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위클리서울=박석무] 우리 할머니는 15세에 우리 집안의 큰며느리로 시집오셔서, 큰 학자 우리 증조부님을 시아버지로 모시고 50년을 사시다 시아버지의 상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증조할아버지를 50년 동안 모셨던 할머니를 통해 증조부님의 삶의 자세와 생활태도에 대하여 익숙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조모님은 88세로 내가 40을 넘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셔서 참으로 많은 집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박석무 ⓒ위클리서울
박석무 ⓒ위클리서울

할머니 왈(曰) “우리 시아버님은 평생토록 낮에 드러눕거나 벽에 몸을 기대신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라고 말하시며 선비의 곧은 몸가짐을 알려주셨습니다. “머리칼에 때가 없듯이 마음에도 때가 없어야 하신다며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빗으로 빗으셨단다.”라고 하시며 머리를 감고 빗질하고 나면 바로 곱게 상투를 올리고 갓을 쓰고 온종일 바르게 앉으셔서 책만 읽으셨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반드시 버선을 신고 댓님을 감으셔 한 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라는 말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선의 선비들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몸과 마음의 지님을 허투루 하지 않고 참으로 단정하고 올곧게 지니고 살았습니다. 다산의 이야기는 더 절실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정약용
정약용

“활달하여 자유로움을 좋아하고 구속을 싫어하는 사람은 말하기를 ‘어찌 꼭 꿇어앉아야만 학문을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하지만 이 말 또한 잘못된 말이다. 무릇 사람은 경건한 마음이 일어날 때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며 꿇어앉은 자세를 풀면 속마음의 경건함 역시 해이해지는 것이다. 얼굴빛을 바르게 하고 말씨를 공손히 지님은 꿇어앉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한 가지 일에 따라 스스로의 지기(志氣)가 드러나게 되니 꿇어앉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제자 정수칠에게 당부하는 말) 

범상한 이야기 같지만 다산의 말씀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풀어놓고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저 편하고 자유로워야만 살맛이 난다는 사람들, 온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넥타이도 없어져가고 격식에 맞는 의복도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남자건 여자건 장소의 어디에서도 발을 꼬고 편하게만 앉아 있고, 학교 교실의 학생들도 바르고 곧은 자세보다는 제멋대로의 자세로 생활해도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아무리 더운 여름 날씨에도 의관을 정제하고 버선과 댓님을 제대로 갖춘 자세로 온종일을 보내던 우리 증조할아버지나 무릎을 꿇고 공손하고 경건하게 글을 읽는 사람은 요즘으로 보면 얼마나 답답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인가요.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인내심과 노력의 결과로 큰 학자가 되고 큰 선비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답답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음은 분명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막말을 지껄여 버리고, 입고 싶은 대로 옷이나 신발을 신고, 편한 대로만 자세를 지니는 사람들, 옛날 사람들과 똑같이는 못하더라도 그들을 어리석다고 여기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자세를 풀면 속마음의 경건함 역시 해이해진다.’라는 다산의 말씀이 그냥 지나쳐버릴 말씀이 아니라는 것만 생각해주면 어떨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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