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주나 캐나다 살기-5회] 구직하기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 문구이다. 좋아하는 걸 실행하고자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로키 산맥에서 살아 보고, 오로라 보러 다녀오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일 해보고,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내 꿈은 소박하다. 캐나다에 도착 한 순간 다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으니까. 꿈을 좇는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주문을 하면 테이블 마크를 준다. 저 그림을 보고 직접 가져다 준다. 손님일 때는 예뻐서 장점이었는데 직원이 되니 헷갈려서 단점이 된 테이블 마크. ⓒ위클리서울/ 김준아 기자
주문을 하면 테이블 마크를 준다. 저 그림을 보고 직접 가져다 준다. 손님일 때는 예뻐서 장점이었는데 직원이 되니 헷갈려서 단점이 된 테이블 마크.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첫 달치 방값을 디파짓(Deposit, 보증금)과 함께 내고나니 캐나다 통장에 한 달 식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주방과 화장실을 집주인과 함께 사용하는 내 방값은 한화로 약 60만원이다. 이 지역에서는 굉장히 저렴하게 잘 구한 편이다. 저렴하게 구했다고 해도 방값, 핸드폰 비, 식비를 생각하면 로키산맥이 보이는 내 방 침대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구집(?)에 성공했으니 구직에 돌입했다.

특별한 계획 없이 캐나다에 왔고, 일할 수 있는 비자를 가졌지만 내가 가진 비자로는 일자리에 한계가 있다. 사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어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일하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걸 우선으로 생각해서 알아봤다.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는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손님 혹은 동료와 대화하면서 영어 실력을 늘릴 수 있는지 등.

그렇게 지원한 곳은 프랑스 레스토랑 라인쿡과 베이글 카페 알바였다. 라인쿡은 주방 보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재료 손질부터 디저트를 담당하게 된다고 했다. 주방장이 굉장히 친절했지만 주방엔 전부 덩치가 큰 서양 남자들 밖에 없었다. 직감적으로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사소한 것도 배려로 느껴지는 예쁜 동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사소한 것도 배려로 느껴지는 예쁜 동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다음으로 면접을 보게 된 곳은 캔모어에서 유명하고 유일한 맛집 베이글 카페. 이곳으로 말하자면 캔모어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은 곳이고, 일주일 사이에 3번이나 방문한 곳이다. 그만큼 맛있었다. 두 번째 방문한 날은 주문하면서 혹시 일하는 사람 구하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구직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지원했다. 다음날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갔다. 더 이상 면접이 떨리지 않았다. 그냥 사람 대 사람의 대화였고, 고용주는 당연히 나에 대해 알아야 하고, 나 또한 그 회사에 대해 알아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한결 편안하게 면접을 볼 수 있었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갑과 을로 만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선택하는 시간 인 것이다. “지금까지 무슨 일을 했어? 캐나다에 얼마나 있을 예정이야? 베이글 먹어 봤어? 왜 우리 가게에 지원했지? 나중에 꿈은 뭐야? 한국 돌아가면 뭐 할 건데? 우리 가게는 엄청 바빠. 주말에 와 봤니? 안 와봤다고? 그러면 주말 점심시간이 다시 방문해줘. 그리고 한번 지켜봐. 얼마나 바쁜지. 그 후에 네가 할 수 있으면 연락 줘. 아! 우리 가게에 오면 커피 만드는 법부터 굉장히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어” 나는 대답했다. “바쁘다고? 바쁘면 좋지! 다이어트에!”

 

“바쁘다고? 바쁘면 좋지! 다이어트에!” 이렇게 말한 걸 후회하게 된 첫 출근 날.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바쁘다고? 바쁘면 좋지! 다이어트에!” 이렇게 말한 걸 후회하게 된 첫 출근 날.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그렇게 주말에 다시 방문한 베이글 카페. 정말 바빴다. 문 밖에까지 줄을 섰고, 일 하는 친구들 모두 엄청 바빠 보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끌렸다. 정말 다양한 인종의 친구들이 일을 하고 있었고, 가게 분위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 곳에서 일을 하면 베이글을 할인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견학(?) 후 메일을 보냈고, 월요일에 다시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다시 만난 매니저는 ‘웰컴 패키지’를 주었다. 공부를 해서 다음 주 부터 출근을 하라고 했다. ‘웰컴 패키지’에는 베이글 카페의 역사와 자신들이 추구하는 스타일부터 일하며 지켜야 하는 점, 베이글 샌드위치 만드는 방법, 커피 만들기, 각종 재료들의 원산지 등이 적혀 있었다. 며칠 후, 스케줄이 나왔다고 앱을 받으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곳은 스케줄을 앱으로 관리하고, 그 스케줄 표에는 내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포지션 트레이닝을 받는 지 적혀 있었다. 정말 체계적인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남은 베이글은 포장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음 날 딱 하루 더 판매한다. 그래도 남은 건 전부 버린다. 첫 출근 날, 나에게 버려진 베이글.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남은 베이글은 포장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음 날 딱 하루 더 판매한다. 그래도 남은 건 전부 버린다. 첫 출근 날, 나에게 버려진 베이글.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대망의 첫 출근 날. 너무 떨렸다. 설렘이 떨림이 되고, 약간 두렵기까지 했다. 한 번도 안 해본 일인데 잘 할 수 있을까. 같이 일하는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냥 모든 게 긴장됐다. 전 날 연습한 ‘카페에서 주문받을 때 사용하는 영어’를 달달 외우면서 출근을 했다. 첫 날은 커피 만들기를 배웠다. 평소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잘 모른다. 그런데 심지어 이곳은 우리나라에 없는 메뉴들까지 있어서 더욱 어려웠다. 다음 날은 베이글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배웠고, 중간 중간 주문을 받기도 했다. 메뉴도 다 못 외웠는데 주문을 받으려니 얼마나 식은땀이 흐르던지. 하지만 캐나다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알 수 있었다. 트레이닝 시켜주는 슈퍼바이저가 손님에게 내가 트레이닝 중이고, 처음으로 받는 주문이라고 말하니 이해해주고 기다려주었다. 그리곤 이어 박수까지 쳐주었다. 다음 손님도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듣고, 응원을 해주었다.

 

남은 베이글은 포장해서 저렴한 가격으로 다음 날 딱 하루 더 판매한다. 그래도 남은 건 전부 버린다. 첫 출근 날, 나에게 버려진 베이글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캔모어에 처음 도작해서 먹은 저녁 식사. 이걸 먹을 때만 해도 정말 여기서 일하게 될 줄 몰랐지.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문받는 건 참 어려웠다. 영어가 어려운 게 아니었다. 주문하는 요구사항이 참 힘들었다. “치즈 알레르기 있으니까 크림치즈랑 체다치즈 빼고, 토마토도 빼 주세요”, “마요네즈랑 양파 빼 주세요. 아! 양파 대신 피망 더 넣어 주세요”, “머스타드는 샌드위치에 바르지 말고 사이드로 주세요”, “계란 추가해 주시고, 베이글은 토스트 하지 말고 전자레인지에 돌려주세요”, “라떼에 거품 많이 주세요. 카푸치노 말고 라떼요”, “라떼에 메이플 시럽 추가하는데 덜 달게 해 주시고, 두유로 바꿔주세요.” 워낙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발음도 다양한데 이런 모든 추가 요구 사항을 계산하기 전까지 다 입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 때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고 하면 장갑부터 모든 주방 도구를 바꾸고 새 재료를 꺼내서 만들어야 한다. 땅콩버터나 참치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 당연한 거지만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먹으러 오는 사람과 그렇게 만들어주는 이곳 문화가 신기했다.

주문 받을 때 했던 실수담도 있다. 레몬드랍 이라는 머핀을 달라는 건데 레몬에이드를 가져다줬고, 런던포그 머핀을 달라는 건데 런던포그 차를 가져다줬다. 하지만 이런 점들은 이해해 주는 손님들이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이 어쩌면 캐나다에서 어울리는 말 같다. 거의 없는 메뉴를 만드는 수준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보면 말이다. 모든 걸 가능하게 하는 손님. 하지만 왕처럼 품위가 있다. 모든 걸 기다려 주고, 배려해 준다. 그래서 이곳에서 일 하며 이 말이 나쁜 말은 아니라고 느꼈다.

나쁜 건 따로 있었다. 그 이야기는 구직하기 2편에서…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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