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발전방향 결정할 주체는 시민이고, 그 방법은 책에 있다
과학의 발전방향 결정할 주체는 시민이고, 그 방법은 책에 있다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9.07.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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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다-3회] 김혜영

페스티벌의 계절인 여름, 풍성한 음악이나 흥겨운 춤 없이 오로지 책으로 가득한 축제가 있다. 지난 6월 19일부터 23일까지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다. 이틀 동안 한국에서 가장 큰 책 축제를 다녀오며, 그 후기와 감상을 두 편에 걸쳐 풀어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1편은 나의 독서 이야기를 포함한 도서전 방문기였고, 2편, 3편에서는 현장에서 들은 과학 강연을 함께 나눌 계획이다.

 

강연 사진
강연 사진

물리학자 김상욱 박사의 강연이 끝난 뒤 청중과의 대담이 진행되었다.(2편 참조) 사회는 책을 소개하는 유튜버 김겨울이 맡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눈을 반짝이던 학생이 첫 번째로 손을 들고 질문했다. 과학문화를 퍼뜨리기 위한 활동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유독 과학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답을 내리기 전에 대중과 소통하는 유튜버인 그녀의 생각을 물었다. 그녀는 평소 시청자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소개하며, 문과와 이과가 나뉘는 교육과정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답했다. 특히 문과생에게 과학은 전문가의 영역이고 자신과 상관이 없는 분야가 되는 것 같다고. 그는 여러 의견에 동의하며 과학문화의 부재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우리나라는 과학의 역사가 길지 않아서 대중과 친밀해질 수 있는 시간과 계기가 부족했다. 조선말까지 과학이랄 것이 없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고등교육에도 이공계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국의 과학자를 위인의 이름으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걸출한 과학자를 배출한 나라는 대개 오랜 시간 대중의 삶에 과학이 영향을 미친 경우가 많았다. 목숨을 걸고 논쟁을 펼치며 종교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지동설과 진화론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는 이제야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위기의식을 느끼지만, 그들에게는 200여 년 전의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은 1811년부터 1817년까지 영국에서 일어났던 기계 파괴운동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가 과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어려움에 있지 않다. 게임을 하는 이유가 쉽고 어려운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의미 부여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정진한다. 과학이 내 삶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고 여겨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대표적인 반례가 아직도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는 영어 공부 열풍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강대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영어가 중요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공부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공계열을 싫어하는 많은 이들이 수학과 과학의 복잡한 공식을 삶에서 활용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투덜거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과학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면 자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다만 우리나라는 과학의 역사가 길지 않으므로 중요성의 인식부터 키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상욱 박사와 유튜버 김겨울
김상욱 박사와 유튜버 김겨울

그렇다면 과학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그는 연이은 질문에 당장 우리가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급한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과학이 우리나라의 경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부는 국가의 다양한 이익을 위해 기업 혹은 단체에 속한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한다. 이때 어떤 분야에 어떤 크기의 예산을 조달하는지, 그 예산이 어떻게 쓰여서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지켜보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에 시민이 판단하고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은 이들이 있다면, 이를 도울 수 있는 연구를 요청하는 것은 시민의 몫이다. 정부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행정을 꾸려나가는 집단이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의 삶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 연구비를 지원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요구하고 모니터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중국의 정부가 기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시민사회가 조직적으로 과학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원하는 연구를 요청하거나, 이미 이루어진 연구에 관해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의 우리는 수십조의 예산이 집행되는 문제를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분야라는 이유로 방목하는 셈이다.

과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커지고 있고,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교양을 갖춰야 한다. 만약 시민사회가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우리의 삶은 과학기술의 장점만 골라 누리며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각국의 정부가 핵무기를 암암리에 만들었던 과거를 떠올려보자. 이때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핵무기 개발을 두고 국민 투표를 진행했다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집행자와 과학자들이 아닌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과학을 교양의 일부로 공부해야 하고, 이를 위해 과학문화의 활성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도서전 풍경
도서전 풍경

예상보다 큰 금액의 예산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놀란 무렵, 한 청중이 과학자의 목표를 질문했다. 연구의 목적이 돈과 사람 중 어디에 있느냐는 것. 그는 과학자들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는 무엇을 위한다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과학은 인간과 무관하게 우주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듯, 과학에 가치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의미는 과학자 개인이 알아낼 수 없고, 우리 모두가 찾아가야할 몫이다. 다만 그중 무엇을 연구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이다. 즉, 과학의 대상은 의미가 없지만 목적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탐구하는 것에는 당연히 자유가 허용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대담이 끝나갈 무렵, 아이와 함께 참석한 어머니 한 분이 교육방법을 질문했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이 많아 강연에도 데려왔는데, 무엇을 더 해주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답했다. 잘 떠올려보면, 우리는 모두 과학자였다. 궁금한 것이 많아 이것은 무엇인지, 왜 이렇게 되는지를 끊임없이 물었다. 돋보기로 무언가를 태워보기도 하고, 더 잘 날 수 있는 종이비행기를 연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랄수록 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호기심을 키우고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모두의 어린 시절 속에 있던 과학자의 자아는 사라진다. 그는 과학자가 되기 위한 특성 같은 것은 없으므로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여유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과학자의 관점에서 책의 수명에 관한 전망을 이야기해주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혁명은 문자의 발명과 책의 등장이다. 덕분에 수학 같은 고도의 논리 체계가 등장했고, 지식을 체계화할 수 있었다. 문자만큼 인간이 논리적,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매체가 없으므로 책 또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영상매체가 아무리 발전해도 문자와 책을 통한 지식 습득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의무적으로 배운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세대가 책을 읽고 책으로 공부한 마지막 세대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독서 습관이랄 것이 없고 바쁜 일상 속에서는 짧은 영상이 주는 만족감이 절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빠르게 전환하는 영상의 흐름에 따라가기만 하는 시대는 오지 않았으면 한다. 영상매체가 발전할수록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알고 자신만의 속도로 소비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책을 읽으며 사고의 힘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 당장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책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머리 아픈 과학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는 편견을 깨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역대 최다 인원이 방문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책 구매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도서전도 앞으로 계속 열릴 것으로 보인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책을 사고, 선물을 받고, 전시를 구경하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강연도 들으면 좋겠다. 혹 구미가 당기는 사람이 있다면 내년 도서전에서 꼭 만날 수 있기를. 과학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강연을 하고 있다는 김상욱 박사에게도 훌륭한 강연을 선물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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