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재미는 있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 김준아 기자
  • 승인 2019.08.06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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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주나 캐나다 살기-6회] 구직하기②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광고 문구이다. 좋아하는 걸 실행하고자 무작정 캐나다로 왔다. 여기서 무엇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로키 산맥에서 살아 보고, 오로라 보러 다녀오고, 나이아가라 폭포가 보이는 곳에서 일 해보고, 캐나다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 내 꿈은 소박하다. 캐나다에 도착한 순간 다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었으니까. 꿈을 좇는 그 여섯 번째 이야기.

 

행복하기 위해 재미있는 베이글 집 알바생 역할을 그만두기로 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행복하기 위해 재미있는 베이글 집 알바생 역할을 그만두기로 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알람이 울린다. 아침이다. 온몸이 뻐근하다. 몸살이 난 것만 같다. 출근이라는 게 이런 건가? 평생을 프리랜서로 살아서 매일 출퇴근하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 가끔 한국에서 출근시간에 지옥철을 탈 때면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희 매일 하루를 이렇게 시작하는 거야? 존경해.” 20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계신 아빠와 정확히 19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고 계신 엄마가 존경스럽다. 나는 절대 못 할 일이다.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거 말이다. 매일 출퇴근? 오 마이 갓!

장점으로 포장하자면 자유롭고, 언제나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는 나. 단점으로 말하자면 아침 잠 많고, 반복되는 걸 참지 못하는 나. 이런 내가 출근을 시작했다. 그것도 한국보다 16시간이나 느린 곳 캐나다 알버타주 캔모어에 위치한 베이글 카페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말이다. 굉장히 기대되고 설렜다. 특히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역할이 마음에 들었다. 한편으론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두렵기도 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거나 힘든 일을 이겨내야 할 때면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내 직업은 연극배우. 나의 상황과 눈앞에 닥친 일을 내 역할(캐릭터)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 그저 지금 이 역할을 ‘어떻게 표현하지? 어떻게 극복하지?’라는 생각만 들 뿐이다. 힘든 일도 이렇게 극복을 해내는데 이번에 맡은 역할은 내가 하고 싶었던 역할이다. 그래서 출근 전, 새롭게 맡은 캔모어 카페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해보았다. 출근을 해서 코워커(Coworker, 함께 일하는 사람, 동료)들과 인사와 안부를 나누며 유니폼을 입는다. 손님들과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며 주문을 받는다. 당연히 영어 실력이 늘겠지? 커피를 만들기도 하고,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이 생기겠지? 쉬는 시간엔 할인 받은 맛있는 베이글을 먹으며 여유를 만끽한다. 매일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겠지? 그리고 일이 끝나면 같이 일한 코워커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며 수다를 떤다. 가끔은 같이 저녁을 먹기도 한다. 친구들도 생기겠지? 이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출근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날 수가 없다. 몸살이 난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날 먹은 퍼피시드(Poppy seed)베이글. 그만 두지 말까 잠시 망설이게 만든 맛이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마지막 날 먹은 퍼피시드(Poppy seed)베이글. 그만 두지 말까 잠시 망설이게 만든 맛이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유니폼을 챙겨 출근했다. 동료들과 안부를 나누기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 하고 일을 시작한다. 오전 6시에 오픈 하는 베이글 카페는 오전 5시부터 오전 11시까지 한 시간 단위로 1~2명씩 출근을 한다. 트레이닝 기간에는 오픈조로 출근을 하지 않기에 내가 출근하면 무조건 누군가 출근해 있다. 그 말인 즉 슨, 이미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누구든 출근을 하면 일단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화장실을 점검하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커피통과 각종 소모품(냅킨, 설탕, 정수기 물 등)을 체크한다. 항상 신기했던 점이 분명 나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한 사람이 있어서 1시간 전에 쓰레기통을 확인했을 텐데 항상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손님이 많은 곳이라는 증거다. 그렇게 출근해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하고 나면 매니저가 포지션을 준다. 모든 포지션은 돌아가면서 한다. 커피 만들기, 베이글 만들기, 주문받기, 설거지, 재료 준비까지. 무엇 하나도 여유롭지 않다.

주문을 받는 줄은 마치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줄 같다. 끝이 없고 줄지 않는다. 분명히 엄청 많은 손님에게 “주문하시겠어요?” 하고 물어본 거 같은데 그만큼 또 줄을 서 있다. 그래서 말이 점점 짧아지고 빨라진다. 말이 짧아진다는 건 예를 들어 이런 거다. “Would you like for stay or to go?(포장이세요? 드시고 가세요?)” 라는 질문을 “For stay or to go?” 라고 아주 짧고 빠르게 말하는 거다.

 

이렇게 꽃이 피었는데 퇴근하고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이렇게 꽃이 피었는데 퇴근하고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커피를 만들 때면 속으로 생각한다. ‘제발 아메리카노 주문해라!!!!’ 캐나다 사람들은 라떼를 좋아하는 거 같다. 그래서 참 미안했다. 나의 라떼 아트 실력은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하트를 만들어 보고 싶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베이글 샌드위치를 만들 때면 벽면에 붙어 있는 레시피를 컨닝 한다. ‘햄 두개, 피망 두개, 양파 조금, 양배추 한 장, 핫 체다 크림치즈가… 어떤 거지?’ 정말 헷갈린다. 이렇게 주문지가 계속 밀려 들어오는데 알레르기와 관련된 주문이 들어오면 장갑을 벗어야 한다. 모든 식재료를 새로 준비하고, 새 장갑을 끼고, 새 도마에서 새 칼을 이용해 만든다. 설거지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아주 간혹 손님이 적은 시간이 분명히 있다. 그러면 쉴 수 있냐고? 아니, 청소를 한다. 어디든 청소를 한다. 쉬는 시간은 30분인데 할인 받는 샌드위치를 먹으려면 그 30분 안에 내가 직접 만들어서 먹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고 자리 잡고 먹고 나면 바로 다시 일을 시작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된 기분. 재미는 있지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참 신기했다. 재미있으면 항상 행복이 따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된 기분. 재미는 있지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참 신기했다. 재미있으면 항상 행복이 따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출근시간과 마찬가지로 퇴근도 1~2명씩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하는데 퇴근 전에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출근 시간에는 해야 할 일들이 같다면, 퇴근 시간에 해야 할 일은 시간대 별로 다르다. 예를 들면 4시에 퇴근을 하면 진열대 유리를 닦아야 하고, 5시에 퇴근을 하면 남은 빵들을 포장해야 하고, 6시에 퇴근을 하면 테라스 정리를 해야 한다. 6시에 문을 닫는 베이글 카페는 4시부터 대청소를 시작한다. 전자레인지부터 냉장고 안까지 말이다. 매일매일 그렇게 청소를 한다. 출근과 마찬가지로 퇴근도 혼자 한다.

이상과 현실은 참 달랐다. 동료들과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고, 커피나 베이글에 대한 기술을 습득하고 싶었는데 적혀 있는 레시피 따라가기 바빴고, 친구들을 만들고 싶었는데 제대로 인사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는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새롭게 맡은 ‘역할(캐릭터)’ 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그 상황들을 즐겼다. 하지만 ‘재미있었다’가 아닌 ‘재미는 있었다’ 라고 조사를 붙인 이유는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이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매일 몸살에 걸린 것 같은 몸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며 캐나다에 여행을 와있는 건데 여행을 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체력 보충을 해야 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밥을 먹고 바로 누웠다.

 

캔모어의 동네 산책로. 이 곳에서 무언가 특별한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매일 걷고 싶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캔모어의 동네 산책로. 이 곳에서 무언가 특별한 걸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매일 걷고 싶다. ⓒ위클리서울/김준아 기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 재미는 있지만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참 신기했다. 재미있으면 항상 행복이 따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재미는 내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드리는 지에 따라 만들어 갈 수 있지만 행복은 억지로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닌 거 같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기 위해 재미있던 베이글 집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3주 만에 그만 두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있는 나는 오늘도 행복한 여행길이다.

 

김준아는...
- 연극배우
- 여행가가 되고 싶은 여행자
- Instagram.com/juna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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