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들을 위한 행진곡
임들을 위한 행진곡
  • 김일경 기자
  • 승인 2019.06.18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덩~다다 덩~다다 덩~다다 다단~따
덩~다다 덩~다다 덩~다다 1234

오늘도 나는 알 수 없는 단어와 숫자의 조합들을 소리치며 스틱을 휘두른다. 일주일 중에서 가장 신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북을 치고 있으면 어딘지 모를 곳에서 절로 나오는 흥과 신명을 주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선생님’이란 호칭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북을 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가.

일제 암흑기와도 같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자마자 뒤늦게 찾아 온 사춘기에 시리도록 아픈 십여 년을 보냈다. 그리고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성실함과 책임감 있는 모습에 끌려 이 세상 단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임과 결혼해 몇 년 뒤 경단녀의 길로 들어섰다.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던 그 때는 워킹맘에 대한 배려나 사회 정책이 지금처럼 충분하지는 못했다. 물론 지금도 만족할만한 육아 환경이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돌봄 서비스 확충이나 아빠들의 육아휴직은 그 당시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제일 만만한 친정엄마 찬스를 이용하는 것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령이신 친정엄마의 건강을 해칠까 염려되어 눈물을 머금고 경단녀가 되었다. 눈물을 머금을 사건이 비단 내가 경단녀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뿐이겠는가.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이 세상 단 하나뿐일 것 같던 그 때 그 임은 간데없고 어느새 고집불통 꼰대만 남았다. 이를 두고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일까.

 

나라사랑 댄스대회 참가 모습,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나라사랑 댄스대회 참가 모습, 우리 팀은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 임이 꼰대의 기질을 서서히 보이기 시작할 즈음 나는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난타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법에 이끌리듯 스틱을 잡고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느 덧 십년을 넘어서고 있다. 취미로 시작한 난타는 이제 삶의 활력소가 되었고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 주시는 임들까지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인생역전이다. 난타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퍼포먼스 기질이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처음엔 두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대에 서는 시간이 행복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강렬한 무대를 구성할까 고민도 하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그런 끼가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시장을 보러 가시거나 외출을 하시면 나는 혼자 집에서 전날 봤던 드라마의 탤런트 흉내를 내며 놀았다. 존재감 없던 여고 시절 수학여행 때는 ‘흥부놀부전’을 뮤지컬로 각색해 친구들과 함께 공연하고 호평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예체능이나 예술분야는 딴따라 취급 받고 판검사, 의사만이 세상 제일 직업대접을 받던 시절. 감히 음악을 하겠다거나 예술분야로 직업을 찾겠다는 말을 꺼낸 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끼를 누르며 숨죽이고 살다가 이제야 그 끼를 발산하고 살게 되니 이리도 신이 날 수 밖에.

덕분에 소중한 임들이 많이 생겼다. 나의 구령에 맞춰서 타법을 연구하고 추임새를 해가며 열심히 난타 수업을 받고 계시는 우리 소중한 임들. 덕분에 나는 이 시간이 더욱 행복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대부분 나보다 연장자이시지만 나를 선생으로 깍듯이 대해주고 어떤 자세를 요구해도 모두 따라주시니 임들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욕구가 밀려든다. 어찌 보면 언니 같고, 이모 같은 임들이 인생의 ‘황혼길’을 멋지게 나아갈 수 있는 행진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들과 함께 임들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서 멋진 난타 공연을 선보일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김일경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