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지음/ 창비

 

혐오와 차별은 잡초처럼 자란다.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온 사회에 무성해진다. 사람들은 때로 아주 작은 차별은 무시해도 되고, 심지어 다수에게 유리한 차별은 합리적인 차등이라고 이야기하며,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나 시정조치를 역차별이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심각한 혐오주의자나 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바로 나, 당신, 우리일 수 있다. 평범한 우리 모두가 ‘선량한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말하는 도발적인 책 '선량한 차별주의가'가 출간되었다. 

저자인 김지혜 교수는 차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활동가이자, 통계학·사회복지학·법학을 넘나드는 통합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국내의 열악한 혐오‧차별 문제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전념해온 연구자다. 현장과 밀착한 인권·혐오문제 연구를 진행해온 연구자답게 이번 책에서 쉽고 재미있는 대중적 글쓰기를 선보인다. 인간 심리에 대한 국내외의 최신 연구, 현장에서 기록한 생생한 사례, 학생들과 꾸준히 진행해온 토론수업과 전문가들의 학술포럼에서의 다양한 논쟁을 버무려 우리 일상에 숨겨진 혐오와 차별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은밀하고 사소하며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일들 속에서 ‘선량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차별과 혐오의 순간’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조직해가자고 제안한다. 차별을 당하면서도 작은 문제제기조차 해보지 못한 사람들부터 소위 프로불편러까지, 차별과 혐오의 시대에 지친 현대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우리 사회의 차별감수성은 10~20년 전에 비하면 놀랄 만큼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적어도 관념적으로는 평등을 지향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차별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고, 평등이라는 원칙을 도덕적으로 옳고 정의로운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물으면 어떤 차별은 합리적이라고, 또 어떤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차별이 지워지거나 ‘공정함’으로 둔갑되는 메커니즘을 살핀다. 

예를 들어보자. 코미디 프로그램의 ‘바보’ 캐릭터가 장애인 비하라는 문제제기를 하자 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비냐고 말한다. 학생 성적별로 수준에 맞춘 교육을 제공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학급을 우열반으로 나누는 것이 학생들에게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노키즈존’ 논란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사업주에게는 손님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는 차별에 대한 이런 논란들을 차근차근 해부하며 역으로 질문을 던지고, 인간 심리와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이론을 소개하면서 독자가 자연스럽게 평등과 차별을 탐구해볼 수 있게 한다. 애초에 ‘바보’ 캐릭터는 왜 웃긴지, 비하적 농담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되묻는다. 우열반 편성처럼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한다는 ‘능력주의’ 원칙은 얼핏 객관적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획일적인 평가기준으로 ‘승자’가 모든 기회를 독식하고 패자는 박탈감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은 아닌지 질문한다. ‘노키즈존’이 사업주의 정당한 권리라면 ‘노장애인존’도 괜찮은가? 사업주가 손님에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해도 된다고 해서 어떤 손님이 이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특정 ‘집단’ 전체를 거부해도 괜찮은 걸까? 토론 수업에 참여한 듯 생생한 질문과 대답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우리도 몰랐던 차별적인 생각이 우리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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