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기획] 복지국가 스웨덴에서 살아보기 / 이석원

 

국경절 아침 왕궁 앞에서 축하 인사를 하는 칼 16새 구스타브 국왕과 스웨덴 전통 의상을 입은 실비아 왕비. (사진 = 이석원)
국경절 아침 왕궁 앞에서 축하 인사를 하는 칼 16새 구스타브 국왕과 스웨덴 전통 의상을 입은 실비아 왕비. (사진 = 이석원)

우리의 현충일인 6월 6일, 스웨덴은 ‘스웨덴 국가의 날’인 스베리예스 나후날다그(Sveriges nationaldag)다. 편하게 ‘국경절’이라고도 부르는데, 1523년 스웨덴이 칼마르 동맹(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3국의 동맹) 상황에서 덴마크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그래서 우리와 비교하면 광복절과 같은 의미다.

이날 아침 스톡홀름의 구시가인 감라스탄(Gamla stan)에 있는 스웨덴 왕궁 앞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칼 16세 구스타브 국왕과 실비아 왕비가 등장한다. 실비아 왕비는 파랑색과 노란색, 즉 스웨덴 국기의 색깔로 만들어진 전통 의상을 입고 나선다.

국왕의 축하 인사 후 왕궁은 무료로 개방된다.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스웨덴 전역의 주요한 공연장이나 전시관도 무료로 개방된다. 거리 곳곳에서는 국경절을 축하하는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고,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16, 7세기의 전통 의상을 입고 축제에 참가한다.

오후 스웨덴 왕궁에서 왕실 가족의 축하 마차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국왕 부부와 빅토리아 왕세녀 가족, 칼 왕자 가족과 막내 마들렌 공주의 가족이 탄 마차가 왕궁을 출발해 시내 중심 공원인 쿵스트래드고덴을 거쳐 세계 최초의 야외 민속박물관으로 유명한 스칸센에 도착한다.

왕실 가족들의 마차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길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도열해 평소에는 그다지 인기도 없는 왕실 가족으로 보고 환호한다. 어쩌면 ‘인기 없는 구스타브 왕’이 1ㄴㄴ 중 가장 행복하고 밝게 웃는 날일 지도 모른다.

물론 실비아 왕비를 비롯해 빅토리아, 마들렌 공주, 구스타브 왕의 손녀들도 노랗고 파란 색의 스웨덴 전통 의상을 입는다. 그리고 스칸센에 도찰한 왕실 가족들은 시민들과 어우러져 한 바탕 축제를 즐긴다. 특히 다음 왕위를 이을 빅토리아 공주와 그의 남편 다니엘 대공은 밤늦은 시간까지 시민들과 함께 한다.

 

국경절 국왕 가족의 마차 퍼레이드.(사진 = 이석원)
국경절 국왕 가족의 마차 퍼레이드.(사진 = 이석원)

국경절의 기원은 스웨덴 국부로 칭해지는 구스타브 1세 바사왕의 즉위다.

스웨덴과 덴마크 노르웨이는 같은 바이킹의 후예로, 민족과 언어를 공유한다. 1397년 스웨덴 남부 항구 도시인 칼마르에서 노르웨이 국왕을 겸했던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여왕이 스웨덴 귀족을 움직여 알베르트 왕을 폐위하고 3국간의 동맹을 결성한다. 칼마르 동맹이다. 말이 좋아 동맹이지, 이미 식민지였던 노르웨이 뿐 아니라 스웨덴도 덴마크의 지배에 들어 선 것이다.

130여년의 세월이 지난 1520년.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는 스톡홀름의 대광장(Stortorget)에 스웨덴의 주요 귀족 90여 명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을 몰살한다. 그들 중 한 명의 아들인 바사는 중부 달라나 지방으로 몸을 피하고, 거기서 농민군을 결성해 덴마크 세력을 몰아낸다.

덴마크로부터 해방된 스웨덴은 1523년 6월 6일 구스타브 1세 바사 왕을 국왕으로 추대하고, 이 날을 새로운 스웨덴이 건국한 날로 기념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곧바로 6월 6일이 국경절이 된 것은 아니다. 280여 년이 지난 1809년 6월 6일 칼 13세가 근대적인 개념의 국가 조직을 조성하고 헌법을 제정한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바사왕의 즉위일과 같은 날이었다. 6월 6일을 기념할 이유가 더해졌다.

그러다가 1893년 노르딕 박물관과 스칸센의 설립자인 민속학자 아르투르 하셀리우스(Artur Hazelius)가 바사왕의 즉위일과 헌법 제정일인 6월 6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제안한다. 그 때부터 스웨덴 의회는 이 문제를 놓고 오랜 심사숙고가 이뤄졌다.

1915년에는 새로운 제안도 나왔다. 닐스 융렌(Nils Ljunggren)이 스웨덴의 국기를 기념하는 날을 제정하자고 했다. 이른바 ‘스웨덴 국기의 날(Svenska flaggans dag)’이다. 닐스 융렌이 처음 국기의 날로 제안했던 것은 가을이었다. 하지만 날씨가 우중충해지기 시작하는 가을보다는 맑고 밝고 따뜻한 초여름, 게다가 바사 왕의 즉위일과 헌법 제정일인 6월 6일이 더 낫다는 여론에 의해 ‘국기의 날’은 1916년부터 6월 6일로 제정됐다.

 

스웨덴(맨 위)과 덴마크(아래 왼쪽부터), 핀란드, 노르웨이 국기. 칼마르 동맹 당시 핀란드는 이미 스웨덴의 속국이었다.(사진 =이석원)
스웨덴(맨 위)과 덴마크(아래 왼쪽부터), 핀란드, 노르웨이 국기. 칼마르 동맹 당시 핀란드는 이미 스웨덴의 속국이었다.(사진 =이석원)

1973년 스웨덴 의회는 6월 6일에 모인 이 모든 기념일을 합쳤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3년 6월 6일은 스웨덴의 정식 국경절이 됐고, 의회의 반대 때문에 공휴일로 지정되지는 못했다가 마침내 2005년 공휴일로 지정돼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매년 6월 6일은 스웨덴 전역이 파란 바탕에 노란 십자가가 디자인 된 국기로 뒤덮인다. 1년 365일 집에 국기를 게양하는 집이 많지만 이 날은 모든 대중교통, 건물, 크고 작은 상점들도 스웨덴 국기를 단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손에도 국기 하나쯤은 들려 있고, 국기로 디자인한 옷이며 페이스 페인팅도 물결친다.

스웨덴 뿐 아니다. 전 세계 스웨덴 사람이 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6월 5일 하얏트 그랜드 호텔에서 주한 스웨덴 대사관이 주관하는 스웨덴 국경절 행사가 열린다. 6일이 한국의 공휴일이라 부득이 5일에 치러진다.

스웨덴의 애국심은 유별나다. 초, 중등학교에서 특별히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시키지는 않지만, 체질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타고난 애국심을 가진다. 전체주의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인 애국심이 아니다. 자신들을 철저히 보호하고, 보상하는 나라에 대한, 그리고 자신들의 땀과 수고로 만들어진 나라에 대한 당연한 권리와 의무로 그들은 애국심을 가진다.

심지어는 모국이 스웨덴이 아닌 이민자들도 스웨덴의 시민으로 사는 사람들은 스웨덴에서 나고 자란 그들과 거의 다르지 않는 애국심을 드러낸다. 그럴 경우 기꺼이 2개의 조국을 그들은 사랑하는 것이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6월 6일 국경절이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냐고 물으면 다양한 답변을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하곤 한다.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정부나 정치, 또는 왕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적지 않다해도 스웨덴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듣기는 쉽지 않다.

애국이 맹목과 이념이 아닌 삶 자체일 때 진심이 되는가 보다.

<이석원 님은 한국에서 언론인으로 일했습니다. 지금은 스웨덴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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