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이상이 복지국가SOCIETY 공동대표-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대한민국. 최단 시간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고 국민소득 3만 달러의 국가 반열에 올라섰지만, OECD와 비교할 때 노동, 인권 등 복지는 후진국 수준이다.
의료복지도 마찬가지다. 유럽 등 선진국의 무상의료비율 80%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전 국민무상의료를 목표로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2020년까지 무상의료비율을 70%로 잡고 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상이 복지국가SOCIETY 공동대표 ⓒ위클리서울/한성욱 기자
이상이 복지국가SOCIETY 공동대표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년 전만 해도 의료보장수준이 63.4%였다. 지금은 5.3% 늘어난 68.7%로 높아졌다. 2010년부터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해 온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문재인 정부는 제가 추진해 온 ‘건강보험 하나로’ 정책을 모두 안았다. 특히 MRI, CT, 초음파, 병실료, 특진비까지 급여화로 끌어들였다. 암 환자 본인부담도 5%다.”고 말한다.

약 30년 전인 1990년부터 전 국민의료보장운동(건강보장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 대표는 수백 개 단체로 쪼개져 있던 의료보험단체를 통합해 일원화하는데 그의 공이 컸다.

그는 “1989년 처음 전국민 의료보험시대가 열렸지만, 직장인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부가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항목을 모두 급여화 했다. 비급여영역은 대폭 줄이고, 건강보험 서비스를 이용해 모든 의료비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것이 문재인 케어다.”고 강조한다.

뛰어난 의료기술과 제도적 맹점을 이용해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이 3~6개월 만에 건강보험자격을 얻은 후, 질병을 고친 후 출국해 ‘먹튀’ 논란도 있었다. “정부가 이 부분에 대해 수정을 했다. 지금은 외국인도 한국인과 똑같이 월 11만원의 보험료를 내도록 하고 있다.”고 못 박는다.

이 대표는 내과나 가정의학과 전문의 꿈을 가졌지만, 의학자로서 의료보험 통합운동을 끊임없이 추진해 온 장본인이다. 1989년 국회에서 의료보험 통합관련법이 통과됐지만,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의료통합이 10여년 후에 성사됐다. 김대중 정부 때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입법과 의약분업에 깊게 관여했고, 노무현 정부 때 국민건강보험공단 산하 건강보험연구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상이 대표를 마포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대표로부터 문재인 케어와 의료복지문제, 외국인과 재외국민 의료보험 적용문제, 비급여화에 대한 급여화 전략, 차기 정부의 의료정책 등을 들어 본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

 

- 건강의료보험이 실시된 지 30년이 지났다. 과거 군사정부에서 출발한 건보정책과 현재까지의 과정을 소개해 달라.

▲ 의료보험제도는 1977년 7월 박정희 정부에서 처음 실시했다. 당시 500인 이상 고용 사업장에 19개의 의료보험조합과 공단 내 사업장에 486개 의료보험조합이 설립됐다. 문제는 전 국민이 아니라 일부만 포괄했다. 당시 의료보험조합 수는 521개로 310만 명이 대상이었다. 전체 인구의 8.8%에 불과했다.

이후 1979년 1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에 이어 7월부터 직장의보 적용이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국민 80%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이후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됐고, 마침내 1988년 농어촌 지역의료보험이 실시됐고 약 826만 명이 제도적 틀에 포괄됐다.

이어 1989년 7월 117개 도시 지역의료보험조합이 설립돼 1,100만 도시인에게 법정의료보험이 적용됐다. 이로써 1977년 7월 조합방식의 의료보험이 실시된 지 12년 만에 전 국민의료보험시대가 열렸고 외형적으로는 보편적 의료보장이 확립됐다.

 

- 보장성은 어땠는가.

▲ 1989년 7월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했지만, 당시엔 420개가 넘는 의료보험조합들이 독립채산제 방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났다. 하나는 제도운영상 효율성이 극히 낮았고, 또 하나는 의료보험의 보장성수준이 크게 낮았다.

규모의 경제에 못 미치는 소규모 조합들이 난립했고 관리운영비 비중도 높아 효율성이 매우 낮았다. 또 의료보험조합 간 재정능력도 각양각색이었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보장성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보장성 수준도 40%에 불과했다.

 

- 의보통합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 이후 10년에 걸친 의료보험 통합 운동이 전개됐다. 보건의료운동을 필두로 농민, 노동, 시민사회 핵심 운동단체들이 결집했고, 전 국민적 지지를 받아 사회운동으로 확산됐다. 1997년 대선 이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마침내 2000년 7월 국민건강보험시대가 열렸다.

10여년의 끈질긴 시민사회운동의 거대한 승리인 동시에 보편적 건강보장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다. 의료보험제도 보장성 수준도 1997년 48%에서 2002년 52.4%, 2004년 61.3%, 2005년 61.8%, 2006년 64.3%로 증가했다. 10년 사이에 보장성 수준이 무려 16%포인트나 높아졌다.

 

- 보수정권 당시 보장성이 약화되지 않았나.

▲ 보수정부에서 보장성은 63% 수준으로 후퇴했다. 박근혜 정부가 4대 중증질환을 중심으로 보장성 강화를 했고, 이것이 일정한 효과를 냈지만 보장성은 그대로였다. ‘비 급여’ 비중이 거의 줄어들지 않아서다.

매년 건강보험료는 오르고, 국민건강보험 재정규모가 커졌지만, 국민의 의료비 비중만 늘어났다. 국민들은 자구책으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했다. 가구당 평균 국민건강보험료로 11만 원 정도 내지만, 민간의료보험은 평균 5개로 30만 원을 낸다.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이렇게 거시적 비효율을 방치한 나라는 선진국가에선 보기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OECD 평균 보장성 80%를 달성해야 한다. 이런 공감대가 학계와 시민사회에 널리 형성돼 있다. 이것이 우리 시대 건강보장의 첫째 과제다.

 

- 80% 보장성을 향한 ‘문재인 케어’가 지지를 받고 있다.

▲ 지금의 과제는 OECD 평균인 수준의 보장성 80%와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다. 이 두 가지는 자유시장주의 방식만으로 이루기 어렵다. 미국 실패했다. GDP 대비 국민의료비 수준은 18%로 OECD 평균의 2배였고, 건강 결과는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의료이용의 양극화만 만들었다.

의료보장제도 공공성을 높일수록 보장성 수준과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모두 높아진다는 사실을 선진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명백해졌다. 우리도 그 길을 가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방안이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방안이다.

현재 63% 수준인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2022년까지 70%까지 높이겠다는 게 문재인 케어의 목표다. OECD 평균 보장성 80%보다는 크게 못 미치지만, 차후 보장성 확충을 가능케 할 ‘중요한 전략적 개혁방안’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 전략적 개혁 무엇을 말하나.

▲ ‘의학적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다. 문재인 케어의 핵심전략은 국민건강보험에서 혜택을 못 보던 항목들을 모두 포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전체 의료비의 17%가 비급여영역이다. 나머지 83%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영역이다.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 부담과 환자본인 부담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이 83%의 건강보험 급여영역은 저수가(원가의 80% 수준)로 인해 의료계가 손해를 본다. 급여영역의 의료서비스가 원가에 미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항목들은 원가를 초과한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진료과목 간 불균형이 초래된다. 그러면서 의료계는 17%의 비급여영역에서 초과이윤을 남겨 왔다. <2회로 이어집니다.>

 

 

 이상이 복지국가SOCIETY 공동대표는...

   제주대학교 교수
   의학박사 / 예방의학 전문의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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