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레스 삼봉에서의 일출, 고된 산행에서 꿈꾸던 마지막 목표 아니었던가
토레스 삼봉에서의 일출, 고된 산행에서 꿈꾸던 마지막 목표 아니었던가
  • 강진수 기자
  • 승인 2019.07.19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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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남미여행기-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 강진수

 

ⓒ강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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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로스 쿠에르노스를 떠났다. 텐트를 접을 필요가 없으니 짐을 챙기고 떠나기 훨씬 쉬운데다가, 칠레노 산장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었다. 다음 새벽에는 토레스 삼봉에 올라 일출을 보기로 하는 일정이었기에 일찍이 도착해 텐트를 치고 푹 쉬어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튿날이 되니 가져온 음식의 양이 줄어, 들어야 할 짐도 한껏 가벼워졌다. 문제는 길이 점점 더 험악해진다는 것이었다. 전날 길을 잃어 고생한 기억에 우리는 몇 번이고 지도를 펼쳐보며 가야할 길을 신중하게 확인했다. 한 번도 나온 적 없었던 늪지대가 나와 길을 가로막았을 때는 어떻게 이곳을 지나가야할까 한참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길이 온통 진흙투성이라 잘못했다가는 완전히 옷을 버려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의 나뭇가지를 겨우겨우 붙들고 늪지대를 빠져나오니 이번엔 꽤 폭이 깊은 개울이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개울 앞에서 쉴 겸 앞으로 갈 길을 걱정하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간밤에 비가 내려 개울이 깊어진 모양이었는데, 그들과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주변의 바위로 징검다리를 놓았다. 그들이 먼저 건너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의 목적지인 토레스 삼봉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얼마 안 가면 곧 칠레노 산장이 나온다고. 그곳에만 닿으면 금방 토레스 삼봉 근처 캠핑장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일러주었다. 다시 희망이 생긴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미 상당히 굶주린 데다가 체력이 동날 데로 동났지만, 산장에만 일단 도착하면 식사도 할 수 있어 있는 힘, 없는 힘을 모두 끌어 모아 길을 걸었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까, 끝도 없는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다가 문득 알았다. 그들이 잘못된 정보를 준 것이다. 그들에겐 내리막길이었기에 금방이겠지만,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우리에겐 영 틀린 말이었다. 거짓말을 우리에게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게 그들이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차라리 개울에서 조금 더 쉬고 길을 오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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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된 길이어도, 전날 형과 다툰 것이 우리 사이의 땅을 굳게 만들었는지, 이틀 중 가장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격려하며 계속 걸었다. 조금만 더 가면, 저 능선만 넘어가면 산장이 보일 것이라고 주문처럼 우린 되뇌었다. 그 말이 정말 효과가 있었나보다. 벼랑을 끼고 돌자마자 큰 강과 그 건너에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는 산장이 드디어 눈에 들어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보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마침 산장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은 걷기 쉬운 내리막이어서 거의 달리다시피 우리는 빠르게 산을 내려왔다. 우리가 넘어온 봉우리가 꽤 힘든 코스임에 틀림없는지, 산장 근처에는 탈진한 등산객들을 태워 옮길 말들이 곳곳에 묶여 있었다. 힘차게 일렁이는 강물과 그 위로 드리운 구름다리까지 건너고 나니 금세 산장이었다. 산장에 들어서자마자 자리를 잡고 얼른 빵을 꺼내 간단한 샌드위치를 해먹었다. 며칠은 굶었던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우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좀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빵 하나로 배가 찰리가 없었다. 여전히 배가 고픈 나는 산장 안의 매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형 역시도 실은 배가 고팠으나, 2박3일의 일정동안 가져온 여윳돈이라고는 아주 적었기에 그것을 쓰기가 망설여졌던 것이다. 게다가 산장의 물가는 도시보다도 비싸다. 작은 비스킷 하나만 해도 몇 천 원 하는 것을 우리 모두 알기에 선뜻 뭘 사먹자고 할 수가 없었다. 내 눈치를 보던 형이 슬쩍 제안을 하나 했다. 점심도 먹었겠다, 비스킷 한 봉지만 사서 커피랑 먹을까? 당연히 좋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배낭에서 커피 가루를 꺼내 얼른 커피를 만들고, 다시 허겁지겁, 비스킷을 먹어치웠다. 양도 얼마 안 되는 조그만 봉지였으나 그래도 하나씩 나눠 먹으며 커피로 남은 속을 채웠다. 배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몸에 다시 힘이 도는 느낌이었다. 칠레노 산장이 오늘의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다시 길을 나서야 한다. 물론 산장에서 우리가 갈 캠핑장이 엄청 멀지는 않지만 또 지겨운 오르막길이었기에 마지막 스퍼트를 위한 재충전이 필요했다. 그런 고된 일정 속에서 작은 비스킷 한 봉지가 얼마나 소중하고 큰 도움이 되었는지. 나중에 산을 내려와 똑같은 비스킷을 마트에서 사 먹어 보았으나 그 때의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비스킷을 맛있게 먹으러 다시 산을 올라가기라도 해야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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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을 떠날 때 이상하게도 몸이 가벼웠다. 이곳 산에 적응이라도 한 걸까. 배낭도 별로 무겁지 않게 느껴졌다. 빠른 발걸음으로 금세 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산장에서 우리와 같이 출발한 한 커플이 있었는데, 미국 뉴욕에서 왔다고 했다. 약혼한 사이에 자주 함께 등산을 다녔는지 산에 아주 익숙해보였다. 하지만 비스킷을 먹고 정신을 차린 우리의 체력을 그들이 따라올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등산복 차림도 아니었고 그저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기에 무슨 동네 뒷산 오르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참을 산을 오르다가 우리가 잠시 중턱에서 쉴 때 그 커플을 다시 만났다. 그들이 진지하게 묻길, 우리 둘이 등산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냐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칭찬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하니 그들이 우리의 옷차림을 가리키며 더 놀라는 모습이었다. 산악인도 아닌데 청바지를 입고 이렇게 빨리 산을 올라가느냐고. 다 비스킷 덕분이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 커플은 산장에서 더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을 우린 지켜보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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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캠핑장에 다 와갈 때 즘, 우리가 상당히 높이 올라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해발고도 3000미터가 넘는 곳이기에 바람이 눈 뜰 수 없을 정도로 거세다. 휘몰아치는 광풍에 그 때 내 배낭을 감싸던 방수커버도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배낭에 한쪽을 묶어두었는데도 그것을 끊고 날려버릴 정도면 정말 엄청난 바람이었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벅차 전혀 몰랐는데 나중에야 형이 내 배낭을 보고 일러주었다. 커버가 따로 없어 남미로 오기 전 등산용품점에서 꽤 비싸게 주고 산 것이었는데.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을 찾으러 다닐 수도 없었다. 걷던 길이나 계속 걸었고, 마침내 캠핑장에 도착했다. 그동안 묵었던 산장들의 캠핑장에 비해 토레스 삼봉 밑의 캠핑장은 매우 열악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데다가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시설물을 최소화한 것이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공용화장실에, 부엌이라고 하기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작은 오두막이 전부였다. 그래도 도착한 것만으로 만족한 우리는 얼른 좋은 자리를 찾아 텐트를 쳤다. 그리고 토레스 델 파이네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배낭을 전부 털어 그동안 짊어 메고 다닌 쌀, 참치 캔, 쇠고기 볶음고추장을 모두 꺼냈다. 마지막 저녁 식사라지만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정도면 우리에겐 특식이나 다름없었다. 쌀을 모조리 부어 밥을 가득 하고, 그곳에 참치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볐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먹다 보니 금세 바닥이다. 그래도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잠들 정도의 포만감은 느낄 수 있었다. 토레스 삼봉에서의 일출, 이 고된 산행에서 그토록 꿈꾸던 우리의 마지막 목표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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