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5년 전 여름. 오빠가 모스크바에 갈 일이 생겼다며 비행기 값만 내면 데려가 주겠다고 했다. 돈도 없는데 뭔 여행이냐며 나는 옷소매의 실밥을 뜯고 앉아 있었다. 그러자 새언니가 말했다.

“당신이 내주는 게 어때?”

“상습범이야 아주!”

오빠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빈말을 해주었다.

“눈먼 돈 생기면 갚을게.”

모스크바에서 더위 먹었다고 하면 왠지 거짓말 같지만 그곳의 여름은 겨울만큼이나 유별났다. 아주 찜 쪄 먹을 듯이 태양이 이글거렸다. 영어를 모른다며 아무데나 우리를 내려놓고 간 ‘택시노마스키’ 때문에 가방을 질질 끌고 다니느라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어떻게든 빨리 시원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철퍼덕 엎어져버리고 싶었다. 겨우겨우 찾아낸 숙소를 후딱 한 번 훑어보던 중 호텔 왼편 코너 벽 쪽으로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 게 보였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예의 주시하며 이곳이 구소련의 한 구탱이였음을 잊지 말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커피 한 잔씩 여유롭게 뽑아들고 붉은광장에 잠들어 있는 레닌을 보러갔다. 크렘린 성벽을 따라 끝도 없는 줄이 늘어서 있어 따라가 봤더니 레닌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들어가겠지 싶어 길고 긴 행렬의 끝자락을 붙들고 몇 시간을 땡볕에 서있었다. 그런데 우리 바로 앞에서 줄이 딱 잘리더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눈 뜨자마자 얼음물까지 챙겨 들고 레닌을 만나러 갔다. 그랬더니 이번엔 휴관일이라며 우리를 밀어냈다. 호텔 벽면에 나있던 총탄 자국만 보지 않았더라면 “니들 장난하냐!” 삿대질이라도 할 뻔했다. 하지만 태생이 겁이 많은 우리 오누이는 콧구멍만 벌렁거리며 “레닌 두고 보자…” 이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그 이후,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바실리 성당을 후딱 들렸다가 지하 벙커처럼 생긴 지하철역으로 하염없이 내려가 엄청난 소음을 일으키는 지하철을 타고 톨스토이가 살았다는 집을 찾아갔다. 마치 이건, 어린 시절 잃어버린 부모 형제를 찾아 나선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그곳엔 영어로 된 표지판이나 안내가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남의 집에서 화장실 찾는 격’으로 되는 대로 돌아다녔다. 우리 모두는 몹시 지치고 더위를 먹어 다리를 질질 끌며 좀비처럼 돌아다녔다.

 

모스크바의 밝은 밤(백야)을 지새우고 붉은광장으로 다시 나섰다. 우리보다 더 독한 관광객 몇몇이 먼저와 줄을 서 있었다. 오빠는 그 사람들이 붉은광장에서 노숙을 했을 거라며 존경스럽다고 했고 새언니는 레닌을 보고 싶은 마음이 콩알만큼도 없다고 툴툴 대며 우리보다 앞장서서 줄을 섰다. 큰언니는 후딱 보고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지겹다고 했고 잠을 설친 나는 아무데나 기대서서 졸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문이 열리고 우리는 레닌을 만나러 갔다. 어두운, 아주 어두운 지하로 걸어 내려갔다. 빛 한 점 없는 그곳을 발로 더듬어 내려가자 지하 벙커 같은 곳에 환한 불빛이 보이고 거기에 검은 양복을 입은 레닌이 누워있었다. 좀 더 가까이서 좀 더 머물며 보고 싶었지만 뒤에서 끝도 없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지금 우리가 뭘 본 거니?”라는 의문만 남긴 채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그토록 오랜 시간 기다렸던 그와의 만남은 그렇게 찰나에 쫑이 났다. 오빠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닌의 코라도 살짝 비틀어볼까 싶었지만 참았다.”

“나 역시 레닌의 뺨을 살짝 꼬집어보고 싶긴 했어.”

새언니는 우리 둘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힐끔 보더니 뚝 떨어져 걸었다.

뭐 아무튼. 우리는 레닌을 봤고 이제는 배를 채우기로 했다. 여전히 모스크바의 여름은 지글지글 거렸고 맛집을 찾아 헤매느라 모두 정신이 반쯤 나가있었다. 거기다 혼잡한 거리에서 관광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몇몇이 끈질기게 따라붙다가 급기야 오빠의 신경을 긁어놓았다. 고성이 몇 번 오가고 그들이 사과를 하자 우리는 물건을 팔아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찾아간 음식점 무무(MyMy: 러시아 말로 소 우는 소리 무우~). 허기지고 덥고 지친 우리는 미어터지는 유명 음식점의 한 귀퉁이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앉았고 얼이 반쯤 나가 있었다. 직원이 테이블에 사람 숫자만큼 뭔가를 주고 갔다. 살펴보니 알로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봉지였다. 그곳이 음식점이었고 너무 지쳐있었고 배도 고팠기 때문에 알로에 그림이 붙어있는 작은 봉지를 찢어 단숨에 쭈욱 마셔버렸다. 목구멍에서 식도를 타고 불구덩이 같은 게 쑤욱 내려갔다. 나는 조용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불타오르는 목구멍과 식도에 남아있는 그것을 될 수 있는 대로 있는 힘껏 뱉어냈다. 입에 물을 넣어 헹궈내자 끝도 없이 거품이 나왔다. 순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한 푼 안내고 따라온 동생이 모두가 잔뜩 예민해져 있는 이 시점에 갑자기 손세정제를 처마시고 숨넘어가는 꼴을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싫었다.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야?”

“으..응. 속이 좀 안 좋아서…”

“그래도 이거 다 먹어야 돼. 너 먹으라고 엄청 많이 시켰다.”

 

그날 나는. 손세정제 향이 가득한 입으로 음식을 먹고 손세정제와 섞인 음식을 위장에서 소화 시켜 손세정제와 함께 내보내고 내보내는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나 혼자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이다. 모스크바는 나빴다. 영어로라도 표시를 해두는 게 관광객을 맞이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나처럼 누군가는 락스를 마실 수도 있고 샴푸를 마실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죽기라도 했으면 뉴스에 이렇게 나오지 않았겠냐 말이다.

“40대 한국인 여성 관광객. 모스크바 젖소음식점 화장실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사망. 일행의 증언에 따르면 오전에 레닌의 묘를 다녀온 후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무척 우울해 보였다고 합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부검을 해봐야 알겠지만 평소…”

그 다음 날인 2014년 7월 15일. 모스크바 지하철역에서 대규모 탈선 사고가 있었다. 23명 사망에 160명이 부상을 입은 큰 사고였다. 우리가 타려고 했던 바로 그 지하철이었다. 그리고 이틀 뒤. 우크라이나 반군이 쏜 미사일에 맞아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추락해서 승객 295명이 전원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두 사건 모두 우리가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그 기간 동안에 지척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언니와 오빠는 행여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에도 미사일이 따라붙으면 어떻게 하냐며 내내 불길한 소리만 해댔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그때 그 여행 이야기가 나오면 지하철 사고와 비행기 사고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노라고 다행히 운 좋게 살아남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진짜 죽을 뻔 한 건 나였고 진짜 운 좋게 살아남은 건 바로 나라고. 미사일보다 지하철 탈선보다 더 위험한 건 바로 ‘손세정제’였다고 말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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