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화산계곡
화산계곡

골라내고 또 골라내도 돌이 나오는 돌밭이었다. 아마도 백 년 이상 이백 년은 돌을 골라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돌은 여전히 나온다. 큰비가 내리면 흙이 씻겨 나가고, 흙이 떠난 자리에 새로운 돌이 드러나는 것이니, 지구가 존속하는 한 돌은 나오고 또 나올 것만 같다. 이렇게도 험악한 돌밭에 감초를 심어놓고 그것을 캔다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유 이거, 힘들지 않으세요?”

질문을 하면서도 바보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사실 질문이라기보다 내 나름의 의례적인 격려랄까, 안타까움의 표시였다. 때문에 나는 ‘이까짓 게 뭐 힘들어요’ 하는 식의 의례적인 답이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왜 안 힘들겠어요. 힘들죠.”

순간 당황했다. 당황해서 다시 또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아, 힘들어요? 그런데 왜 굳이 하시는 거예요?”

“아 재밌잖아요. 재미없음 못 하지.”

 

감초 새로 심기
감초 새로 심기

힘들어서 재미있다고? 얼핏 형용모순 같지만 낯선 말은 아니다. 어린 시절 절간에서 몇 년 빌붙어 살 때 들었던 말 같기도 하고, 암벽등반을 하는 사람들한테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 어머니,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 비명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일이 좋다고 일에 파묻혀 계시던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한다.

물론 조건이 있기는 하다. 그 일이 내 것이라고, 우리 것이라고 말할 만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힘든 일은 다만 힘든 힐일 뿐 재미는 개뿔이나 무슨, 나오느니 한숨이요, 신세타령이요, 자나 깨나 도망칠 기회만을 엿보게 될 것이다.

고개를 들면 온통 산이었다. 앞을 봐도 산이요 뒤를 봐도 산, 오른쪽을 봐도 산이요 왼쪽을 봐도 산이어서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달은 없고 별빛만 반짝이는 깊은 밤에는 홀연 선녀라도 하강할 것만 같은 마을이었다. 마을에서 오른쪽 산을 넘으면 선운사의 도솔암이 나오고, 왼쪽 산을 넘으면 역시 선운사의 참당암이 나온다고 하는 화산 마을, 아침에 눈을 뜨고 마당으로 나오면 연꽃 봉오리 같은 연화봉이 부드럽게 마치 오늘도 안녕, 하고 인사라도 하듯이 맞아주는 이 마을은 굳이 분류하자면 오지에 속한다.

 

3년생 감초 캐기
3년생 감초 캐기

고창 복분자의 탄생지로 알려져 있는 심원면 연화리 화산 마을이 오지로 분류되는 까닭은 꼭꼭 숨겨져 있어서가 아니다. 22번 국도를 끼고 있는 심원면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삼 분 거리밖에 안 된다. 전기도 들어오고 수돗물도 들어오고, 자동차도 그럭저럭 거칠 것 없이 씽씽 달리게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지라 하는 까닭은 단 하나,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사가 주업인 시골에서 땅이 있는데도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살아갈 수 없다는 뜻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골라내고 또 골라내도 나오는 돌 때문에 농사를 못 짓는 것도 아니었다. 복분자 등 과일나무를 심으면 각종 새들이 날아와서 마치 이게 내 직업이라는 듯이 하루 종일 쪼아대고,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같은 것을 심어놓으면 멧돼지와 고라니들이 내려와서 죄다 파헤쳐 버리고, 오이나 가지 같은 것을 심어놓으면 역시 고라니와 토끼 같은 녀석들이 밤낮으로 잔치를 벌인다.

녀석들이 그냥 곱게 하나씩 먹어치우고나 말면 얼마나 다행일까만, 무슨 심술인지 호기심인지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쪼아보고, 그 옆에 것도 살짝 깨물어보는 탓에 성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날마다 밤마다 지키고 앉아서 녀석들을 쫓아낼 수도 없는 일이어서, 궁여지책으로 바다에서나 쓰는 그물을 갖다가 둘러 쳐 보기도 하고, 쇠파이프 등으로 철책을 세워보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쩔 것인가. 사람들은 하나씩 둘씩 농사를 포기하고 멀리 품팔이를 나섰다. 그리고 하나씩 둘씩 아예 마을을 떠나 버렸다.

 

3년생 감초 뿌리
3년생 감초 뿌리

농사 전문가들도 포기하고 떠나버린 이런 오지 아닌 오지에 연륜도 지긋한 서울 사람 허좌영 애니김 커플이 들어와서 감초 등 각종 약초를 심어놓고 가꾼다. 약초 재배가 원래 직업이었던 것은 아니고, 농사에 무슨 일가견 같은 것이 있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화산 마을에 깊은 연고가 있어서 들어온 것도 아니었다.

하다 보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는 저 유명한 말처럼, 허좌영 애니김 두 커플의 사서 하는 ‘개고생’은 우연인 듯이 필연인 듯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동기랄까 계기는 당연히 있었다.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은 오늘과 같을 게 뻔한 도시 생활을 계속해야만 하는가 하는 성찰의 시간이 있었다. 새로운 공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즈음 마침 공공기관에서 개설한 약초관리사 강좌가 눈에 띄었다.

약초관리란 어떤 약초를 어떻게 응용 내지 활용하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하는 것으로, 환자를 상대하는 약제사와는 접근방식 자체가 다른 일종의 실사구시 개념이었다. 이런 약초 저런 약초, 온갖 약초를 만지고 음미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허좌영씨는 감초에 팍 꽂혔다. 그때부터 그는 감초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산 설고 물도 선 고창에까지 와서 감초를 심게 되었으니, 사람의 앞날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감초 새싹
감초 새싹

“감초가 이것이 말이에요. 약방에 감초라고 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지구상에 감초라니까.”

감초를 왜 좋아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허좌영씨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감동적으로 올라갔다. 그 순간 눈빛이 마치 아이처럼 생생하게 초롱거린다. 얼굴에는 가득 미소가 절로 피어오르고, 입술은 벌써 웃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구상의 초목들은 다 그 나름의 약성을 지니고 있고, 독성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제대로 잘 먹으면 약성은 배가 되고 잘못 먹으면 독성이 맹위를 떨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감초는 다르다. 중뿔나게 뛰어난 약성도 없지만 치명적인 독성도 없는 감초는 단맛을 품고 있는데 느끼한 단맛이 아니고 상큼하게 향기로운 단맛이다. 향기 또한 오래 맡고 있으면 질리기 마련이지만 감초의 향기는 상큼해서 질리지도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애호한 것으로 알려진 감초주사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감초는 건강보조 식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미용 목적으로 응용이 가능하고, 사람이 먹는 거의 모든 과자와 사탕 그리고 요리에 감초를 가미해서 그 맛을 극대화 할 수도 있다. 이렇게도 훌륭한 기능을 지닌 감초가 그동안은 왜 그렇게도 약재의 쓴 맛을 중화하는 목적으로만 이용돼 왔는지 이상할 지경이다.

 

허준 약초작목반장 허좌영
허준 약초작목반장 허좌영 씨

약초관리사 강좌에서 감초에 꽂힌 허좌영씨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초를 수동적으로 구입해서 쓸 것이 아니라 직접 한 번 길러보자는 아이디어를 내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허준 약초작목반'이었다.

열세 명으로 구성된 허준 약초작목반 반원들은 틈만 나면 서울을 떠나 전국 각처를 돌면서 약초 재배에 적합한 장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전라북도 고창의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는 그들 자신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은 어느 날 고창에 들어와 있었고,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쉬 떠나지를 못하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상하면 어디쯤에서 여기다 하고, 눌러앉기로 했다. 토지를 물색해서 임대계약까지 마치는 등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어디선가 탁 걸렸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뭔가가 모자란다는 느낌이었다. 요새 흔히 하는 말로 일 퍼센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다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만난 곳이 심원면 화산 마을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서서 빙 둘러보면 동서남북이 모두 산이고, 마을이 들어선 자리는 거대한 새의 둥지를 연상케 하는 것이어서, 세상에 이런 보금자리도 있구나 싶었다. 게다가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던 까닭에 노는 땅도 많고, 안성맞춤이다 싶게 빈집도 더러 있었다.

 

골라내도 나오는 돌
골라내도 나오는 돌

자, 이제부터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 물론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해보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시작만 하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희망과 설렘과 흥겨움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허준 약초작목반 반원들은 노후자금으로 비축한 돈을 헐어내는 등 이런저런 자금을 마련해서 화산 마을의 노는 땅을 빌려 본격적으로 감초를 심기 시작했다.

걸림돌은 역시 돌이었다. 한평생 농사를 지어온 사람들도 고개를 회회 젓는 돌밭에서 초보 농사꾼들이 뭔가를 좀 해보고자 하니 이게 제대로 될 까닭이 없다. 삽질을 하고자 하면 돌이 탁 걸리면서 발목에 충격을 가하고, 괭이질을 하고자 내리 꽂으면 돌이 탁 걸리면서 손목이며 팔목, 어깨, 척추 뼈에까지 충격을 주고, 호미질을 하자고 덤비면 턱턱 걸리는 돌들 때문에 손바닥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난 작목반원들은 서서히 지쳐 갔고, 의기 또한 소침해져 갔다. 호기심이 많은 반장 자격의 허좌영씨는 굴삭기를 동원하면 돌밭을 뚫고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소형 굴삭기 운전을 새로 배우는 등 각오를 새롭게 다져가고 있었지만, 다른 반원들은 원점에서부터 다시 점검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심 고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일 년쯤 지났을 때는, 거의 모두 서울로 돌아가 버리고 허좌영 애니김 두 사람만 남게 되고 말았다.

 

여기가 아주 돌밭이에요
여기가 아주 돌밭이에요.

매우 실망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실망이나 절망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열세 명이 해야 할 일을 두 사람이 하게 됐으니, 실망이나 절망은 무책임한 사치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시작한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두 사람의 기운을 충만하게 해주었다.

기운이 충만하고 보니 생각은 깊어지고, 넓어지고, 이해심 또한 깊어지고 넓어지면서 눈에 보이는 것도 많아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것을 발견했다. 거대한 시행착오라고나 할까. 시작이 잘못돼 있었다.

감초는 뿌리를 캐서 한 달을 방치해도 죽지 않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돌을 뚫고 들어가서 자랄 만큼의 엄청난 괴력을 지닌 식물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감초는 뿌리 식물이라서 땅이 부드러워야 뿌리가 제대로 잘 뻗는데 돌밭에다 심어놓았으니 이게 뭔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도 못할 환경을 만들어놓고 만 것이었다.

 

이걸 다시 심어요
이걸 다시 심어요.

오 이런, 이런, 이게 뭐냐.

삼 년여 만에 그것을 알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니 어쩌면 행운이라고 말해야 옳은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실패는 굳건하게 예약돼 있었던 셈이 아닌가 말이다. 하긴 시행착오 없는 성공이 어디 있으랴.

허좌영 애니김 두 사람은 씩씩하게 다시 나섰다. 뿌리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서 멋대로 자라고 있는 삼 년생 감초를 굴삭기로 캐서 모래흙에 다시 심기를 하기로 했다. 굴삭기는 군청에서 운영하는 농기계임대 사업소에서 빌렸다. 일손이 많이 필요했지만 시절이 농번기라서 사람을 구할 수 없으니 어쩌랴. 다행히도 선운사에서 스님 한 분이 일손을 돕겠다고 나섰으니 천군만마라도 얻은 기분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지만, 성공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것만 같아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다. 성공해서 복수하겠다는 유치한 생각은 아니다. 서울로 돌아간 아홉 명 작목반원들을 다시 불러들여 옛 이야기를 하며 웃어보자는 것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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