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가족이 다시 뭉쳤다
어제의 가족이 다시 뭉쳤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6.14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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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활터에서의 표명섭씨
활터에서의 표명섭 씨

도시에서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넘쳐나서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지만, 시골에서는 넘쳐나는 일거리를 처리할 사람이 없어서 아우성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고, 어제오늘의 문제인 것도 아니지만, 눈앞에 꽃이 없을 때는 깜박 잊고 있다가 훈훈한 바람에 꽃소식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져서 “아이고 사람이 없어서 큰일이네, 큰일이네” 한다.

궁력 삼십 년여의 표명섭씨. 활터 초파정의 사두를 2년째 맡고 있는 그는 2019년도 농사철에 들어서자마자 대박을 터뜨렸다. 대박이라는 것을 기대한 바도 아니고, 우연한 행운을 소망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고 보면 대박을 터뜨렸다기보다 터짐을 당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낮이나 밤이나 싱글벙글이었다. 웃자는 생각으로 웃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느 날 홀연 웃음 바이러스 같은 것이 그의 혈관을 장악해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여기서도 웃고 저기서도 웃고, 이 사람을 만나도 웃음을 흘리고 저 사람을 만나도 웃음을 절로 막 흘리는 것이어서, 웃는다는 의식도 없이 그냥 웃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5월만 되면 할 일이 첩첩이라고 틈만 나면 한숨이나 쉬어온 사람이 이래도 히히, 저래도 힝힝 하고 있으니, 이게 뭐냐, 해괴하고 수상해서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 맡은 바 위치에서
각자 맡은 바 위치에서

“아니 사두님, 요새 뭔 좋은 일 있어요?”

“아, 그것이 그렁게, 올해 농사 걱정 끝, 아 이렇게 됐당게요.”

올해 농사 끝이 아니라 농사 걱정 끝이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했다. 농촌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대번에 아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올해 농사 끝이라면 농사를 포기했다는 말이 되지만, 농사 걱정 끝이라면 사람 문제가 해결됐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상이 제아무리 크게 변했다 해도 농촌에서는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사람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가구마다 식구가 여섯 명 이상씩은 되던 옛날에도 농번기만 되면 집에서 기르는 개라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싶다는 말이 나오곤 했었다. 요즘은 식구가 여섯 명 이상은커녕 서너 명만 되도 희귀한 현상으로 치부되고, 절반 이상이 무릎걸음으로 농사를 짓는 노부부이거나 아예 짝을 잃고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집이 태반인 시절이었다. 사람이 많던 시절에도 사람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었던 농촌에 사람마저 대폭 줄어들고 보니 농번기만 되면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

게다가 표명섭씨는 나이가 오십대 후반, 육십대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가는 중이었다. 요즘 농촌에서 오십대는 보물 같은 존재이다. 보물은 보물이되 보물 당사자에게는 하나도 보물스럽지 않은 뭐랄까, 고생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나 해야 할 것이다. 연로한 농부는 해마다 늘어만 가고, 그나마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농지까지 맡아서 농사를 지어야 하니, 어쩌다 한 명씩 있는 젊은 사람은 백여 마지기 이상의 쌀농사를 지어야만 한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눈 뜨고 보면서도 못 본 척 외면할 수가 없어서 떠안고 나선다.

“아 우리 동네서 자네 말고 또 누가 있는가.”

연로한 어른들의 이 한 마디가 젊은 사람의 어깨 위에 얹어주는 무게감은 심각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쩡쩡한 목소리로 누구야, 누구야 불러대며 팔팔하게 뛰어다니던 이웃의 아저씨가 그렇게도 심약한 목소리로 농사 부탁을 하고 있으니, 아 이것이 무엇이냐, 인생이란 이름의 무엇인가가 덩어리 채로 눈앞을 획획 스치면서 눈물이 벌컥 쏟아져 나올 것만 같고, 이상한 사명감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어쩔 것인가.

“그러지요. 걱정 마세요.”

무슨 생각을 깊이 하고 어쩔 시간도 없었다. 답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것처럼 절로 그냥 나와 버렸다. 후회할 일은 아니라 해도, 딱히 좋다고 할 일도 아니었다. 나쁘게 생각하기로 하자면 덤터기를 쓴 것이고, 좋게 생각하기로 하자면 봉사의 기쁨이 있다는 것 정도였다.

 

겁나게도 무겁다.
겁나게도 무겁다.

봉사의 기쁨, 아, 그것이 있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했을 때 다른 사람이 기뻐하고 행복해 하면 그 자체가 곧 나의 기쁨이요 행복으로 전환되는 순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표명섭씨는 오래 전부터 그 오묘한 기쁨의 순간을 알고 있었다. 겨울이면 연탄을 나르고 김장 김치를 담가서 가만히 가져다놓을 때 일어나는 마음속의 풍족한 느낌이 무슨 성분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해도, 어쨌든 그때의 기쁨이 남의 농사를 대신 지어주는 경지로까지 이를테면 진화한 셈이었다.

이렇게 해서 표명섭씨의 농사는 해마다 늘어만 갔다. 아랫집 아저씨의 농사를 맡고 나니 뒷집 아주머니의 농사를 외면할 수 없어서 또 맡고, 건넌 마을 먼 친척의 농사 또한 외면할 수가 없어서 떠안는 동안 자기 자신의 농사는 삼십 마지기도 채 안 되건만 금방 오십 마지기가 되고, 팔십 마지기가 되고, 백 마지기가 넘어버렸다. 오, 이것이 무엇이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에 파묻혀 허덕이는 일벌레가 돼 있었다. 그 바람에 늘 시간에 쫓겨서 허둥거렸다. 새마을 문고에 나가서 책도 관리해야 하고, 농협에 나가서 감사 업무도 처리해야 하고, 활터에 나가서 활 쏘는 취미도 즐겨야 하는 표명섭이가 지금 이게 뭔 짓을 하고 있는 것이냐.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그는 생각을 좀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남의 농사는 이제 그만 짓겠다고, 모질게 결심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수십 번 결심을 했지만, 하지만 매번 그날 그 순간뿐이었다. 금년에 고생 실컷 했으니 명년에는 안 한다고, 죽어도 안 한다고 큰소리 탕탕 쳐봐야 말짱 헛일이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 고생이고 뭐고 나쁜 기억은 다 사라져 버리고, 또다시 남의 논농사 걱정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사람이었다. 필요한 사람을 제때에 구할 수만 있다면 논농사 까짓 백 마지기 아니라 이백 마지기라도 처리해낼 자신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도처에 산재해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데려다 쓰면 될 것 아니냐고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제는 이력이 생겨서 부른다고 아무 데나 대뜸 나서지 않고 계산을 한다. 이를테면 고정적이고 안정적이며 지속적으로 일감을 얻을 수 있는 기업형 농장을 선호한다. 그래서 표명섭씨처럼 띄엄띄엄 가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경우에는 그저 사정이나 해야 하고, 간신히 약속을 받아놓고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다가 그날 망쳐버리곤 한다.

특히 기계식 못자리를 할 때는 한꺼번에 십여 명의 인력을 필요로 한다. 한두 명 구하기도 어려운 판에 십여 명을 한꺼번에 데려온다는 것은 상상으로나 가능할 뿐이다. 어떤 사람은 부지런을 떤다고 한 달여 전부터, 혹은 두 달 전부터 부산을 떨어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자기 혼자만의 계획이요 혼자만의 부지런일 뿐이다. 약속을 안 지키면 십 년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다면 혹시 모를까, 눈 뜨고 코 베어가도 모를 정도로 바쁜 농촌에서 약속이 온전한 약속으로 지켜지길 바란다는 것은 가히 어불성설이다.

 

모판 넣기 담당
모판 넣기 담당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거짓말 같은, 어불성설인 것만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을 구할 수 없어 고생하는 농부들 모두에게 일어난 기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일단은 표명섭씨 혼자에게만 주어진 거짓말 같은 기적이었다.

“아따 참말로, 이것이 뭔 일인지 아직도 모르겠당게요.”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그냥 벙긋벙긋 터진다는 듯이 웃고 있는 표명섭씨.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명실상부한 기적이다. 최고 등급의 기적이다.

누이동생과 그녀의 남편이, 남동생과 그의 아내가, 그리고 조카들까지, 주말에 농사를 돕기 위해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제수씨가, 누이동생이, 매제가, 심지어는 조카들까지, 천덕꾸러기처럼 버려진 농촌으로 농사를 돕기 위해 주말을 틈타 내려온단 말인가.

 

상토 넣기 담당
상토 넣기 담당

물론 의심은 있었다. 설마 정말로 내려올까? 정말로 내려온다 해도 뭐 그냥 대충 얼굴이나 보이고 말겠지? 개뿔이나 일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괜히 얼쩡거리며 민폐나 잔뜩 끼치고 돌아가겠지.

그런데 아니었다. 내려온다는 사람들은 정말로 내려왔다. 게다가 동대문 시장에서 장당 오천 원짜리 ‘몸빼이’ 바지까지 사 들고 왔다. 앞으로 주말이면 가끔 내려와서 농사를 돕겠다고, 그래서 작업 전용 바지로 ‘몸빼이’를 사 들고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누구 한 사람 뒤로 빠지는 법이 없이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못자리 작업에 나섰다.

이상한 일이었다. 농사일에 익숙하지 않은데도 손발이 척척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기적이 벌어지고 있었다고나 할까. 서로가 서로의 눈빛을 보면 그 마음을 알고, 손짓을 보면 또한 그 의미를 대번에 알아차리기 때문에, 그야말로 척 하면 척이 되어 손발이 척척 맞는다.

 

완성품 정리 담당
완성품 정리 담당

만약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렀다면 작업이 그렇게도 척척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 개개인은 나름대로 열심히 잘 하지만, 두 명 이상이 모이면 자기들끼리 온갖 정보를 주고받느라 시간을 써버리고, 한국인들과는 정서 자체가 다르다 보니 척하면 척이 안 이루어지는 까닭에 손발이 영 안 맞는다. 그러다 보니 속 터져, 속 터져 소리가 나오고, 이 소리가 반복되면 짜증이 되어 일할 맛이 떨어져 버리고, 그리하여 작업은 진도를 못 내고 헤매기 십상이었다.

진정성의 문제라고나 할까. 그래, 그런 것이 있을 것이었다. 돈벌이를 목적으로 나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진정성까지 바라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가족은, 주말에 농사를 돕겠다고 내려오는 그 순간에 이미 진정성은 탄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봐야 할 터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든 일이 힘들지 않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최종 마무리
최종 마무리

“아이고 이제는 못해. 한 시간도 못해.”

못자리 작업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조카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다. 그 말을 다른 사람이 받는다.

“여기서 더 하면 난 아마 죽을 거야.”

허리가 부러지는 것처럼 아파서 어쩔 몰라 하는 그 목소리조차도 엄살이 아닌 진정성으로 읽혀지는 까닭은 역시 그의 내부에 진정성이 있기 때문일 터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이, 혹시 새로운 유행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백일몽 같은 바람을 가져본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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