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조 지음/ 아트북스

 

화려한 볼거리가 쏟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은은한 색감에 간결한 선으로 그려진 옛 그림은 다소 밋밋하고 심심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무조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고 외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보자. 옛 그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는 오해도 다분하지 않을까? 옛 그림에 대해 잘 몰라서 생기는 막연한 선입견은 아닐까? 어쩌면 살짝 맛만 보는 것으로 옛 그림에 대한 선입견이나 관심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옛 그림을 알기 쉽게 전하는 최석조의 '도화만발'은 그런 의미에서 옛 그림 입문자들의 입맛을 돋울 상큼한 에피타이저이다.

2008년과 2009년은 옛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했던 해였다. 신윤복의 삶을 모티프로 삼은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화가에 대한 관심은 물론, 그의 작품을 보고자 하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연일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으로 향한 것이다. 「미인도」 한 점을 보기 위해 먼 길 마다하고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입장을 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지만,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고 설렘 가득한 얼굴로 실물 작품을 보기 위해 고행을 자처했다.

어디 그뿐일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현재 일본의 덴리 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전시된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 한 점을 보기 위해 서너 시간이나 되는 기다림을 견디고 꿈결처럼 펼쳐진 무릉도원과 마주했다.

이쯤 되면 우리 옛 그림으로 눈길을 돌릴 만한 어떤 매개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 「미인도」나 「몽유도원도」가 크게 관심을 끌었던 것은 작품과 작가에 얽힌 스토리텔링이 주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옛 그림 한 점을 놓고 그 작품에 대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줄 이야기꾼이 있다면 옛 그림으로 향하는 걸음걸음이 한결 가볍고 즐거울 것이다.

옛 그림이 지닌 매력을 파헤치되 철저하게 쉽게 쓴 '도화만발'은 이제 막 우리 옛 그림에 입문하는 독자들에게 세심하고 다정한 옛 그림 안내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번째 장은 우리 그림에 대한 오해를 푸는 걸로 연다. 많은 이들이 옛 그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파한 지은이는 가장 유명하고 친숙한 화가 김홍도의 멋진 그림 한 점을 소개하면서 그런 편견을 깨뜨린다. 또 반대로 우리가 너무 잘 안다고 여기기에 그냥 지나치는 신윤복의 「월하정인」, 김홍도의 「씨름」을 꼼꼼히 뜯어보면서 그림 속에 숨은 깊숙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기도 한다. 특히 「월하정인」에 그려진 달의 모양에서 수백 년 전 날씨를 유추하고, 「서당」을 놓고서는 당시의 시대 변화를 읽어내는 등 다 알기에 더이상 볼 필요 없다고 제쳐둔 그림 한 점에 숨겨진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끄집어내어 그림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흥미를 돋운다.

두번째 장에서는 우리 옛 그림을 서양 미술과 비교해가면서 재료, 기법, 심미안이 어떻게 다른지 펼쳐놓으면서 우리 그림의 맥을 짚어간다. 가령,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오송빌 백작부인」과 신윤복의 「미인도」를 함께 놓고, 바탕 재질은 물론, 표현 방법을 면밀히 살펴보고, 그 오묘한 차이를 알기 쉽게 설명해 자연스레 우리 그림만의 특징을 짚어볼 수 있게 한다.

세번째 장은 우리 그림의 멋에 관한 이야기다. 지은이는 우리 옛 그림을 잘 분석해보면 특유의 매력이 눈에 밟힌다고 말한다. 보는 이에 따라 수십 가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는 우리 그림의 멋을 ‘은근-익살-핍진-상징-사의-심심’이라는 여섯 단어로 압축했다. 여기서 ‘은근’은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은밀하되, 깊고 그윽한 멋’을, ‘심심’은 ‘곱씹을수록 우러나는 감칠맛’이 깃든 그림을 의미한다. 여기에 조선 시대 유머러스함을 느낄 수 있는 ‘익살’, 터럭 한 올도 똑같이 그린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그린 ‘핍진’, 생동하는 자연물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화폭으로 옮겨 감상한 ‘상징’, 또 마음의 뜻을 그림으로 표현한 ‘사의’까지 우리 옛 그림들이 지닌 치명적인 매력들을 자세히 다룬다. 이 여섯 가지 멋이 잘 드러나 있는 풍부한 도판과 친절한 설명은 옛 그림 초심자도 그림이 갖는 멋을 음미하도록 돕는다.

마지막 네번째 장은 앞서 다룬 여러 특징을 종합해 옛 그림을 온전히 작품으로서 느끼고 감상하는 장이다. 4장에서는 풍속화에서부터 진경산수화, 어진, 책거리, 꽃 그림 그리고 조금은 낯선 도석인물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그림의 멋과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여섯 개의 장르를 소개한다. 특히 예술은 현실이 아니라 이상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던 시대에 욕망하고, 질투하고, 울고, 웃고, 화내는 인간 본연의 감정을 담아낸 ‘풍속화’와 머릿속에 든 상상의 풍경만을 줄기차게 그렸던 과거와 달리 우리 땅에 실재하는 풍경을 화폭으로 옮긴 ‘진경산수화’의 태동은 이후 한국 미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전쟁 통에 유실되어 겨우 몇 점밖에 남아 있지 않아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어진’을 비롯해 장식성이 우수한 ‘책거리’와 ‘꽃 그림’ 등 책에는 꼭 한 번은 봐야 하는 옛 그림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가득 차 있다. 이 한 권의 옛 그림 안내서를 보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꽃이 만발한 듯 그림 보는 눈을 한층 밝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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