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올챙이를 만날 때
개구리가 올챙이를 만날 때
  • 김일경 기자
  • 승인 2019.06.26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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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저 멀리서 낯익은 얼굴이 다가온다. 그녀도 내가 긴가민가 하나보다. 어떻게 해야지? 아는 체를 해야 하나? 모른 체 그냥 지나가 주면 좋으련만… 그런데 저이가 누구더라? 순식간이나 별안간보다 더 짧은 시간을 뜻하는 말을 불교에서는 찰나라고 한다. 1찰나는 약 75분의 1초라고 하니 가히 눈 깜박임 보다 더 빠른 시간이다. 나는 그 찰나의 시간에 수만 가지의 생각을 했다. 누구더라? 어디서 봤더라? 그냥 지나갈까? 인사를 할까?

“어머, 안녕하세요?” 이런, 그녀가 먼저 말을 걸고 인사를 한다.

“아, 네, 안녕하세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단 인사를 받고 본다.

“잘 지내셨어요? 아이는 어느 학교로 갔어요? 아직도 난타 하세요?”

 

숭인제에서의 공연

기억났다. 둘째 아이가 중학교에 재학 중일 때 같은 학교 학부모였다. 그의 아이가 우리 애보다 1년 혹은 2년 선배였기 때문에 크게 만날 일도 없었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더더욱 없었다. 잠시 길거리에 서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자녀에 대해 관심과 용기를 건네며 서로 서먹한 공통의 화제로 옅은 미소를 전한 뒤 헤어져 돌아서는데 불현듯 찾아 드는 기억 한편. 그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그 해 가을. 나는 올챙이를 만났다.

3년 전, 둘째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큰 아이가 같은 중학교에 재학 중일 때 재능기부로 아이들에게 난타를 가르친 적이 있어서 학교 선생님들 몇몇 분은 내가 난타 강사인 것을 알고 있었다. 2학기 가을로 접어들 무렵 교장 선생님께서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곧 있을 학교 축제에 학부모님들 초대 공연으로 난타를 해보라는 것이다. 교장 공모제로 부임하신 교장선생님은 의욕이 넘치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서 학부모 초대 공연뿐만 아니라 선생님들의 공연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축제 때 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남짓.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다. 학부모회에서 인원 모집에 나섰고 학교에서는 연습장소를 마련해줬다. 음악을 선택해서 안무를 짜고 공연 구상을 해야 했다. 직장에서 퇴근하고 온 엄마, 아이들을 밥 먹여 학원 보내고 온 엄마, 식구들 저녁 챙겨주고 온 엄마 등 꽤나 관심을 보여 조금의 부담감도 느꼈다. 길에서 만난 그녀도 난타 공연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학부모였다. 스틱 한번 잡아보지도 않은 사람들이라 기초부터 다지기 시작했다. 엄마들의 의욕이 얼마나 넘치던지 매일 연습을 하자고 요구해 저녁마다 모여 두세 시간씩 북을 두드렸다. 연습하는 틈틈이 자녀 교육이나 학원정보 혹은 상급학교에 대한 수다도 늘어놓으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연습에 매진했다. 엄마들이라 자녀들 얘기를 빼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순간 난 갑자기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열정적이게 만들었을까? 어떤 이유로 이들은 이렇게 열심히 북을 두드리는 걸까? 그날 배운 타법을 영상으로 올려주면 엄마들은 집에 가서 틈틈이 영상을 보고 허벅지라도 두드려 보다고 한다. 대단한 열정들이다. 한 때 나도 그랬었다. 그날 배운 순서를 집에서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복습했었다. 그럼 그 때 나의 열정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축제까지 2주 정도 남았을 무렵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음악은 당시 유행하던 노래로 유재석과 EXO가 함께 부른 ‘Dancing King’으로 정했다. 안무와 무대 동선도 어느 정도 맞췄다. 리허설에 가까운 연습으로 자세 체크나 디테일한 동작을 수정하는 정도의 여유를 가졌다. 의상 준비에도 힘을 모았다. 엄마들은 의상에 특히나 신경을 썼는데 아이들 앞에서 창피당할 수는 없다며 캐주얼한 차림과 전통복장 사이를 고민하다가 쾌자 스타일의 전통 난타복으로 결정 내렸다. 마치 결혼식 날짜를 잡아 둔 예비신부마냥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나도 첫 공연을 앞두고 의상 결정을 하면서 얼마나 설렜던가.

 

12월22일 숭인제에서

순조롭던 준비 과정에 난데없는 복병이 나타났다. 인생이 물 흐르듯 지나가면 재미없지. 그래도 이건 너무 가혹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개별반 학생들도 난타를 준비하는데 하필이면 음악이 우리와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이 축제 참여할 프로그램을 난타로 정한 것이나, 음악을 ‘Dancing King’으로 정한 것도 시기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뒤의 일이었다. 개별반 담당 선생님도 몹시 미안해했지만 우리는 엄마들이기 때문에 양보를 해야 했다. 그들이 우리와 비교 당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음악을 빅뱅의 ‘뱅뱅뱅’으로 바꾸고 기존의 안무와 타법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다시 짜야 했다. 상황이 급박해지니 엄마들은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중학생들이지만 은근히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해서 ‘뱅뱅뱅’ 후반부에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음악을 이어 붙였다. 좀 더 특색 있는 무대를 꾸며보자는 의견을 반영해서 가면을 쓰고 나왔다가 트로트 부분에 가면을 벗고 나타나는 퍼포먼스를 넣었다.

드디어 축제 당일. 엄마들은 곱게도 화장을 하고 한껏 흥분된 얼굴로 하나 둘 모인다. 결혼식 이후로 이렇게 진한 화장은 처음 해 본다며 빨간 립스틱에 볼터치까지 절세미인이 따로 없다. 이른 시간이었는데 미장원도 다녀왔다며 거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말로만 하고 옷맵시며 화장을 고치기에 여념이 없다. 그 흥분되고 상기된 모습들이 나의 첫 공연 때와 교차되며 귀신같은 화장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름 무대화장이랍시고 얼마나 떡칠을 했던지. 눈은 퍼렇고 입술은 뻘겋고 머리는 꼭대기에 묶여 있던 나의 첫 무대가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 때는 두려움과 설렘 사이를 수 십 번도 더 오갔다.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은 우리를 반겨 주었다. ‘뱅뱅뱅’ 전주가 흘러나오자 학생들은 환호성을 보내주었고 후반부에 ‘내 나이가 어때서’를 듣더니 박수와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공연을 마치고 내려올 때까지 학생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었으니 오히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감동을 받은 겪이 되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였던 공연을 끝으로 엄마들은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물론 그 날 저녁 그간의 노력들과 애썼던 시간들을 술잔에 부딪치고 아쉬움을 안주 삼았다. 그녀들의 인생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기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지속적인 만남을 가질만한 이유는 없었다. 원래 학부모들은 자녀를 매개체로 이루어진 모임이다보니 자녀와의 연결고리가 없어지면 자연스레 기억에서 잊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씩 그 때를 떠올려본다. 솔직히 그녀들이 그립기도 하다. 개구리 알에서 갓 태어난 올챙이 같은 그녀들에게 뒷다리를 붙여주고 앞다리를 자라게 했던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함께 뛰어오르자고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한 때는 나도 개구리가 되려고 더 많이 연습하고 공부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과한 액션을 하던 올챙이 때가 있었다. 앞으로도 나는 많은 올챙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에게 튼튼한 뒷다리를 자라게 해 주고 지탱할 수 있는 앞다리가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해서 그들의 북소리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안겨줄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 오를 것이다.

<김일경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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