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세화에 가다-1회] 김혜영

또 제주다. 17년 여름에도 제주를 다녀와 이곳에 글을 썼는데, 올해는 봄도 여름도 아닌 날 제주에 다녀왔다. 다만 휴학을 하지 못한 4학년이 되었기에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2박 3일로 짧은 여행이었다. 시험이 끝난 주간도 아니었는데 왜 일정을 욱여넣어 먼 바다의 제주로 떠났을까. 세 편에 걸쳐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목요일 즈음이었던가.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도시의 일상과 멀어지겠다는 의지를 내포하는 것 같아 연락이 조심스러웠는데, 한 달이 끝나갈 무렵 반가움이 가득 담긴 답장이 왔다. 이번 주까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텝으로 있으니 시간이 되면 놀러오라는 초대도 함께였다. 내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는 여행을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최대한 많은 여행을 가자고 다짐한 올해이기에 바로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다. 월요일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니 토요일부터 2박 3일로 다녀오면 안성맞춤이었다.

강의실에 앉아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제주의 풍경을 상상했다. 올해는 여름이 빨리 다가오고 있으니 꽤 더운 날씨일까, 아니 바람이 세게 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고 집에 가자마자 옷장을 뒤엎어 수영복을 찾았다. 아직 하루가 남았지만 빨리 짐을 챙기고 싶었다. 서두를 정도로 제주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하나 더 있었는데, 졸업 전 마지막으로 들어간 동아리 때문이다. 학교 도서관 산하 기구 ‘연시’(연세 시네마)는 영화를 추천하고,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와 옥상영화제를 개최한다. 언젠가 이 동아리 활동에 관해 글을 쓸까 고민 중일 정도로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의 즐거움도 크지만 왜 이제야 만났는지 아쉬울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많다. 활동을 시작한 3월 말부터 두 달 동안 매일 뜨거운 여름밤을 보낸 기분이었다. 곱씹어 반추하고 꼭꼭 씹어 소화하고 싶은 시간들이 밀린 빨래더미처럼 쌓였다. 서울엔 내가 너무 많아서 낯설고도 친숙한 제주가 필요했다.

 

급하게 저렴한 표를 구하다보니 오후 4시에야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에 도착하면 저녁일 테고,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제주의 밤은 서울보다 빨리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친구는 밤길을 걱정하며 공항 근처의 숙소와 야시장을 추천했지만 나는 한 곳에 최소한 2박 3일은 머물러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1박 2일은 여행이 아니라 MT야. 고집을 부리며 버스로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리는 세화로 곧장 향했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의 번호를 직접 받아 문자로 예약을 하고, 친구 덕에 지인 할인도 받았다. 사장님은 쿠킹 클래스를 친절하게 설명하며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했다. 밤에는 해변 외에 돌아다닐 곳도 없으니 좋은 기회였다. 어떤 요리를 배우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오전에 들린 병원에서 받은 약을 먹었다. 미세먼지와 꽃가루 등 다양한 이유로 목에 문제가 생겨 약을 챙겨먹지 않으면 구토를 할 때까지 기침이 나오는 상태였다. 약을 먹으면 졸리고 어지러울 수 있다고 했던가. 약사 선생님의 말이 도통 기억에 나지 않으면서 졸음이 쏟아졌다. 평소 약의 부작용을 많이 느끼는 편이고 무리한 스케줄 탓도 있었을 것이다. 이대로 기절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시끄러운 노래를 이어폰으로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할아버지의 고함이 들렸다.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나를 지칭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고, 고개를 올려다보니 한 할아버지가 승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무도 자리를 비켜주지 않아 화가 난 것 같았다.

 

문제는 할아버지가 지목해서 호통을 치는 대상이 나를 포함한 젊은 여성들이었다는 점이다. 버스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들과 중년의 등산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표적이 되지 않았다. 젊은 년들이 가방 딱 올려놓고 노래나 듣고 핸드폰이나 하고 앉았어. 너무 저열한 표현이라 덜어내고 순화한 문장이다. 그럼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지 바닥에 내려놔야 하나 싶을 정도로 말이 되지 않고 감정에만 치우쳐서 모든 승객을 불쾌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예전의 나였으면 온몸이 떨릴 정도로 무섭고 불안해하거나 분한 마음에 복어처럼 부풀어 올라 가시를 세웠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단단해졌는지, 할아버지의 공격적인 고함에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아무도 자리를 내주지 않아 화가 날 수는 있지. 그래도 좋은 말로 양보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나. 우리는 버스에 앉아있는 사람을 얼굴만 보고 평가하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발을 다쳤는지, 나처럼 몸이 망가져 쓰러질 지경인지, 초기 임산부인지, 극심한 생리통을 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상대의 처지를 모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추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할아버지는 단순히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었고 당장 어느 여성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 총기 규제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중년의 여성 몇 명이 용기 내어 할아버지를 말렸지만, 그는 더 화가 나서 여성을 비하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처음 본 사람들에게 모욕적인 욕설을 섞어가며 화를 낼 수 있는 권력은 대체 무엇일까. 저 사람의 눈에 비치는 여성은 무슨 존재이기에.

 

다행히 그가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정신이 없어 정류장을 두 개나 지나치고 다른 곳에 내려버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길을 걸으면서 고요와 평화를 사무치게 즐겼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영화 <어벤져스>에서 생명체의 반을 죽여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겠다던 악당 ‘타노스’가 생각났다. 영화를 볼 때는 캐릭터에 관한 충분한 서사가 없어 테러리스트 이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비로소 그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람이 없는 자연이 무섭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물론 잘난 척을 해봤자 나 또한 사람이고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곧 저열한 스스로를 반성했다. 본인이 표적이 되지 않아도 나서서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고작 한 명의 폭력을 마주했다고 극단으로 치우칠 일인가. 사실 익숙한 일인데.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금방 숙소에 다다랐다. 오늘 근무가 없었던 친구는 오름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쿠킹 클래스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여유롭게 짐을 풀고 목욕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내가 정말 괜찮은지 확인했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오래된 습관이 있어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힘든 일을 겪었을 때부터 시작한 나만의 전통이다. 마음의 병을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SBS)에서 정신질환을 겪은 주인공은 타인에게 하던 안부 인사를 스스로에게 건넸다. “굿나잇, 장재열.” 모든 대사를 외울 정도로 수없이 돌려본 드라마지만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왜 스스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신경을 쓰고 안부를 물어야 하는 건 나 자신이기에, 그때부터 스스로를 유난스럽게 챙기기 시작했다. 사소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겨도 자기 전 스스로에게 괜찮으냐고 되물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혜영아, 괜찮니.” 오늘의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예상치 못한 폭력에 휘둘려도 괜찮은 단단한 암석이 되었구나. 제주에 어울리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아주 긴 하루였는데, 내일은 더 긴 하루가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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