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기획] 여기, 주나 캐나다살기-3회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 문구이다. 좋아하는 걸 실행하고자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로키 산맥에서 살아 보고, 오로라 보러 다녀오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일 해보고,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내 꿈은 소박하다. 캐나다에 도착 한 순간 다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으니까. 꿈을 좇는 그 세 번째 이야기.

 

내일도 이 곳에 있을 건데 마치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 것처럼 눈에 담았다.

캐나다에 입국 전,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도, 가족과 친구들과 오랜 시간 떨어져야 한다는 외로움도, 영어에 대한 막막함도 아니었다. ‘어디서 살아야 잘 살았다고 소문이 날까?’였다. 한국(서울)에서 첫 자취방 구할 때도 어디서 살지 엄청난 고민을 했었다. 하물며 우리나라보다 약 100배 큰 면적을 가진 캐나다에서 살아야 하는 지역을 결정해야 하는데 어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짜 매일매일 마음과 생각이 흔들렸다. 아니,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다. 일단 대도시와 소도시 중에서도 고민이 되었다. 대도시를 간다면 동쪽 지역이냐, 서쪽 지역이냐. 소도시를 간다면 산 속이냐, 바닷가 근처냐… 아 정말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도 행복한 건 가기 싫은 지역이 많은 게 아니라, 가고 싶은 지역이 많았다는 것이다. 밴쿠버, 캘거리, 토론토, 퀘백, 옐로나이프 등 유명한 지역에서도 살아 보고 싶었고, 찾아보니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밴프, 빅토리아, 휘슬러 등 숨은 보석 같은 지역들도 많아 고민이 됐다.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그냥 떠나보면 되잖아? 그리고 그냥 살아 보면 되잖아? 살아 보고, 아니면 또 떠나고, 좋으면 머물고 말이다.

그렇게 첫 번째 도착했던 지역이 밴쿠버였고, 일주일 만에 그곳을 떠났다. 애초에 90퍼센트 마음에 들던 지역이 있었기에 밴쿠버엔 정이 가지 않은 게 사실이다.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밴쿠버에 정이 가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을 이끈 곳은 알버타주 로키산맥에 위치한 캔모어(can more)라는 지역이다.

 

캔모어 동네 기찻길. 여기를 봐도 그림, 저기를 봐도 그림
캔모어 동네 기찻길. 여기를 봐도 그림, 저기를 봐도 그림

온통 머릿속에 캐나다 생각으로 가득했던 때, 우연히 눈이 쌓여 있는 산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이미 스위스 알프스 산맥도, 네팔 히말라야도 다녀온 내가 사진 한 장을 보고 매료되다니. 엄청난 곳임을 직감했다. 그 곳의 이름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바로 ‘Canmore’였다. 맞다. 10년 전 유행했던 그 카페 이름과 같다. 대한민국에 파르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그네 타면서 생크림이랑 식빵 토스트 리필 해먹던 그 곳 말이다. 유행이 한참 지나고도 나와 내 단짝친구는 동네 캔모어가 없어질 때까지 단골손님이었고, 어느 날 사라진 자리를 보며 마음 아파했었다. 그렇게 나의 학창시절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의 추억이 가득한 캔모어. 그런데 그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나의 추억 속 이름과 같다니.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로키 산맥에 위치 한 캔모어는 근처 밴프라는 지역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지역이라고 한다. 캐나다인들이 은퇴하고 살고 싶어하는 밴프. 인구가 너무 많아져서 더 이상 거주자를 받지 못 하게 되자 30분 거리에 새로 마을을 만들면서 마을 이름 공모전을 열었다고 한다. 그 공모전에서 1등해서 탄생 한 이름이 ‘캔모어(Can more)’다. 그대로 해석하면 ‘더 할 수 있다’라는 의미를 가졌는데, 다시 말해 ‘더 살 수 있다’ 혹은 ‘더 수용할 수 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탄생한 것이다. 왠지 캔모어에서는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캔모어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가득한데 밴쿠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Can more’ 그대로 해석하면 ‘더 할 수 있다’ 라는 의미. 왠지 캔모어에서는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Can more’ 그대로 해석하면 ‘더 할 수 있다’ 라는 의미. 왠지 캔모어에서는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결국 밴쿠버에서 캘거리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캘거리에서 1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캔모어에 도착했다. 이번엔 1시간을 잃게 되었다. 캐나다 내에서만 네 번의 시차가 난다고 한다. BC주 밴쿠버에서 알버타주 캔모어로 넘어오며 1시간을 건너뛰게 된 것이다. 참 신기한 곳이다. 하지만 1시간을 잃은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전 날 잠을 설쳐서 피곤했는데도 불구하고 비행기에서도 버스에서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설레는 마음과 더불어 로키 산맥이 다가올수록 점점 사진 속에서 본 풍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안녕? 내가 바로 그 로키야.’

믿을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임시숙소 호스텔까지 걸어가면서 계속 감탄사만 내뱉었다. 캐리어와 무거운 배낭까지 있었는데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내일도 이곳에 있을 건데 마치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눈에 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사진 속에서 봤던 풍경이 아니었다. 사진이 제대로 담지도 못하고 있는 거였다. 여기를 봐도 그림, 저기를 봐도 그림이었다. 그렇게 10분 거리를 30분 넘게 걸어서 호스텔에 도착했다.

 

1500원짜리 커피를 1억5천만원 값어치 하는 뷰를 보며 마실 수 있는 캔모어의 흔한 카페 야외 테라스.
1500원짜리 커피를 1억5천만원 값어치 하는 뷰를 보며 마실 수 있는 캔모어의 흔한 카페 야외 테라스

아무리 로키를 바라보아도 로키에 도착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곧 정말 로키라는 걸 실감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대충 짐을 풀고 씻고 화장품을 바르려고 튜브형 화장품 뚜껑을 열었는데 난리가 났다. 고도 때문에 부풀어서 터지기 직전이었고, 화장품 내용물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흘러나왔다. 히말라야에서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당황하지 않으면서도, 당황했다. 당황하지 않았던 건 그래도 한 번 겪어 봤던 일이기에 이유를 알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황을 했던 건 산속이 아니라 그냥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 지역일 뿐이어서 당황스러웠다. 고산병을 겪었던 나는 두려운 마음에 급하게 고도계 어플을 받아서 고도를 측정해 보았다. ‘뭐야? 겨우 1300m라고? 그런데 왜 이러지?’ 4200m까지 다녀온 나에게 1300m는 굉장히 낮게 느껴졌고, 그렇기에 더더욱 이 사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산들을 검색해 보았다. 한국 산 평균 500m. 아, 여기 엄청 높은 지역이구나.

정말 캔 모어 (Can more, 더 할 수 있는) 지역 맞는 걸까? 얼마나 멋진 일들이 일어나려고 건강 잘 챙기라는 의미로 화장품들이 희생을 한 건지. 여러 가지 의미로 어마어마한 이 지역에서의 하루가 기대가 되는 나는 오늘도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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