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대학생 교육봉사단 체험기-2회

 

사진=pixabay.com

‘기대어있음’의 온기

고양이를 키우다보면 감동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커갈수록 새침때기 같은 나의 고양이도 자다 깨면 나를 찾는다. 서로의 일상을 유지하다가도 때때로 내게 다가와 몸을 기댄다. 기댄 몸에서 부드러운 온기가 전해진다. 이 온기가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함께 있음을 알려준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있다는 인식은 일상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해준다.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도 어떠한 다양한 환경 속에서도 단 한사람의 온기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다시 일어날 힘을 스스로 발현할 수 있다. 단 한 사람의 온기, 그것을 전해주는 게 올해 시작한 봉사활동의 동기이자 목표, 이 삶의 사명이 아닐까.

지난 3월 정식 활동이 시작되었다. 지역아동센터 첫 방문을 앞두고 대학생 교육봉사활동에 선발된 장학샘은 OT와 워크숍을 한 차례씩 다녀왔다. OT는 성수동에 위치한 소셜 벤처 공유 오피스 ‘헤이그라운드‘에서, 워크숍은 경기도 용인시 소재의 ‘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에서 1박2일 간 합숙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두 교육 모두 전국에 배치된 250명의 장학샘이 참여했다. 장학샘은 서울/경기, 강원, 경북, 부산, 대구 지역으로 나뉘어 각 지역에 분포한 지역아동센터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초 학력 증진을 지원하는 동시에 각계 사회인을 만나 멘티가 되어 취업 역량 강화 멘토링의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이들 대학생 봉사단을 ‘장학‘과 ‘선생님’을 합친 ‘장학샘‘이라는 명칭으로 부른다.

 

필자인 구혜리 기자

어떤 만남을 위한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준비

OT에서 1년 동안 활동을 함께 할 장학샘을 처음 만났다. 각 지역아동센터 마다 4명-7명의 장학샘이 배치되었다. 우리 센터에는 정확히 3대 3의 성비로 6명의 장학샘이 선발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휴학생으로서는 올해 가장 많이 가장 자주 얼굴을 보게 될 또래였다. 이날 장학샘은 청소년 멘티와 더 나은 첫 만남과 유대관계 형성을 위해 멘토링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간 어색함을 깨고 존중과 관심을 표현하는 법,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고 서로를 탐색하는 법을 배웠다. 그룹 면접 때 뵈었던 각 센터의 담당선생님과 만나 장학샘 활동에 대해 듣고 기대와 당부를 들었다.

합숙 워크숍에서는 봉사 정신과 학습 지도,성인지 교육 등을 포함한 소양 교육을 이수했다. 또한 강원, 전북, 부산, 대구 지역의 다양한 대학생과 만날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다. 1년 동안 이 활동을 통해서는 같은 센터의 장학샘을 더 많이 보겠지만 이상하게도 합숙 워크숍에서는 서울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의 장학샘과 더 많이 친해지고 정이 들었다.

합숙 워크숍은 꽤 화려했다. 본래 현대자동차그룹 임직원을 위한 연수원에서 있는 대로 멋을 부려 시설은 시설대로 좋았고, ‘공부의 신’ 강성태 대표의 깜짝 강연 등으로 꽉 찬 스케줄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쓰며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준비해 왔을 지를 떠올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사를 기획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그 모든 노력은 우리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고, 나아가 우리를 통하도록 하여금 자라나는 새싹 같은 청소년을 위한 것이었다.

준비자의 정성이 보이니 감사했다. 좋은 말씀을 전해준 강연과, 건강한 생각을 만들어준 환경,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기회,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해야할 것을 볼 수 있음에 다시 감사했다. 그렇다면 이 마음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그것은 필연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기대어 전해 받은 온기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누군가의 온기가 배어있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성을 쏟은 누군가의 노력의 결과물을 빌려 쓰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를 또 다른 준비자로서 임하게끔 할 의무를 만든다. 특히나 존재 자체가 축복이 될 다음 세대를 위해, 여러 세대를 통해 거듭해온 온기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는 특별한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자와 행위자: 주인으로서의 아이들

드디어 10개월 간 청소년을 만나 수업하게 될 지역아동센터에 방문했다. 현대의 자본을 더한 OT와 워크숍 행사의 화려함에 비해 지역아동센터는 소박한 공간이었다. 센터 마다 공간 구조도, 아이들의 인원수도, 기관에서 바라는 장학샘의 태도와 수업 방향성도 모두 다르지만, 센터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우렁찬 아이들의 고함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센터나 똑같다.

지역아동센터는 아동복지법에 따라 지역사회 아동의 보호와 교육 및 건전한 놀이와 오락의 제공,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연계 등 아동의 건전한 육성을 위하여 종합적인 아동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보건복지부 위탁 지역아동센터중앙지원단에 따르면 전국에 총 4,107개소의 지역아동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동 수는 106,668명에 달한다. 지역아동센터는 1980년 빈곤운동에 뿌리를 두고 자생적으로 시작된 공부방으로 출발했다. 그러다 법제화를 통해 국고지원이 시작되었고, 2004년 당시 895개소에 불과하였던 지역아동센터는 해를 거듭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한 센터에 배정된 우리 6명의 장학샘은 각자 아동의 학년과 희망 수업 과목에 따라 한 명(1대1 수업) 내지 4명의 청소년을 맡아 전담하게 되었다. 10만 명의 센터 아동 가운데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 인연인가.

장학샘이 쭈뻤거리며 차례로 들어서니 “누구세요, 누구세요” 하는 아이들의 관심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 센터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모든 연령의 청소년이 있었다. 또한 이미 졸업을 해서 취업을 하거나 대학생이 된 청소년도 센터 선생님을 보려고 찾아왔다. 이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이들은 주로 어릴 때부터 센터에서 함께 밥을 먹고 공부하며 성장해온 것인데, 센터 대표 장 선생님은 한 아이 당 적게는 6년, 많게는 10년 이상을 친부모 처럼 돌보고 키워온 것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지역공동체 안에 또 다른 가족으로 아이들은 센터에 무척이나 애정을 갖고 있었다.

연초에는 대대적인 간담회를 한다. 이르면 3월 늦으면 4월 즈음 아이들의 학부모를 초대해서 함께 식사를 하며 센터에 대해 소개하고 연간 계획을 공유하여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우리 센터에서는 부모모임(보호자)+자원봉사자교육+지역사회연계(기관)의 의미를 부여하여 ‘보자기’라는 명칭을 붙였다. 교육과 동시에 보호를 담당하는 주체인 만큼 기관은 아동의 보호자인 부모님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며, 신뢰 형성은 진정성 있는 첫 인사로부터 시작한다. 이번 보자기 행사에서는 특별히 장학샘을 초대했다.

 

보자기 행사를 위해 센터에 도착했을 때는 아이들이 모든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센터로 달려온 아이들은 간담회를 위해 청소를 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한 가구를 재배치하고, 행사에 초대된 부모모임 어른들을 위한 뷔페를 직접 세팅했다. 심지어 완제품으로 구매해온 줄 알았던 모둠 컵과일은 아이들이 직접 과일을 떼어 담아 포장한 것이라고 했다. 또 아이들은 하나 둘 도착하는 어른들을 직접 맞이하고 자리로 안내했다. 때때로 마이크를 잡고 직접 행사를 진행하였으며, 모든 행사가 끝난 뒤에는 너나할 거 없이 동시에 뒷정리를 시작했다. 이 모습이 무척 놀라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 공간의, 이 공동체의 주인이었다. 단순히 행사를 위한 일시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이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밥을 먹은 뒤엔 테이블을 닦고, 간식을 먹고 나온 쓰레기를 철저하게 재활용 분배해 버리고, 자신들이 꾸민 아지트를 만들기 위해 원목을 써서 공간을 리모델링 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우리는 늘 준비자와 행위자가 분리된 공간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토록 멋진 곳에 초대되었으며, 이제 행위자이면서 동시에 준비자로서의 주인 될 준비를 했다. 아, 이 얼마나 귀한 자원이자 기회인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적인 습관이 분명 아이들을 더욱 단단하고 건강하게 성장시켜줄 뿌리가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에 우리는 준비자와 행위자의 벽을 허물게 된다, 스스로 주인이 되고 나면 그 공간을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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