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재산 털어 독립운동 했지만 돌아온 건 폭압의 대물림 뿐”
“온 재산 털어 독립운동 했지만 돌아온 건 폭압의 대물림 뿐”
  • 최규재 기자
  • 승인 2019.07.05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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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강기갑 전 의원-2회

<1회에서 이어집니다.>

강기갑 전 의원
강기갑 전 의원

- 인식전환은 비단 농민들에게만 요구될 사안이 아닐 것 같다. 마이크로바이옴, 구체적으로 어떤 메리트가 있나.

▲ 제가 일하는 매실농사 땅이 1만2000평 정도다. 비교적 큰 규모다. 일반 농민들에게는 농사하기 쉬운 조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축산을 병행하는데 그 이유는 매실농사와의 유기성 때문이다. 매실로 인한 발효사료를 쓰기에 매실이 자라나는 토양에 최고 양질의 퇴비를 공급해서 가축의 건강도 도모한다. 축산도 일반 축산이 아닌 것이다. 매실과 가축이 이른바 유기농법, 상생농법으로 함께 하고 있다. 매실로 인한 발효사료를 쓰기에 가축들도 건강하고 배설물에 냄새도 나지 않는다. 가축 배설물 냄새난다는 이유로 농촌에 오지 않는 도시인들이 많다. 힐링을 하고 싶지만 냄새 때문이다. 농촌에서 가축 배설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많은 농토가 까다로운 도시인들에게 힐링캠프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농촌도 농촌 나름대로 공간을 제공하고 도시인들과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상생 아니겠는가. 아무튼 현재는 이런 농법을 보급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사실상 다른 사업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농촌 논의를 좀 더 확장하자면, 어업도 양식장에서 발효사료를 주게 되면 바다 오염도 줄어들고 양식 질병도 사라진다. 이런 영향을 줄 수 있는 농법이기에 큰 욕심 내지 않고 이 미생물 농법에만 전념하고 있다. 본보기 시범 농장을 구축해서 이것이 하나의 씨앗이 되고 불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운동을 전국적으로 퍼트려서 농민도 살고 땅도 살리고 식탁도 살리고픈 바람이다.

 

- 화두를 옮기겠다. 3.1운동 100주년 되는 해다. 전직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바가 클 것 같다.

▲ 100년의 세월이 지났다. 어쩌면 ‘100년의 고독’이다. 우리는 독립운동의 정신과 얼을 여전히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온 몸과 영혼을 다 바쳤음에도 겨레가 하나 되지 못하고 통일하지 못하는 부분은 안타깝고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식민지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을 펼쳤던 독립운동가들의 면면을 보면 부끄럽기 그지없다. 전직 정치인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렇다.

 

- 3.1운동 100주년과 관련 일본의 입장에 대해서는 크게 대두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일본 입장을 왜 신경 쓰는가. 일본을 비판하기 이전에 우리 문제가 더 크다.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고도 독립운동가들이 친일파로부터 처단되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다. 이런 사실은 전에도 밝혀졌고 지금도 새롭게 밝혀지고 있다. 최근까지 미군정 비밀문서에도 모든 게 드러나고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다. 일본은 36년간 다른 나라를 침략한 당사국이다. 무자비한 살상을 자행하고 인권을 짓밟았다. 지금도 여전히 참회나 속죄의 자세가 없는 것 보면 그 나라에 대한 분노도 금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부끄럽고, 우리가 사죄를 받을 자격을 갖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친일파 세력에게 칼을 쥐어준 건 우리정부다. 그러니 일본보다 우리에게 먼저 반성을 요구해야 한다. 일본을 탓하기 이전에 우리 스스로 ‘역사바로세우기’를 우선해야 한다.

 

- 녹두장군 전봉준과 3.1운동 100주년을 연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배경이 있다면.

▲ 일제시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봉준은 척양척왜, 홍익인간 사상을 기반으로 유익한 정신을 당대 우리 민족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 했다. 그런데 실제 그 당시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폭정, 학정에 대해 반성하거나 되돌릴 생각은 못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권력을 갖고 청과 일에 붙으려고 했다. 외부 지배세력 때문에 당시 우리 조상들은 원한을 품고 들고 일어났다. 그런 정신과 삶을 되돌아볼 때 정말 이 역사가 계속 쳇바퀴 돌듯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임정 100주년 기념사업회가 기념 중인 동학운동, 3.1운동, 4.19, 60항쟁 등의 면면을 보라. 원한 섞인 푸념은 되풀이된다. 자유당 시절 부정선거로 들고 일어났는데 다시 군사쿠데다가 일어나고 훗날엔 광주사태까지 벌어진다. 군정이 다시 정권을 되찾고 6.10 항쟁이 일어났지만 또 다시 노태우 세력에 의해 역사가 멈춘다. 우리 역사가 왜 이런가. 커다란 민중의 깨어남과 일어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는가. 그 원인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에 기인한다. 물론 역사는 단추 하나 잘못 끼워 엄청난 결과로 이어지는 정도로 쉽게 설명될 수는 없지만, 잘못된 관행 하나가 대물림 되는 것 같다는 인상만큼은 지울 수 없다. 동학운동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3.1운동 시기만 해도, 세계에서 그렇게 독립운동한 나라가 어디 있었는가. 당시 우리 조상들은 온 재산 털어서 독립운동을 했다.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 앞잡이 하며 자국인 박해한 친일세력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일어나지 않았다. 3.1운동 100주년인데 아직도 친일이나 분단에 대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세력들이 있다. 또 그게 먹혀드니까 그런 세력들은 전체 국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보들만 반복한다. 이런 정세도 결국 대물림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서 국민들 정치의식이 어서 각성되어 진화하지 않으면 우리 정치 수준도 제자리걸음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개인적으로 엄습한다. 국민 정치의식 수준이 그 국가의 수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영국의 속담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이 역사와 정치에 대한 성찰과 깨달음을 적극적으로 개진했으면 한다. 진실을 제대로 알고 추적해서 역사의 잘못된 관행을 종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 농업 문제와 관련 ‘한일 관계’가 언급된 적은 잘 없다. 농업인으로서 양국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면.

▲ 일본은 사실 정부 차원에서 농업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그들은 농업강대국과 FTA를 거의 맺지 않는다. 그들은 자국의 농업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한일 관계를 떠나 한국과도 FTA도 체결 안하려 한다. 파프리카를 우리가 수출하고 있지만, 자국의 농업을 지키기 위해 자국 내에서 파프리카 생산이 잘 될 땐 수입을 안 한다. 우리로서는 조금 변칙적인 그들의 행태를 비판할 수 있지만 자국의 농업을 지키기 위한 일본 농업 정책의 자세는 본받을만하다. 농산물은 경제논리가 아니다. 생명이다. 농업기반은 한번 무너지면 10년, 20년 지나도 회복하기 힘들다. 일본의 농업열정은 얄밉지만 그 진정성은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일본이지만 우리 농민 입장에선 밉지 않은 이유다. 제가 국회 있을 때 일본 농업과 협력관계 가지자고 했었다. 일본과 우리가 힘을 합쳐 동서를 막론하고 주변의 막강한 농업 강국들에게 저항해야 한다는 취지로 안건을 냈었다. 센 발언은 아니고, 농산물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내자, 그 정도였다. 현재로서는 어떤 교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민간차원에선 아무래도 일본이 가깝고 식자재나 식성이 비슷하기에 교류가 잘 되는 정도로 알고 있다.

 

- 한때 진보정당에 몸담았다. 정치인이었던 시기 ‘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

▲ 일본 식민지 시대 철도, 저수지, 다리 등 이런 것들만 놓고 보면 그들의 기술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해방을 맞이하고도 일본인들의 지휘 하에 건설되었던 모든 교량과 축대, 수로 등은 엄청 여물었다. 정말 대한민국을 자기들 나라라 생각한 듯 견고하게 만들어 놓았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 겪은 일이 있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다리를 해체하는 공사를 하는데 공사하는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부서지지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장점들은 본받을만하다. 이렇듯 산업시설들의 성과가 어느 정도 이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물질적 성장의 효과나 성과보다는 정신적인 피해들이 몇 십 배 더 크다. 일제 시대의 향수를 이어받은 박정희도 경부고속도로로 큰 업적을 쌓았지만, 당시 농촌에선 초가삼간 다 태워졌다.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지만, 슬레이트 지붕으로 대체되면서 지금 농촌은 석면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도 고민이 많다. 시골에선 북쪽에 고속도로 나면 북향하는 강제농정을 펼치기도 했다. 이게 식민사회에서 군사독재시절 겪었던 기간까지 더해지면서 정신적으로 황폐해졌다. 이런 정신적 황폐화는 물리적 현대화로 위안 받을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근대화를 자발적으로 밟았다면 정말 위대한 국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억눌린 상태로 근대화가 되었다. 억지 강제성으로 근대화 된 업적은 실제 멀리 내다보면, 결국 그런 문제 때문에 우리 민족이 분열되고, 따라서 우리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한 피해 후유증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자리를 통해 다 말할 수 없지만, 식민지 근대화론은 단기적이고 좁은 안목으로 잣대를 정해놓은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효과론과 성과론을 갖고 순간적으로 깃발을 내 흔드는 것에 불과하다. <3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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