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그릇이 아니다
사람은 그릇이 아니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9.06.1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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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세화에 가다-2회] 김혜영

또 제주다. 17년 여름에도 제주를 다녀와 이곳에 글을 썼는데, 올해는 봄도 여름도 아닌 날 제주에 다녀왔다. 다만 휴학을 하지 못한 4학년이 되었기에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2박 3일로 짧은 여행이었다. 시험이 끝난 주간도 아니었는데 왜 일정을 욱여넣어 먼 바다의 제주로 떠났을까. 세 편에 걸쳐 그 이유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두번째 이야기다.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자리한 동쪽은 제주의 대표 격인 관광지이고, 서쪽은 지드래곤의 카페와 효리네 민박을 필두로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그중 세화는 한 철 지난 동쪽이면서 북쪽에 가까워 다소 어중간한 지역이다. 내가 머문 세화의 게스트하우스는 몇 년 새 손님이 반으로 줄었고, 홀로 배낭을 메고 떠도는 1인 여행객이 찾아오고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걸 좋아하는 소수만 찾아오는 곳이 된 것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다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번엔 어떤 여행자를 만나게 될지 궁금했다.

첫 날의 대미는 쿠킹클래스였다. 기대에 부풀어 라운지의 문을 열었는데, 스텝 한 명과 손님 한 명이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알고 보니 오늘의 손님은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전부였다. 스텝은 자기소개도 없이 다짜고짜 도마와 칼을 내밀었다. 무슨 요리를 하냐고 묻자 그제야 스페인 요리인 감바스를 만들 것이란다. 감바스는 새우와 마늘로 만든 기름을 빵이나 파스타 면과 함께 즐기는 요리로, 정확한 명칭은 ‘감바스 알 아히요’다. 시키는 대로 마늘과 고추를 썰긴 써는데, 스텝의 말수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적었다. 우리는 돈을 지불하고 쿠킹클래스에 참여한 것이었다. 재료값과 인건비를 생각하면 결코 비싼 비용은 아니지만, 스텝은 호스트로서 오늘 만들 요리를 설명해주고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것이 맞다.

 

매 과정마다 허둥대며 재료를 찾지도 못하던 스텝은 이내 당연하다는 듯 도움을 요구했다. 다른 손님이 질문을 하거나 요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 머쓱하게 웃으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는 식이었다. 게다가 눈치가 없는 손님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은 여기에 치킨을 넣어도 되는지, 안 되면 돼지고기는 어떤지, 더 나아가 상추를 넣어도 되는지 등이었다. 누군가는 답변을 해야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 설명을 해주었지만, 진심으로 궁금한 것인지 사람을 놀리려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동시에 스텝의 실수도 수습해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맨 손으로 오븐을 열면 장갑을 찾아 챙겨주었고, 물이 흥건한 새우를 끓는 기름에 넣으려기에 불을 끄고 새우의 물기를 제거했다. 요리와 재료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숙지하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안전사고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마늘이 타는 걸 지켜보다 결국 손을 뻗고 나서 요리를 완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감바스와 까망베르 치즈 구이를 만들고 스텝들이 담가둔 샹그리아를 꺼냈다. 평소라면 어쩌다 여행을 하게 되었는지,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물었겠지만 즐겁게 대화를 나눌 컨디션이 아니었다. 미안한 기색 없이 나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스텝과, 눈치와 배려 없이 백 개의 질문을 던지는 손님 사이에서 빨리 먹고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정적이 흘러도 개의치 않고 손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간단한 리액션만 했다. 그런데 같이 수업을 들은 손님은 하필 오랜 시간 영업직을 해온 사람이었다. 분위기를 띄우고 빈틈없이 대화를 나누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랄까. 강연과 원맨쇼를 오고가는 그의 이야기가 대략 두 시간 정도 이어졌다.

 

그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건 돈에 관한 이야기였다. 2005년부터 사람들이 돈에 미치기 시작했다나. 그동안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부자들의 각색된 삶을 봤는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부유한 사람들의 현실과 일상을 보게 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다양한 삶의 기준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돈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돈은 편안함을 주지만 행복을 주지는 않는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행복할 것 같지만, 그만큼 시간이 없고 씀씀이가 커져서 더 많은 돈을 원하게 된다. 그가 친한 선배는 억대연봉을 벌지만 주말까지 야근에 시달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명품을 산 뒤 한 번 자랑을 하고 나면 창고에 넣어버린다고 한다. 그는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돈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역설했다. 얼마 전 서울대 출신 CEO의 강연을 들었는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며 화가 났단다. 강연자는 노력해서 더 큰 행복을 성취하라고 말했지만,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가 다르고 그릇이 작은 사람은 소확행을 즐기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인생관이나 행복의 크기에 간섭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처음보자마자 몇 살인지, 다니는 대학은 어디인지를 물었다. 학교 이름을 답하자마자 상위 1%가 어떻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과외로 더 많은 돈을 벌 텐데 왜 글을 쓰냐고 물었다. 당황스러웠다. 글을 쓰는 게 행복해서 그렇다고 말하자 믿지 않는다는 말투로 어디 언론인지를 물었고, 얼마나 대단한 능력이 있기에 대학생이면서 기자를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물론 나는 학벌권력이 있는 사람이다. 스스로 주의하고 경계해봤자 이미 학벌주의에 물들어있을 것이 분명해 그에 관한 평가나 내가 느꼈던 불쾌함을 설명하는 데 망설여진다. 하지만 돈에 미친 사람들이 싫다면서 고액과외가 아닌 글쓰기를 선택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나, 신문사를 하나도 알지 못한다면서 내가 속한 언론을 무시하는 태도는 분명 무례했다.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인데도 상대방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을 무시할 수 있다니. 상위 1%가 어떻다는 말을 늘어놓다가 당신은 뭐가 잘나서 어린 나이에 기자를 하느냐는 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 부모님 또래의 중년 남성이 그런 태도로 이야기를 이어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색하게 웃는 것뿐이다. 무슨 말을 해도 어떤 렌즈로 비춰질지 알기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왜 글을 쓰냐는 그의 질문에 이런 답을 내릴 수도 있겠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수십 가지가 되겠지만, 그 자리에서 할 수 없었던 말과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보기 위함이라는 것. 나도 소확행이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소한 행복과 거대한 행복을 나누는 기준을 모르고, 사람에 따라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릇이 아니다. 어떤 목적과 목표가 있거나 용도가 정해진 존재가 아닐뿐더러, 소확행을 즐길 수밖에 없는 작은 존재 같은 것은 없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과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관은 저마다 다르지 않을까. 그가 틀리고 내가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고, 그가 품평했던 지인들의 삶도 잘못됐다고 여기지 않는다. 명품을 한 번 자랑하고 창고에 넣어버리는 게 나쁜 일인가. 물건을 소모품으로 바라보거나 소장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일 모두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개개인이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의 문제다. 행복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단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나부터 변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문득 내가 얼마나 옹졸하고 무례한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계속 자리를 지켰던 스텝은 소확행이라는 말 자체를 처음 들어봤다며 그가 말하는 문장마다 모르는 단어를 물어봤다.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고려하지 않고 궁금한 것을 열심히 질문한 것이다. 모를 수 있다. 자신이 맡은 일이고 오랜 시간 해왔다고 해도, 모를 수는 있다. 나는 얼마나 잘난 사람이기에 잠깐 지켜본 모습만으로 타인의 직업의식과 윤리를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말수가 적은 것도 잘못이 아니다. 내가 신청한 것은 쿠킹클래스이지 ‘토킹클래스’가 아니다. 사실 다른 쿠킹클래스를 경험해본 적도 없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작게 운영하는 프로그램에서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누구나 서툴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은 재작년 제주에 와서도 느낀 것이 아니었던가. 나는 그때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못한 채 나이를 먹을수록 그만큼의 고집과 오만함만 쌓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오름에서 돌아오고 있는 친구를 기다리며, 불과 몇 시간 전에 들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서울에서 느낀 경험을 곱씹으려 왔는데, 또 다른 경험을 하고야 말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늘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분명한 것은 이 경험을 하지 않았을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다는 점이다. 전진하지 못했더라도 조금은 생각하고 느낀 것이 있으니까. 서울, 그리고 내가 있는 아주 작은 우물에 있었다면 오늘의 일을 상상도 못한 채 가만히 고여 있었을 것이다. 손 쓸 틈도 없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샹그리아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어서, 제주에 와서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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