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따는 사람의 마음은, 나비 잡으러 가는 소녀의 그것이 되어야만 한다
오디 따는 사람의 마음은, 나비 잡으러 가는 소녀의 그것이 되어야만 한다
  • 김수복 기자
  • 승인 2019.07.01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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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 오형렬 전영숙 부부의 새로운 삶

뽕 밭에서 오디를 따는 할머니들은 잠시도 입을 닫아놓지 않는다. 입을 닫으면 힘든 일이 더 힘들기 때문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그야말로 온갖 이야기를 주마간산 격으로 마구 늘어놓는다. 정신을 바싹 차리고 새겨듣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기 어려워서 재미가 하나도 없지만, 인내심을 갖고 옆에서 가만히 엿듣고 있노라면 점차 그 줄거리가 잡히면서 재미가 있어져 가기 마련이다.

 

오디 따기
오디 따기

“나도 한때는 농사철만 되믄 사모님, 사모님 해싸며 찾아오는 농협 직원들도 있었건만 잉? 시방은 에이고 참말로.”

“사모님은커녕 그냥 인동떡이제?”

“그것조차도 아니여. 인동떡도 아니고 그냥 할머니, 할머니는 어디 사는 뉘시오? 아 이 지랄들을 해싼당게.”

듣다 보니 문득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지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가 싶더니 엉뚱하게도 피식,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가슴이 먹먹해져 간다. 사람이라는 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거, 팔팔하던 청춘이 점차 늙어져서 알아봐주는 사람도 없어져 간다는 거, 이게 대체 무엇인가 말이다.

“오매 깨져 부렀네, 아이고 으쩔까.”

할머니 한 분이 깜짝 소리를 지른다. 어느 순간 긴장이 풀려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그 바람에 오디가 깨졌다. 한 알의 오디라도 깨지지 않게 따야 한다는 그 마음이 나를 숙연하게 한다. 그 할머니에게 있어 오디는 단순한 과일이 아니다. 돈 받고 파는 상품도 아니다.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이다. 생명을 아차 실수로 깨트려버렸으니 이걸 어쩌나, 어쩌나 하는 것이다.

 

바람에 떨어진 오디
바람에 떨어진 오디

아, 그 마음을 뭐라고 표현해야 옳은지 모르겠다. 잘 익은 오디 열매를 한참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내 영혼이 오디에 삼투되는 것 같은, 마침내는 내 육신마저도 오디가 되어가는 것만 같은 그 이상하고도 기이한 느낌 뒤에 일어나는 이제야 뭔가를 알겠다는 안도감 같은 것,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오매 깨져 부렀네 으쩔까.”하고 놀라워하는 할머니의 그 말씀에나 살짝 기대어 보면 답이 나오려나?

오디가 익어가는 계절에 뽕밭을 들어가면 시인 김수영이 얼핏 생각난다. 바람이 불면 풀잎이 먼저 눕는다고 했던가. 익은 오디는 바람이 불면 후둑후둑 그냥 떨어져 내린다. 그래서 오디 농사를 대량으로 짓는 농장주는 바닥에 그물을 깔아놓고 뽕나무를 흔드는 방식으로 오디 수확을 하기도 하지만, 열매의 깨짐과 거기에 달라붙는 잡티로 인한 불량을 감수해야만 한다.

제대로 잘 익은 오디는 그 생김과 색깔이 오묘하다. 짙은 코발트색이라고 해야 하나, 로열 블루라고 해야 하나, 사전에서는 흑자색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뭔가 미진하다는 느낌이어서 안타깝기만 하다. 무엇보다 서른 개 남짓의 영롱한 작은 구슬로 이루어진 오디 열매는 어찌나 반짝반짝 빛나는 탱글탱글한 생동감이 느껴지는지, 무한대의 빛을 내부에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자체가 생명의 정수 아니 원소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제대로 잘 익은 오디는 생명의 원소인 것만 같다.
제대로 잘 익은 오디는 생명의 원소인 것만 같다.

손을 대면 금방 터질 것만 같고, 실제로도 거칠게 다루면 툭툭 터지는 오디를 따는 사람의 마음은 뭐랄까, 나비를 잡으러 가는 소녀의 그것이 되어야만 한다. 뭔가 그냥 조마하고, 아슬아슬하고, 잘못 만지면 큰일이 날 것만 같아서 가만가만, 살살, 속삭이듯이 만져야만 한다. 누가 굳이 알려주지 않더라도, 한 번이라도 오디를 따본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그렇게 하게끔 되어 있다. 함부로 거칠게 막 따다가 손끝에서 알갱이가 툭 터질 때의 낭패감을 반복해서 당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서울 생활 그만두고 고창에 내려와서 오디 농사를 짓기 시작한, 내가 멋대로 뽕밭에 초보신선이라고 별명까지 붙여준 오형렬씨와 그의 부인 전영숙씨가 운영하는 뽕밭을 드나들기 시작한 지도 벌써 육 년이 되어간다.

오형렬씨는 오디 농사를 짓기 시작한 뒤로 민둥산 같던 머리에 털이 나고, 게다가 검어지기까지 했다고 그의 아내 전영숙씨는 주장한다. 만약에 다른 사람이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나는 아마 웃기는 소리라고 무시해 버렸을 테지만, 내 눈으로 시퍼렇게 보고 있으니 안 믿을 수가 없고, 그렇다고 오롯이 그냥 믿어주기에는 또 만족스럽지가 못해서 “그래? 그것 참”, 하는 식의 기연가미연가 어정쩡한 포즈를 취한 채로 피식, 피식 웃어야만 한다.

 

포장 작업에 열중인 머리털이 송송 난 오형렬씨
포장 작업에 열중인 머리털이 송송 난 오형렬씨

만약에 오형렬씨의 머리통이 예전처럼 맨들맨들 민둥산 같다면 나는 아마 기연가미연가 하는 식의 헷갈림 속으로 빠져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머리통에는 실제로 머리털이 가난한 잡초처럼 듬성듬성이나마 솟아나 있고, 그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간다. 처음 보았을 때 전두환 장군의 그것처럼 미끌미끌 하도 반들거려서 만져보고 싶기조차 했던 그 머리통이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서울 특별시민으로서의 삶을 견뎌내느라 머릿속을 꽉 채웠던 스트레스라는 이름의 각종 오염물질들이 맑은 공기를 접하면서 정화된 까닭으로 머리털이 새로 나기 시작한 것 같지만, 뽕나무 덕분이라는 전영숙씨의 주장을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든 그들은 뽕밭에서 산다. 열 마지기 남짓한 뽕나무 밭 옆에 컨테이너를 개조한 집을 세워놓고, 창고용 비닐하우스 한 동과 급속냉동이 가능한 저온창고를 번갈아 드나드는 그들의 삶은 고요하면서도 역동적이어서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아 이것이 평화라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송장을 확인하는 전영숙씨
송장을 확인하는 전영숙씨

 

이른 봄 새순이 나올 즈음에는 연한 뽕잎을 따서 선식을 만든다고 뽕밭을 누비고 다니고, 잡초가 우거지면 예치기를 등에 메고 들어가서 풀을 베어내고, 오디가 익을 무렵에는 아침 일찍부터 해가 꼴깍 질 때까지 뽕밭을 들락거리며 땀을 흘리고, 나무가 죄다 옷을 벗어버린 한겨울에는 수형을 잡아준다고 톱을 들고 다니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여유만만한 삶을 평화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평화라고 말할 것인가.

그러고 보면 그들 부부는 농사도 잘 짓는다. 농사와는 전혀 무관한 서울 특별시민 노릇이나 했었던 사람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뽕나무 밭 옆 자투리땅에 마늘을 심었다 하면 어린아이 주먹만큼씩이나 크게 자라고, 고추를 심었다 하면 주렁주렁 열리고, 오디 또한 이십 년 이상 오디 농사를 지었다는 사람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탐스럽게 반짝반짝 빛나는 과일을 만들어 내니, 농사를 제대로 잘 짓는다는 말에 틀림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서 농사를 그렇게도 잘 지은 거냐는 질문을 굳이 던질 필요는 없다. 그들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냥 답이 나온다. 돈이 된다 하면 그것이 무엇이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벙덤벙 달려가는 식의 쓸데없는 욕심으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오직 하나 자기 자신이 선택한 일에만 정성을, 사랑을 쏟아 넣고 있으니, 식물인들 사람의 그런 마음을 몰라줄 까닭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점심시간
점심시간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그들 부부의 사랑과 정성은 농사 자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내가 길러낸 농산물을 구매해주는 고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들 부부의 영원한 숙제이다. 그렇다고 헐값으로 마구 퍼줄 것인가. 그것은 또 아니다. 한 알의 오디라도 탱글탱글 제대로 잘 익은 것을 골라서 보내 드릴 수 있다면, 그러면 생산자의 마음도 편하고 구매자의 기분 또한 넉넉해질 것이다.

오형렬 전영숙 부부가 바닥에 그물을 깔고 뽕나무를 흔들어대는 일반적인 수확 방식의 채택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하나씩 따노라면 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깨지거나 티끌이 묻어나는 불량은 최소한 피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완전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살짝 덜 익은 들어가기도 하고, 깨진 것이 섞여들기도 한다. 이것을 다시 골라내야 하는데 이 일은 전적으로 전영숙씨 혼자만의 몫이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당연히 아니다. 전영숙씨 자신이 그 일은 자기만의 일이라고 선언해 버렸다. 다른 사람은 정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고, 심지어는 남편조차도 손이 거칠어서 믿을 수 없다고 선별 작업은 아예 손도 못 대게 하는 전영숙씨, 그리하여 그녀는 오디가 익은 계절이면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고르고 또 골라낸다.

 

선별을 기다리는 오디
선별을 기다리는 오디
완전 수동 선별
완전 수동 선별

덜 익은 골라내고 나면 티끌이 묻어 있는 게 있어서 또 골라내고,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골라내고, 성장 과정에서 뭐가 잘 못 돼서 형태가 기이하게 뒤틀린 것들 또한 일일이 다 골라내고 있는 전영숙씨의 자세는 엄숙하기조차 해서 종교적이라는 느낌조차도 든다. 하긴 이런 엄숙함이 있었기에 한 번 고객은 잊지 않고 때가 되면 또 찾고, 또 찾는 영원한 고객으로 자리매김하게 됐을 것이다.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말로 강소농이란 용어가 있다. 규모는 작지만 강하게 내실 있는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오형렬 전영숙 부부의 오디 농사야말로 강소농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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