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불에 콩 맛있게 볶아 먹기
번개 불에 콩 맛있게 볶아 먹기
  • 김일경 기자
  • 승인 2019.07.09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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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그 날은 아침부터 전운이 감돌았다. 아니, 전운은 사실 몇 일전부터 감지되었다. 사람들은 흥분되어 있었고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승리에 대한 불타는 투지와 손자병법보다 더 우월한 전술에 대해서 침을 튀겼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치솟는 물가와 경기 불황으로 살맛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들은 모처럼 활기를 띄었고 전장에 나간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날은 U-20 결승전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그 날 축구 경기는 정말 미웠다. 기말고사를 코앞에 앞둔 아이들은 책을 펴 놓고 있긴 했지만 이미 마음은 축구장에 가있다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U-20이 뭔지도 몰랐고 우리나라가 이겼는지 졌는지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적어도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토요일 오후 1시. 저녁 준비를 위해 마트를 갈까, 뭘 해 먹을까 고민하던 중 핸드폰이 울린다. 주말은 거의 실신 상태로 방치당하는 핸드폰이 울린다는 건 가뭄에 콩 하나 날 정도이다.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축구 결승전 하잖아요? 그래서 승리 기원 축하공연 및 거리 응원전이 저녁 10시 청량리광장에서 열리는데 난타 팀이 오프닝으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결승전이요…? 아, 네… 오프닝이요… 근데 오늘이요?”

당황했다. 번개 불에 콩을 볶아 내놓으라는 겪이다. 이런 식의 공연 섭외는 처음이었다. 눈치 없고 무례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온 나라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같은 경기 응원전에 오프닝이라니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갑자기 없던 애국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도대체 오늘 한다는 축구가 뭐 어떻게 된 거야?”라는 질문에 남편과 아이들은 이 때다 싶은 듯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20세 이하 선수들로만 구성된 월드컵 경기로 FIFA가 주관하는 남자 축구대회. 조별리그에서 대한민국이 남아공과 축구 강국인 아르헨티나를 이겼고, 16강에서는 영원한 숙적인 일본을 제쳤고, 8강은 우승 후보인 세네갈을 이겨 4강 에콰도르까지 격파했단다. 게다가 승부차기로 승리한 세네갈 경기를 제외한 승수로 FIFA 주관 대회에서 남자 국가대표 최다승 기록이란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서로 감격하면서 그간의 스토리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공부를 좀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지….

지체할 틈도 없이 단원들에게 연락을 했다. 시골 텃밭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간만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오붓하게 남편이랑 데이트를 하고, 저녁거리를 준비하러 장을 보는 등 평범한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던 단원들은 갑작스러운 공연소식에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국가의 승패가 달려 있는 경기의 응원전 식전행사에 참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뿌듯함과 단단한 결의를 다졌다. 이건 마치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 보다 더 비장하다. 단체 대화방은 의상과 작품에 대한 안무와 무대 동선 등의 의견을 나누느라 끊임없이 울려 댔고 나는 행사담당자와 음원이나 공연 시간 등의 여러 가지 협의를 하느라 핸드폰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행사장까지 북을 운반 할 화물차를 섭외하고 물 난타를 위한 거치대를 급히 제작했다. 그 시간 우리 단원들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었지만 각자의 집에서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녁 9시 현장에 모였다. 한 차례 비가 온 뒤라 스텝들은 무대를 재정비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수백 명은 되어 보이는 관중들은 속속들이 모여 빼곡히 자리 잡았으며 우리들은 대기실에서 작품에 대한 마무리 협의를 했다. 마침 2주 뒤에 예정되어 있는 공연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작품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붉은악마 머리띠와 응원막대들을 동반한 저 관중들 앞에서 한국 축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태극 전사들을 위한 거리응원 식전행사의 오프닝을 한다. 그들에게나 우리들에게 정말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날의 공연은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쳤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필두로 분위기를 띄우고 ‘We Will Rock You’와 ‘뱅뱅뱅’을 연결해 콘서트장을 방불할 만큼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태극기 의상으로 환복한 후 ‘쾌지나 칭칭나네’를 마지막으로 물 난타를 선보이며 박수갈채를 받고 무대를 내려왔다. 결승전 행사인 만큼 태극기 의상을 준비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며칠을 걸려 완성한 물 난타용 거치대는 이 날을 위해 사용하라는 신의 계시와도 같았다. 이 흥분의 도가니에서 쉽게 빠져 나올 수가 없었던 우리들은 인근 치킨 집으로 이동해 밤샘 응원전에 돌입했다. 시골 텃밭에서 급히 상경하고, 휘젓듯 장을 봐서 저녁밥을 차려 놓고, 후다닥 대청소를 끝내고, 간만에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을 뒤로 한 채 뜻깊은 공연을 해낸 나름의 사건들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기에 바빴다. 번개 불에 콩을 볶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맛있게 볶아 내는 우리들은 사실 난타 팀 단원이기 이전에 가정주부들이다. 가족이 모여 있는 주말 저녁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날은 예외였다. 온 국민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스포츠 경기의 결승전을 위한 거리공연에 오프닝을 해 냈다는 사실과 그 행사를 빌미로 잠시 집에서 나와 일탈 아닌 일탈을 하고 있는 시간들이 우리들을 한껏 고무시켰다. 우리나라가 첫 골을 넣었을 때는 동네가 떠나가라 함성을 질렀고 아쉽지만 우크라이나에게 역전 당했을 때는 한숨과 탄식을 쏟아냈다. 우리는 굳이 축구얘기만 하지는 않았다. 경기가 끝나는 새벽까지 함께 있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오가는 술잔 사이로 살아가는 얘기며 쉽게 꺼낼 수 없었던 마음속 이야기도 나누었다. 평소 맥주 반잔에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다들 숨겨 놓은 주량을 드러냈고 술이 과하면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어 대는 나의 주사가 결국 발각되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 날의 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은 준우승이라는 U-20 월드컵에서 사상 최초의 결과를 이끌어 냈고 FIFA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골든볼을 수상한 선수도 나왔다. 우리 선수들도 잘했고 우리 단원들도 참 잘했다.

그 날 이후로 단원들 간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다. 어떤 공연 섭외가 들어와도 거뜬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며 해외여행 차 출국하고 집안 행사 때문에 지방에 내려간 두 분을 제외한 나머지 단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였다는 사실에 나는 강사로서 한없는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뒤늦게 알게 된 일이지만 관할 구청 홈페이지 포토구청소식란에 이 날의 기사와 함께 태극기 의상을 착용한 우리 팀의 모습이 실렸다. 뿐만 아니라 구청 홍보 영상소식에 물 난타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나오니 우리 구를 대표하는 연예인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하지만 온 동네방네 얼굴이 팔렸으니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연예인이 별건가. 관중을 위해서 흥을 돋우고 제일 잘하는 북을 치고 즐거움을 선사해서 박수를 받고 그 관중들이 다시 찾아주면 그게 연예인 아니겠는가. 요즘도 그 날의 이야기를 한다. 당시에는 숨 가빴던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들이 웃음과 여유로 다가와 잊지 못할 기억의 한 편으로 남아 앞으로 더 멋진 인생을 살아 갈 힘이 되고 멋진 무대를 꾸며 낼 밑거름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또다시 그와 같은 공연 섭외가 온다면? 무슨 걱정이겠는가. 우리들은 번개 불에 콩을 볶아도 맛있게 볶아 내는 저력 있는 난타 팀 “Black TA Queens”인 것을.

<김일경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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