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비채

 

여기 그림으로 그린 듯한 재미한인 가족이 있다. 19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보란듯이 성공한 아버지, 아버지처럼 교수가 된 아들, 사랑스러운 손자.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한인사회가 있다. 주일에는 무조건 교회에 가고, 부엌에는 며느리들만 드나들며, 반드시 남자 앞에 먼저 음식을 차리는 사람들…

신기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를 따라 네 살 때 미국에 온 주인공 ‘경’은 한인사회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부모의 양육에 반발해 백인 여자와 결혼했지만, 부모와 연을 끊지도 못한 채 애매한 관계를 이어간다. 모든 것을 폭로하고 터뜨린 ‘그 일’이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그 얄팍한 평화는 좀 더 유지되었을 것이다. 작가 정 윤이 한국인의 마음 깊이 내재한 다층적인 모순에 극적인 사건과 스릴, 반전을 더해 한 권의 빼어난 소설로 써낸 '안전한 나의 집'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작가 및 주인공처럼 해외교포 1.5세인 재캐나다한인 최필원이 우리말로 옮겼다.

때로 우리 안의 모순은 바깥에서 더 잘 보인다. 가족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종종 아내와 어머니를 아무렇지 않게 홀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의를 중시하는 가정의 내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정폭력은 또 어떤가. 과연 예의 넘치는 행동일까? 작가 정 윤은 ‘아시아인, 이민자, 여성’이라는 삼중의 아웃사이더로서 정면승부를 펼친다. 미국 내 한인들의 삶을 양파 껍질 벗기듯 파헤친 것이다. 

소설 '안전한 나의 집'은 해묵은 상처와 한(恨)의 깊은 소용돌이에 범죄라는 방아쇠를 당겼다. 남과 경쟁하느라 행복을 느낄 여유조차 잃은, 가식과 비교에 젖은 한국인의 모순된 면면은 동방예의지국의 국민들이 왜 이토록 가정 안에서 폭력적으로 돌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첫 페이지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면서도 화해의 길까지 열어 보이는 서술의 힘은 데뷔작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이에 <뉴욕타임스>는 가정 내의 폭력만이 갖는 잔혹함에 공감했고, 보스턴 작가협회는 ‘줄리아 워드 하우상’을 수여했다. 섬세한 심리묘사와 적재적소에 배치된 반전은 한인사회와는 거리가 먼 미국 독자들에게도 뜨겁게 환영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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