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강기갑 전 의원-1회

3.1절은 지났지만 ‘3.1운동 100주년’ 해인 금년. 어느 때보다 민족의 화합과 번영을 도모해야 한다는 요구가 각계각층에서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그 어느 때보다 진영논리, 이념논쟁으로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친일 문제, 분단 문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설전이 오가고, 온 겨레가 함께 해방을 외쳤던 100년전 그날과 3.1 정신은 유명무실해진지 오래다. 철지난 이념논쟁은 외부 시각에서 우리 내부의 반성 없는 잇따른 자살골처럼 비춰질지도 모른다.

일례로, 김일성이 한국전쟁을 일으킨 사실은 구소련 기밀문서를 통해 이미 드러났다. 그렇다고 김일성을 분단과 한국전쟁의 원흉으로 단정하기에는 곤란함이 따른다. 원흉이 김일성을 비롯 소련과 중국 공산당인지, 국권을 찬탈한 일본인지, 친일파인지, 이승만인지, 아니면 이들 모두인지 제대로 밝히기 위해선 합리적인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런 부분 역시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 채 ‘의견이 다르면 죽일 놈’ 프레임에 가두려는 시도는 여전하다.

 

강기갑 전 의원
강기갑 전 의원

우리사회의 미숙함을 방증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약산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건 MBC드라마 ‘이몽’은 방영되기 전부터 태극기부대와 자유한국당에게 시달려야 했다. 참고로 김원봉은 김구보다 현상금이 높았던 독립운동가다. 해방 이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북으로 넘어간 것이 극우세력들에게 약점으로 이용되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한국전쟁 주범’ 김원봉이라는 주홍글씨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한때 김원봉 서훈을 둘러싼 여야의 고성에 반민특위 시절을 연상케 한다는 등의 씁쓸한 세평이 주를 이뤘다.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던 강기갑 전 의원(17,18대 국회의원, 통합진보당 전 대표)은 현재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이념적 논란을 지켜보면서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고 토로한다.

“3.1운동 100주년 해인데 아직도 친일이나 분단에 대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세력들이 있다. 또 그게 먹혀드니까 그런 세력들은 전체 국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보들만 반복한다. 이런 정세도 결국 대물림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전직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다. 스스로 부끄럽고,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을 자격을 갖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일파 세력에게 칼을 쥐어준 건 우리정부다. 그러니 일본보다 우리에게 먼저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일본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역사바로세우기’를 우선해야 한다.”

여전히 정리가 되지 않은 근현대사가 역사적 전진을 꾀해야 할 후세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 엄정한 심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강 전 의원은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고민한 이후 친일세력들에 대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반성과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승만은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고 미군정에 있던 친일파들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좌익으로 몰아버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정리정돈이 안 된 것이다. 김원봉 역시 북으로 가기 전부터 좌익으로 몰려 목숨이 위태위태했다”고 설명했다.

100년의 시간은 일제시대,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굴곡의 현대사였다. 이제 우리사회는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제도적, 구조적 틀에서 보자면 우리 정부에서 키를 잡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유엔사라는 대리 주도권 구조가 돼 있는 한, 미국의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 실마리도 쉽사리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강 전 의원은 “미국이 조금이라도 손가락이나 눈짓으로 까딱거리고 동의하지 않으면 구조적이거나 제도적으로 우리가 앞장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정권 차원 교류가 아니라 민간과 경제교류를 우선해서 남북간 서로의 여러 가치관을 차근차근 공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이어 “자그마한 호미로 물길을 내면 물은 아래로 흐른다. 큰 강 공사가 아닌, 작은 호미로 물길 내는 게 민간교류라고 할 수 있겠다. 큰 강보다는 지류를 활용해야 한다는 얘기”라며 “지류가 큰 도랑이나 큰 강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런 흐름은 정권 차원에서 막을 수 없다. 정권이나 정치권에서 진정 남북관계 진전을 바란다면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전 의원은 수년전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국회를 떠난 뒤 경남 사천에서 농사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농군이라지만 한때 유력한 정치인이자 진보정당의 대표를 지냈기에 사회를 읽는 그의 눈은 여전히 매섭다. <위클리서울>은 강기갑 전 의원을 통해 ‘3.1운동 100주년’ 해의 뜻을 짚어봤다.

 

- 요즘 근황이 어떤가. 농사일이 어떤가부터 궁금하다. 지난여름처럼 올 여름도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떤 각오로 농사일에 임하고 있나.

▲ 기후변화가 서서히 오면 인간과 작물들은 자연에 적응해야 한다. 해가 갈수록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니 적응에 어려움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웬만한 더위나 기후변화에 굴복할 농민들이 아니다. 대다수 농민들은 농사가 천직이고 생명산업으로 보기에 잘 극복한다. 여름도 여름이지만 겨울도 문제다. 예전엔 삼한사온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매실농사에 지장이 많다. 낮엔 기온이 올라가 덥고, 아침저녁으로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져 매실 열매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어쨌거나 지난여름에 이어 올 여름도 걱정이다. 수확이 3분의 1로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 국회를 떠난 뒤 매실원액 관련된 농사일로 주목을 받았다. 여전히 잘 풀리고 있는지.

▲ 대부분 매실농가들 수입이 절반이하로 떨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오랜 기간 미생물 발효가공을 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큰 타격은 없다. 매실발효 농업의 경우 보통 3년 정도 숙성효묘를 간직하고 있어야 그 후일에 경제적 충격이 와도 완충할 수 있다. 다행히 저는 그 이상 되어서 충격이 덜하다. 그렇지 않은 농가들은 조절이 되지 않아 충격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 매실 농가들은 매년 매실 가격이 하락해서 나무를 베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인건비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급격하면 아무래도 농업과 농촌이 타격을 많이 받는다.

 

- 미생물 발효의 전문적 용어인 마이크로바이옴(‘미생물’과 ‘생태계’의 합성어). 지금까지 이 농법이 국회와 학계, 그리고 여러 시민사회단체로부터 각광을 받았다. 수익 창출, 국민 건강 등과 관련 여전히 현재진행형인가.

▲ 대한민국 농업은 갈수록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외국 농산물과 비교해 가격이나 물량으로는 경쟁 상대가 안 된다. 살아남을 길은 수입되는 농산물과 국내농산물의 차별화에 있다. 더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 식탁은 여러 식품첨가제 때문에 추락하고 있다. 식탁의 추락은 곧 우리 국민 건강의 추락이고 우리 농업의 추락을 의미한다. 실제 한국의 국민건강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기록되고 있다. 아이들은 아토피, 천식, 자폐증 등으로 고생하고 성인들은 각종 성인병으로 고생한다. 쌀을 제외하면 우리 식탁은 95%에 해당하는 수입농산물과 각종 첨가제에 점령돼 있다. 이 수입농산물, 식품첨가제 허용을 지양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다소 요행스럽지만 제가 시골집에서 발효된 매실원액을 발견한 이후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농림부 장관도 이 연구물을 흔쾌히 받아들여 농림부 산하 미생물농업활성화 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농촌진흥청, 산업계, 농민단체들도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우리도 우리지만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에서부터 이미 마이크로바이옴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여간 농림부 장관이 결단해 농림부 차관과 제가 이 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여러 기관이 손잡고 적극적으로 이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4월 위원회가 출범했다. 한국마이크로바이옴협회의 경우 이 부분을 선전하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교육하는 포럼도 이어가고 있다. 우선은 농민들의 인식 전환이 요구되는데, 이게 좀 어려운 부분이다.

 

- 인식전환은 비단 농민들에게만 요구될 사안이 아닐 것 같다. 마이크로바이옴, 구체적으로 어떤 메리트가 있나.

▲ 제가 일하는 매실농사 땅이 1만2000평 정도다. 비교적 큰 규모다. 일반 농민들에게는 농사하기 쉬운 조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축산을 병행하는데 그 이유는 매실농사와의 유기성 때문이다. 매실로 인한 발효사료를 쓰기에 매실이 자라나는 토양에 최고 양질의 퇴비를 공급해서 가축의 건강도 도모한다. 축산도 일반 축산이 아닌 것이다. 매실과 가축이 이른바 유기농법, 상생농법으로 함께 하고 있다. 축산의 경우 매실로 인한 발효사료를 쓰기에 가축들도 건강하고 배설물에 냄새도 나지 않는다. 가축 배설물 냄새난다는 이유로 농촌에 오지 않는 도시인들이 많다. 힐링을 하고 싶지만 냄새 때문이다. 농촌에서 가축 배설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많은 농토가 까다로운 도시인들에게 힐링캠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농촌도 농촌 나름대로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인들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상생 아니겠는가. 아무튼 현재는 이런 농법을 보급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사실상 다른 사업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농촌 논의를 좀 더 확장하자면, 어업도 양식장에서 발효사료를 주게 되면 바다 오염도 줄어들고 양식 질병도 사라진다. 이런 영향을 줄 수 있는 농법이기에 큰 욕심 내지 않고 이 미생물 농법에만 전념하고 있다. 본보기 시범 농장을 구축해서 이것이 하나의 씨앗이 되고 불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운동을 전국적으로 퍼트려서 농민도 살고 땅도 살리고 식탁도 살리고픈 바람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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