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어디까지 알고 있니?
한글, 어디까지 알고 있니?
  • 김혜영 기자
  • 승인 2019.08.02 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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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국문학도의 한글박물관 탐방기/ 김혜영

[위클리서울=김혜영 기자]

작년에 게재한 <우리 옛돌 박물관 탐방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자료만 습득하다보면 현장의 중요성이나 감각이 경험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놓치게 된다. 친절한 자료도 좋지만 온 몸을 사용한 동(動)적인 학습을 요구하는 박물관에 가는 건 어떨까.’ 학교에서 배운 다양한 지식을 내 것으로 체화하고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우습게도 내가 썼던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 4년 동안 무수한 가르침을 준 책과 강의가 아닌 다른 매체로 공부를 정리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한 것. 그렇게 국어국문학의 시작점인 한글을 다룬 박물관에 가게 되었고 이번 편을 시작으로 박물관 탐방기를 다시 이어가려 한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의 우수성과 한글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14년 한글날에 문을 열었다. 한글의 가치를 보여주는 상설전시와 함께 특별전과 문화행사, 다양한 교육과 체험 활동을 진행한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상설전시와 기획전시의 해설을 모두 들을 수 있고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큐레이터의 해설과 함께 상설전시를 관람했는데 그중 인상에 깊게 남은 부분들을 소개하려 한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커다란 글자들이 보였다. 현대 한글과는 거리가 먼 오래된 문자와 한자가 섞여있었다. 자세히 보니 초성, 중성, 종성을 갖춘 음절문자는 없고 ‘ㄱ’, ‘ㅋ’, ‘ㅇ’ 등의 자음이 한자들 사이에 자리했다. 혹시 기역을 설명하고 여기서 파생된 키읔을 차례대로 다루는 게 아닐까. 예상대로 이 글자들은 한글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가 담긴 해례본이었다. 학교에서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담긴 서문만을 배워 이름의 뜻이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 커다란 스크린에 그려진 해례본을 큐레이터의 설명과 함께 자세히 들여다보며 처음 알게 되는 지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습득할 수 있었다.

해례본은 해설과 예시가 함께 쓰였다는 뜻의 이름이고 예의와 해례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 국민이 아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대목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인 ‘예의’이고, 그 뒤 창제 과정과 사용법은 집현전 학자들이 담당한 ‘해례’이다. 해례본 이름의 유례와 구성까지 함께 다루니 세계적으로 인문학적 가치가 드높은 우리의 유산을 효과적으로 기억하고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

 

국립한글박물관 (출처-국립한글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출처-국립한글박물관)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해례본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어떻게 보존되어 알려졌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전국 각지에 배포된 해례본은 연산군의 한글금지령에 의해 대부분이 사라졌고 일제강점기 때 또다시 훼손될 위험에 처했다. 이때 간송 전형필 선생은 어렵게 해례본을 입수해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복제본을 만들어 제공했다. 덕분에 우리는 한글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고 우리의 문자가 어떤 역사성을 지녔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말을 아끼고 보존하자는 해묵은 이야기는 힘을 잃었지만 해례본 하나에 담긴 역사와 의미들은 지금의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치가 있다. 내가 쓰고 있는 문자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 어떤 쓰임새를 지녔는지를 궁금해 하고 탐구하는 것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해례본에 등장하는 한글의 창제 과정에 현대적인 설명을 덧붙인 전시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한글은 사물의 모양을 본떠 8개의 문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이를 변형한 문자라는 점이다. ‘ㄱ, ㄴ, ㅁ, ㅅ, ㅇ’은 혀, 입술, 이, 목구멍의 발음기관에서 이미지를 착안했고, ‘‧, ㅡ, ㅣ’는 하늘, 땅, 사람의 이미지를 본떴다. 자세하게 풀이된 글과 더불어 그림으로 된 설명을 보니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문자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한글의 특성이 발명가의 목표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쉽게 문자를 익힐 수 있도록 발음기관에서 이미지를 가져왔고, 하늘, 땅, 사람을 본떴다는 점에서 문자에 철학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학자들을 뛰어난 언어학자뿐만 아니라 훌륭한 철학자이자 예술가로 재발견하는 기회가 되었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초성이 없으면 문자를 이룰 수 없어 ‘ㅇ’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도 이응을 음가가 없다고 표현하며 종성에서만 발음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기’라는 말을 발음할 때 모음인 ‘ㅏ’부터 발음을 하고 ‘ㅇ’의 음성을 발음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아지’를 발음할 때는 ‘가’가 아닌 ‘강’으로 발음하며 ‘ㅇ’의 음성을 사용한다. 이응이 종성, 즉 받침에 쓰일 때만 발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숫자 0이 값은 없지만 중요한 기능을 하듯 이응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에서 탄생한 보물과도 같다. 형식적인 기능에서 출발해 실질적인 음성으로도 발현되는 이응의 역사를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다음 챕터인 언해본도 보고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언해본은 다른 나라의 글을 한글로 풀어서 쓴 책인데, 한문으로 적힌 문장을 한글로 직역한 것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형식의 언해 중 정조가 쓴 한글편지가 가장 독특했다. 당시 왕과 사대부들은 한문을 주로 사용했지만 여성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한글을 사용했다. 한글이 약자의 언어였다는 점에서 역사성과 의의가 있고 왕과 같은 권위자도 약자를 위한 언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따스함을 느꼈다. 특히 정조가 어린 시절에 쓴 편지는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어른의 면모가 보여 왕의 어린 시절을 엿보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위클리서울/ 김혜영 기자

그 외에 변화무쌍했던 한글의 글씨체와 최초의 국어 대사전인 (조선말) 큰 사전 등의 유익한 전시들이 있었다. 이목을 끈 것은 타자기였는데, 글과 책들이 가득한 한글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전시된 기계였다. 19세기에 근대식 인쇄 기술이 들어온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한글을 접할 수 있었고 이를 가능케 한 역사적인 타자기들이 있었다.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언더우드 회사의 것을 개조해서 탄생했다.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집안은 유명한 타자기 회사였고 그로부터 지원을 받아 한국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타자기가 없었다면 그가 설립한 학교들과 교회, YMCA와 우리나라 최초의 영한사전 등이 조선 땅에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를 설립한 타자기를 직접 볼 수 있어 감격스러웠고, 한국전쟁의 휴전협정문을 작성한 타자기도 함께 보며 작은 기계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더 흥미롭고 유익한 전시들은 직접 방문해 즐겨보길 권한다. 인쇄기가 도입된 후 국수 한 그릇 정도의 싼값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던 ‘딱지본’이나 역대 국어 교과서들의 전시도 마련되어 있다. 어렸을 때 문구점에서 무서운 괴담과 유치한 퀴즈를 담은 작은 책들을 사본 적 있다면 당시 사람들이 즐겼던 춘향전이나 유머집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된 교과서의 디자인과 내용을 훑어보고 철수와 영희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것도 예상치 못한 재미를 선사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지금의 우리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 관한 박물관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한글의 과학적 원리를 학습하는 것은 물론, 더 광범위한 분야의 지식을 보충하고 문자와 글을 통해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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