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에세이] 엄마와 소시지

“엄마, 오늘 반찬 햄이야?”

딸아이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서 잔뜩 기대한 모습으로 물어온다. 아들 녀석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주방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우리 식구들은 햄을 참 좋아한다. 스팸, 목우촌 햄, 비엔나 소지지 등등... 고작 햄 하나 구웠을 뿐인데도 밥상이 그득해 보이고 아이들은 밥을 곧잘 먹는다. 그러나 막상 식사를 할라치면 나는 김치만 먹게 되고 햄을 구워 놓은 접시에는 젓가락이 잘 가질 않는다. 나도 햄이 먹고 싶다....

 

뭔지 모를 암울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나의 청소년 시절은 유신정권을 지나 민주화 운동이 들썩거릴 준비를 하던 때였다. 모든 것이 어렵고 부족하고 힘겨웠고 하물며 아버지의 존재조차 가물가물하던 때 엄마는 나와, 공부 잘하는 철부지 초등학생인 남동생을 거둬 먹이고 키우느라 힘겨웠을 것이다. 우리도 남들처럼 사는 줄 알았던 철없던 나는 기우는 가세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고 남동생만 챙기는 엄마가 야속하기만 했다.

어느 날 엄마는 지름이 3센티 정도 되는 진주햄 소시지를 구우셨고 그런 날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나는 밥상에 눈치를 보게 되었다. 용기를 내어 소시지 한 점 먹어보려고 했더니 엄마는 한 말씀 하신다.

“ 아 반찬, 빼앗아 먹지 마라.”

동생은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동생이 다니는 학교 학부형들은 엄마를 만나면 동생 칭찬에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보다 잘 나가는 동생을 더 챙기는 것이 당연했고 남편에 대한 원망과 당신의 서글픔 또한 그 아들이 나중에 치유해 주리라 굳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들 녀석이 밥을 먹다말고 한 마디 한다.

“엄마도 햄 하나 먹어 봐.”

그래 아들아, 나도 햄이 먹고 싶구나. 지금은 누가 눈치를 주는 이도 없는데 하나 먹어보라고 권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여전히 나는 햄을 먹기가 힘이 든다.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 불혹을 넘긴 동생은 가끔 나에게 미안하다고 한다. 어린 아이였어도 엄마가 자신과 누나를 차별하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본인도 무척 부담스러웠노라고, 엄마의 서슬이 무서워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며 미안하다고...이제 와서...

그러나 그 아이 또한 무슨 잘못이 있으랴. 어찌 보면 동생 또한 마음의 피해자가 아닐까?

“그런 일이 있었나? 아이고,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들었으면 그랬겠노?”

팔순을 눈앞에 두던 몇 해 전 노모는 그 때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고 오히려 먹고 살기 힘든 그 시절을 잘 이겨내 너희 둘을 번듯하게 키워냈음을 인정받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그 마저도 이젠 노모의 기억에서 없어진지 오래고 당신의 첫 손주인 내 딸의 안부와 애지중지 키워 낸 당신 아들의 안위만을 남겨 놓은 채 남은 여생을 하얗게 마무리하고 계신다.

아, 언제쯤이면 나는 마음껏 햄을 먹을 수 있을까. 한 끼 대충 넘기려고 억지로 구운 햄보다 그 때 엄마가 계란 옷 입힌 진주햄 소시지가 더 먹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아니, 엄마의 사랑이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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