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천하부이구의(天下腐已久矣)”라는 구절은 다산이 중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 나옵니다. 나라를 걱정하고 세상을 한탄하면서 “온 세상이 썩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라고 형님에게라도 호소해야만 답답한 마음이 풀리리라고 믿고 했던 말일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산이 이룩한 학문인 ‘다산학’은 바로 이러한 한탄의 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와 세상이 썩었다고 판단했기에 썩었다면 얼마나 썩었고, 그 썩은 것을 도려내서 어떻게 해야 새롭게 썩지 않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연구 업적이 바로 ‘다산학’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말입니다.
“우(禹)임금의 예(禮:法)는 우임금이 홀로 제정한 것이 아니라 곧 요·순·우·직·설·익·고요 등이 함께 마음을 합하고, 정성과 지혜를 다해서 만세를 위해서 법을 제정한 것인데, 한 조목 한 조례인들 아무나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은(殷)나라 사람이 하(夏)나라를 대신하게 되어서는 줄이거나 보태는 것이 없을 수 없었고, 주나라가 은나라를 대신하게 되어서도 줄이거나 보태는 것이 없을 수 없었다.”(『경세유표』서문)라고 말하여 법의 개정은 불가피한 역사의 진행 방향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의 도리는 강과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 한 번 정한 것이 만세토록 변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로 보아 그렇게 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류의 이상사회였던 요순시대의 법, 주공(周公) 같은 성인이 이끌던 주(周)의 법도 시대가 바뀌면 고치고 변화시킬 수밖에 없는데, 항차 보통의 인간들이 만들었던 법과 제도를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그대로 둔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었습니다. 현행의 우리나라 헌법은 이른바 ‘87체제’라고 하여 1987년 6·10항쟁 뒤 국민의 힘으로 새로 고쳐서 제정한 법이었는데, 30년이 훨씬 지나 세대가 교체된 시기인데 그대로 두고 고치지 않는다면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시절, 모든 후보가 헌법은 개정되어야 한다고 목청껏 소리 지르고 2년이 지났는데, 헌법 개정의 이야기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을 고치지 못하는 것과 제도를 변경하지 못하는 것은 한결같이 본인이 현명하거나 어리석은 데에 연유한 것이지 천지의 이치가 원래부터 고치거나 변경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같은 글)라고 말하여 법제 개혁에 대한 의지와 능력의 부족으로 법은 고쳐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현 정부 집권 초기만 해도 헌법 개정의 열기가 대단하여 행여 30년 넘은 구체제가 바뀌어 썩고 부패한 세상이 바뀌려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 그런 이야기조차 사라져 버렸으니 어쩌면 좋을까요.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그대로 두고, 국회의 놀고먹는 관행을 방치하고서 어떻게 바르고 옳은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촘촘하고 치밀하게 법망을 쳐놓아도 부정과 부패는 사라지지 않는 것인데, 요즘의 엉성한 법제로 어떻게 부패 없는 세상을 맞을 수 있을까요. 정부와 국회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헌법 개정의 대역사에 동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