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때는 바야흐로 2013년 6월, 어언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편과 나는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로 여름휴가를 간 참이었다. 휴양 목적이니 고급스러운 리조트에 묵어보자 싶어 인기 있는 대형 리조트 중 한 곳을 골랐고, 리조트 생활은 기대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복도에서 한 중국인 모자와 조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침식사를 마친 참이었던가.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구불구불한 발코니형 복도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한 방문 앞에 쭈그려 앉은 서너 살 된 아이와 그 앞에 같이 쭈그려 앉은 아이 엄마가 보였다. 아이는 한참 얼굴을 찡그려가며 복도 바닥에 무려 대변을 방출 중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우리의 기척을 느끼고 눈이 마주친 아이 엄마는 우리에게 환한(‘멋적은’이 아니라 분명 ‘환한’이었다) 미소를 날리는 게 아닌가. 그 방이 그 모자의 방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불쌍한 숙박객의 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모자의 방이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단거리 이동도 마다하고 길바닥(?)을 화장실로 활용하는 대륙의 개념에 충격을 받았던 날이다.

그런데 6년 후, 데자뷰처럼 비슷한 광경을 이번에는 중국 본토에서 마주하게 된다. 지난달 하이난(海南, 중국의 하와이로 불리는 섬 휴양지로, 중국 남부에 위치하며 깨끗한 공기와 가성비 좋은 특급호텔들이 장점이다)으로 여름휴가를 갔을 때의 일이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워터파크의 유수풀장에 남편과 아이를 들여보낸 나는 잠시 유수풀장 앞의 일광욕 침대(선베드)에 누워 휴식을 즐기던 참이다. 10시 방향으로 눈 앞의 삼 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는 커다란 사각 휴지통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한 부부가 두 세 살 쯤 되는 아이를 안고 오더니 휴지통 위에 아이를 들고 그대로 아랫도리를 벗겨 쉬를 누인다? 일광욕 침대에는 사람들이 꽤 누워있었는데 그 부부도, 누워있는 이들도, 지나가는 이들도 딱히 서로를 개의치 않아 보인다. 이 상황 나만 불편한 건가?

더 가관인 건 그 다음이었다. 쉬를 다 누인 후에 휴지통 옆 바닥에 갑자기 커다란 휴지를 한 장 꺼내 펼친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아이를 앉히고 그 휴지에 대변을 누게 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까지는 목격하고 싶지 않아 애써 고개를 돌린 나, 다른 먼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으나 이미 일광욕 침대가 꽉 차 있는 상황이라 옮길 곳도 없었다.

누군가와 이 상황을 공유하고 싶었던 나는 베프 J양과 새 친구 Y양에게 재빨리 문자를 보낸다. 중국에 통달한 J양은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한다.

“여전하군”

Y양은 질세라 같은 경험을 들려준다.

“나는 소주중심(苏州中心, 이 기사의 메인 사진에 보이는 동방지문 옆에 지어진 소주 최대의 대형 쇼핑몰이다. 지하 3층~지상 6층 규모에 영화관, 아이스링크, 각종 상점, 식당이 밀집되어있다)에서 휴지통에 애 들고 응가 뉘는 할매 봤어ㅋㅋㅋ”

그랬다. 우리 집 근처에서도 벌어지는 일인데 내가 목격하지 못했을 뿐. 그러고 보니 작년에 소주를 방문했을 때 길가 화단에 당당하게 노상방뇨를 하던 아저씨와 얼마 전 한인상가에 갔을 때 카이당쿠(开裆裤, 아랫부분이 뻥 뚫려 성기와 엉덩이가 노출되는 아이들 바지, 기저귀를 채우는 대신 이 바지를 입혀서 아이들 용변을 쉽게 보도록 한다고 한다.)를 입고 아랫도리를 훤히 드러내며 뛰어다니던 아이를 마주친 생각이 난다.

유아용 바지 카이당쿠, 사진 속 아이는 기저귀를 차고 있지만 원래는 기저귀를 차지 않고 입는 바지이다.
유아용 바지 카이당쿠, 사진 속 아이는 기저귀를 차고 있지만 원래는 기저귀를 차지 않고 입는 바지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더러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할 이야기가 많다,

중국은 집을 빌릴 때 대개 가구나 가전이 기본으로 들어있는데 세탁기도 기본으로 포함될 때가 많다. 그런데 중국 세탁기는 용량이 아주 작다. 대개 6킬로나 8킬로 짜리다. 주부로서 내가 가진 첫 번째 의문은 ‘중국 사람들은 이불 빨래를 안 하나?’였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나는 ‘신소주한인정보방’에 세탁기 용량이 작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중국 사람들은 정말로 이불 빨래를 잘 안한단다. 대개 볕 좋은 날 창틀에 이불을 걸쳐 말려 자외선 소독을 시키거나, 침구에 덮개를 씌워 덮개만 빠는 형태로 쓴단다. 베개도 그냥 베지 않고 수건을 덮어서 쓰기도 한단다. 정 빨아야 할 일이 생기면 세탁소로 들고 간다고 한다. 그렇게 쓰는 침구가 얼마나 깨끗할지는… 미지의 세계로 남겨놓겠다.

중국에 와서 십수 년간 잊고 지냈던 생물과 재회하기도 했다. 바로 날아다니는 쌀벌레(정식 명칭은 ‘화랑곡나방’이다.)이다. 곡식을 방치하면 생긴다는 그것, 오래된 침구 같은 데서도 생길 수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아련한 그 생물체가 우리 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주방문을 열면 아파트 일꾼용 엘리베이터가 있는 작은 복도가 나오고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어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는 구조이다. 그리고 쓰레기통 반대편으로는 옆집 주방문이 있어 가끔 쓰레기를 버릴 때 옆집 사람과 마주친다. 그런데 옆집은 복도에도 뭔가 물건을 빼곡히 쌓아놓았던데 주방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분리수거 없이 음식물 쓰레기까지 다 같이 버리는 쓰레기통이라 쓰레기통에서 생겨난 건지, 주방문만 열고 나가면 쌀벌레들이 풀밭의 나비마냥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쌀벌레들이 못 들어오게 주방문을 닫고 나가서 쓰레기를 버리면 좋겠지만 주방문은 현관문처럼 살짝만 닫으면 자동으로 잠겨서 열쇠로 열어야 하는 구조라 대단히 번거롭다. 그래서 문이 안 잠기게 널찍하게 열어놓고 쓰레기를 버리러 몇 번 다녔더니 그새 쌀벌레들이 집안으로 날아들어 오기 시작한 거다. 번식이 얼마나 빠른 건지 한 달이 넘으니 집이 쌀벌레 천국이 된 지경이다. 참다못해 며칠 전에는 주방문을 절대 열지 않기로 가족들에게 선포했다. 쓰레기는 그냥 현관문 앞에 놔뒀다 아침에 나갈 때 1층에 버리기로 했다.

 

세탁실 벽에 살포시 내려앉은 쌀벌레. 쌀벌레 퇴치를 위해 하루 날 잡고 지인들을 불러 ‘인당 열 마리 잡기’ 대회라도 열어야 하나 생각중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세탁실 벽에 살포시 내려앉은 쌀벌레. 쌀벌레 퇴치를 위해 하루 날 잡고 지인들을 불러 ‘인당 열 마리 잡기’ 대회라도 열어야 하나 생각중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올해 초 J양의 중국 집에 놀러 가 ‘띠디’를 처음 탔을 때의 기억도 새롭다. J양이 단골로 이용하는 운전기사였는데, 차에 올라타는 순간 코로 밀려오는 꾸릿한 냄새가 정말 강렬했다. 겨울이라 창문을 닫고 다니니 환기를 잘 안 해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 애써 숨을 참고 있는데, J양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마 안 씻어서 나는 냄새일 거란다. 종종 이런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많단다. 후각이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나인데도 도무지 냄새를 참기가 힘들었다. J양이 들고 다니는 냄새가 진한 핸드크림을 꺼내 재빨리 손에 바르고 그 냄새를 들이마시니 그제야 좀 진정이 되었다. 내 생애 최초로 경험해 본 ‘안 씻은 냄새’였다.

그런가하면 대도시에는 빈도가 좀 덜하겠지만 아직도 수세식(좌변기)인 공중화장실이 많다. 겉보기에도 낙후된 한인상가 화장실이 수세식인 건 놀랍지 않았지만 소주 시내에 여러 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커다란 마사지숍에 갔을 때와, 규모가 크고 번듯한 양꼬치 음식점, 제법 규모있는 쇼핑몰의 화장실이 수세식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조준이 어려운 수세식 화장실의 흥건한 바닥과, 익숙한 냄새는 모두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처음 겪어보는 수세식 화장실에 앉는 법을 몰랐던 딸내미는 엉거주춤 헤매다가 바지를 흠뻑 적시기도 했다.

가정집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전 타오바오에서 재미있는 상품을 볼 수 있었다. ‘1㎡ 미니 화장실’이라는 상품이었는데 사진처럼 좌변기 위에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다. 설명에는 ‘변기 전용 덮개를 사서 목욕할 때 덮개를 덮고 그 위에서 하면 물 샐 틈도 없다’고 되어 있다. 무려 129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신박한 공간 활용을 원하는 1인 가구에게 살포시 추천해본다.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1㎡ 미니 화장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1㎡ 미니 화장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제목의 정답은 ‘길바닥’/ ‘휴지통’이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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