛의 한 순간을 필름에 그려내는 것.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서 담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거대한 일이었다. 문득 카메라가 무거웠다. 당신이 허락했다 한들 당신의 시간을 멈추어도 되는 것인지. 당신은 모르는 구도, 초점, 밝기로 당신을 담아내도 되는 것인지. 사실 카메라 앞에 다가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쩌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찍히고 싶은 척을 한 아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들을 가볍게 넘겨왔지만,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보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현상을 마친 필름을 빨랫줄에 걸어 건조하면서 암실의 빨간 조명이 꼭 정육점과 닮았다고 느꼈다. 찍히는 것과 먹히는 것 모두 포착을 당하면서 시작되고 전시되면서 끝이 나는 게 아닐까. 이미 카메라에서 분리된 필름을 최대한 천천히 작업했다. 암실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했고, 더 이상 새로운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대단한 선언 같은 것은 아니었다. 훗날 후회하거나 책임져야 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여름이 되었고, 흑백사진부는 다른 사진부와 함께 강원도의 양떼목장으로 출사를 떠났다.

수많은 여행을 다녀봤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었다. 지금은 SNS에 적합한 사진을 찍기 위한 여행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지만, 그때는 '페이스북'이 등장해서 조금씩 크기를 불려나가는 시기였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캠프인데도 스케줄표가 하나 없었고, 밥 먹는 시간과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사진을 찍는 시간이었다. 답답한 책상과 서울을 떠나온 것은 좋았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무거웠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면서 서로를 찍어주는 친구들을 바라보다 다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길가에 핀 작은 꽃에 렌즈를 들이밀었다가 뒷걸음을 쳤다. 아스팔트로 된 길 옆에 작은 꽃 하나가 피었다고, 그걸 제멋대로 동정하고 응원하는 스스로가 싫었다. 꽃은 그저 그곳에 있는 것이고 자신의 삶과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른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쑥 등장한 낯선 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이런저런 생각을 담아 사진을 찍는다면 그 행위는 옳은 것일까. 영혼이 없는 물체여도 상관없었다. 대상에게 끼치는 영향도 걱정이 되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카메라를 놓지 않는 무리에 섞여 억지로 사진 몇 장을 찍고 한참을 걸었다. 무엇을 찍을지 고민만 하는 사람처럼 하늘을 보고 들판을 보고 길을 보면서 걸었다. 자연스레 일행과 멀어져서 사진은 완전히 잊고 트레킹을 즐기고 있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람들처럼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온 선생님 두 분이 홀로 걷던 나에게 다가왔다. 왜 사진을 찍지 않느냐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대뜸 사진을 어떻게 찍는 것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봄부터 활동을 했으니 카메라의 조작법을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찍는 거야. 무엇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찍는 게 아니라, 찍고 나서 무엇이 담겼는지를 보는 거야. 그러다보면 네 사진이 좋아질 거야.”

나에게 필요한 질문이었지만, 정답에 가까운 답변은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다는 건 거대한 카메라에 비해 가벼운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찍고 나서 무엇이 담겼는지를 살펴본다는 것, 그러다보면 나의 사진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사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지치기도 한다. 내가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잘 안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어떤 신학자는 세상에 굶어죽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아파서 밥을 먹을 수 없었고, 끝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하루에 세 번 꼬박꼬박 밥을 챙겨먹는 내가 굶어죽는 것의 현실과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무엇인가를 잘 알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와 대상, 그리고 그 질서들에 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셔터를 누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오만이고 착각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카메라의 무게를 느끼는 것, 대상에게 폭력이 되는 순간을 그리지 않도록 성실하게 사고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아주 좁은 울타리에 갇힌 양들은 찍지 않았다. 양들의 현실을 고발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을 담아낼 능력이 없었다. 들판과 풍력발전기, 즐거운 친구들과 다정한 가족의 모습을 찍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그들에 관한 나의 몰이해를 자각했고,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의 거리로 뒷걸음쳤다. 내가 알 수 없는 풍경과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니 거리를 두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몇 걸음 물러나 측면으로 살짝 비틀고, 필름을 감았다. 찍고 싶은 대상에 초점을 맞추고 찰칵, 사진을 찍었다.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어 마음이 가벼웠다. 디지털 카메라를 목에 건 다른 사진부원들을 보면서 목이 아프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손목만 조금 아팠는데, 어쩐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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