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경종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또 다시 ‘일감 몰아주기’에 일침을 날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일감 몰아주기를 해소하고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을 개선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또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탈취를 근절하고자 관련 부처와 입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동안 속도조절에 나섰던 공정위의 이번 움직임이 향후 어떤 결과를 나을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다시 한 번 ‘일감 몰아주기’에 경종을 울렸다.

최근 15개 중견그룹 CEO와 정책간담회를 가진 김 위원장은 자발적인 개선에 무게를 뒀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은 자산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집단 11∼34위 중에서 금융전업그룹과 총수가 없는 집단 등을 제외한 한진, CJ, 부영, LS, 대림, 현대백화점, 효성, 영풍, 하림, 금호아시아나, 코오롱, OCI, 카카오, HDC, KCC 등 15개 그룹이었다.

김 위원장은 무엇보다 ‘공정경제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이를 위해 일감 몰아주기 근절 등 공정경제 구축을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동참해 줄 것을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 “일감 몰아주기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는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중소 협력업체와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그릇된 관행으로, 이제 더는 우리 사회에서 용납돼선 안 된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경쟁의 부재는 대기업 자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기업의 핵심역량이 훼손되고 혁신성장의 유인을 상실해 세계 시장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당한 보상’ 필요

무엇보다 김 위원장은 지배 주주 일가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지배 주주 일가가 지분을 많이 가진 비주력·비상장 회사에 계열사들의 일감이 집중되는 경우에는 그 합리적인 근거를 시장과 주주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중소 협력업체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도급 분야에서 공정한 거래 관행이 정착돼야 한다"며 "혁신성장의 싹을 잘라 버리는 기술탈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하도급법, 상생협력법, 부정경쟁방지법 등을 포괄하는 입체적인 해결 방안을 관련 부처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석한 기업들도 김 위원장에게 각종 방안을 제안했다. 그룹마다 주력 업종이 다르고 규모도 달라 경쟁법을 집행할 때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하면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참석한 CEO들은 관련법을 좀더 유연하게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와 함께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미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정위를 비롯한 정부가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해 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의 경우 현재 대기업의 시스템통합(SI) ·물류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법에 정해진 효율성이나 보완성 등 기준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기업 대표들은 지배구조 개선, 지주회사 전환, 일감 몰아주기, 하도급 불공정거래 개선 등에 대한 문제와 관련해서도 개별 그룹의 특수성 문제를 언급했다. 특히 카카오는 플랫폼 기업의 특수성과 해외기업과의 역차별을 언급했다.

여민수 카카오 사장은 “같은 사업에서도 해외 글로벌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만 규제를 적용받는 경우가 있고 기존 비즈니스모델과 부딪치는 경우도 있다"며 "과거 산업에선 필요한 규제였지만 IT혁명기에서는 예기치 않게 새로운 산업의 탄생과 발전을 막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산업계는 4차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는데,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 좀더 전향적으로 헤아려 달라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과거 경쟁법 집행의 기준과 법리로는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경제현상을 따라가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며 "과거의 기준을 너무 경직적으로 적용해선 안 되고 미래를 위한 동태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국내외 기업 간 차별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답변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플랫폼이나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이 섹터별 감독기관이 있다"며 "방통위원장과 양 위원회가 어떻게 협업할지 고민을 나누고 있다"고 대책 마련 가능성을 제시했다.
 

‘4차산업 재편’ 고려

대한상의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며 "기업 내부거래로 갈수밖에 없는 불가피성 또는 특수성을 말했고, 김 위원장도 개별 기업들 부분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의 기준을 더 명확하고 예측가능하게 만들어가는 노력과 기업에서 합리적 이유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받으려는 노력이 결합돼야 한다"며 "그래야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정위는 중국 공정위인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과 경쟁법 집행의 공조체제를 구축하며 하반기 활동 폭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중 경쟁당국은 다국적 기업결합·국제카르텔 등 글로벌 경쟁법 위반행위를 놓고 효과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서울에서 열린 간린 중국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부총국장과의 양자협의회를 통해 ‘공정위-시장총국 간 경쟁분야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시장총국은 중국 공정위로 불리는 발전개혁위원회, 공상행정관리총국, 상무부 등 기존 3개 기관의 경쟁법 집행 업무를 통합한 기관이다.

김 위원장은 양자협의회 개회사를 통해 “전세계 경쟁법 커뮤니티에서 최대 화두이자 과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의 장을 조성하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경쟁당국의 개별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경쟁당국 간 긴밀한 공조와 협력이 무엇보다 긴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양해각서 내용을 보면 매년 1회 이상 협의회 개최, 워크숍, 연구 협력 등의 기술 협력, 상호 관심 사안에 대한 정보교환 및 협의 등을 비롯해 광범위한 협력 내용이 포함됐다.

무엇보다 상대방의 중요한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법집행 활동 내용에 대한 통보, 입법 과정 중에 있는 경쟁법에 대한 상호 의견 교환, 상호 관련된 사건에 대한 조정 및 협력도 함께 규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양자협의회 개최 및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한·중 경쟁당국간 협력이 보다 강화될 것”이라며 “향후 시장총국과 고위급 뿐 아니라 기업결합, 카르텔 등 분야에서 실무급 양자협의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국적 기업결합, 국제카르텔 등 글로벌 경쟁법 위반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식적인 공조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들어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공정위가 하반기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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