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1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국가와 민족이 일어섰다 사라져갔다. 지금까지 한 언어와 문화, 국민, 동일 규모의 국경을 보존한 국가는 중국을 빼고 한국이 유일하다. 신라 이후, 한국은 오늘날도 민족과 국가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유럽에서도 그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전 주일대사를 지냈던 하버드대학의 ‘에드윈 라이샤워’(Edwin Reischauer) 교수의 말이다.

라이샤워 교수는 “장보고(張保皐 AD?~846)는 해양상업제국의 무역 왕(The Trade Prince of the Maritime Commercial Empire)으로 군림했고 중국과 한국, 일본의 바다를 안마당처럼 드나들며 신라인의 일터로 만들었고, 중국 산동반도 일부와 대운하 일대, 한반도 남부지방을 자신의 자치구처럼 다스렸다.”고 했고, 장보고 대사(大使)를 총독(Commissioner)이라 해석했다.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은 1968년 미국 하와이대 유학 시절에 보게 된 라이샤워 하버드대 교수가 1955년에 쓴 ‘엔닌(圓仁)의 당나라 여행기’(Ennin’s Travels in Tang China)에 나온 ‘중국에서의 한국인’ 편을 보고 장보고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엔닌’은 9세기경 중국에 불교 유학하던 일본 승려다. 그는 당나라에 있던 신라인들의 조선술(造船術)과 항해술이 동양에서 가장 뛰어나 황해와 동지나해, 대한해협의 해상무역을 장악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김 명예 이사장은 “장보고는 동양 세계의 해상권을 막강한 해군력으로 지배했다. 그런 유전자를 이어받은 한민족이 전 세계 해운산업과 조선업을 장악했고, 국제해상무역을 통해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고 강조한다.

“특히 완도 청해진(淸海鎭)은 황해와 중국해, 동해권 해상경영을 담당한 오늘날의 다국적 초기업 같은 역할을 했다.”고 밝히는 김성훈 명예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농림부 장관을 지낸 ‘해상왕’ 장보고 연구의 숨은 개척자다.

당시는 장보고에 관한 연구도 없었고 거의 불모지였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자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뿐이었다. ‘해양’(海洋) 혈통을 잃은 잠자는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 김 이사장은 ‘장보고 해양경영사연구회’를 설립하고, ‘장보고해양경영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무려 1150년 만에 장보고를 회복시켰다.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 이사장으로부터 장보고의 위대한 해양개척 정신과 역사적 가치, 21세기 해양패권을 향한 한국의 미래, 오늘날 동양 3국의 해양 전략, 한민족과 장보고를 통한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3회로 나눠 게재한다.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해양 왕 장보고 후예인 우리 민족이 현재 해양을 잃은 상황에서 본격적인 장보고 연구를 언제부터 했는지 알려 달라.

▲ 아쉽게도 우리에게 장보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전무했었다. 학계에서조차 연구하지 않았다. 이래서는 우리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장보고라는 걸출한 인물이 실존했었고, 그런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1989년 11월 장보고해양경제사(張保皐海洋經營史) 연구회를 발족했고, 장보고 대사의 역사적 발자취를 찾기 위해 한·중·일 3국의 역사현장을 탐사하고 사료를 발굴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국내외에 장보고 관련 실증사학(實證史學) 연구 결과들이 속속 발표되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1992년 11월에는 세계 최초로 전남 완도에서 ‘장보고 해양경영사 연구’에 관한 대규모 국제회의를 열기도 했다. 1999년에는 해상 왕 장보고 기념사업회가 창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장보고 연구의 결실을 맺었다.

 

- 당시 동양의 해양교류는 어땠는지.

▲ 한반도는 중국 동해안과 일본 열도와 하나의 육지로 연륙되어 있다가 지각변동에 의해 지리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는 고고학계와 지질학계가 아직 풀지 못한 연구과제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기록상으로 한반도 3면의 바다인 동해와 남해, 서해(황해)는 선사시대로부터 고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중일 3국간의 인적-물적 교류와 이동의 주요 항로로서 오래전부터 큰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대륙에 웅거했던 세력의 일부가 육로보다는 해로로 더 빈번히 왕래한 기록이 고대사에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황하와 양자강 중하류 지방, 산동반도에 웅거했던 동이족(東夷族)이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이주해 왔다는 기록이 있다.

또는 만주(滿洲, 지금의 중국 동북3성)로부터 고대 한민족의 일부 집단들이 백가제해(百家濟海=百濟), 십가제해(十家濟海=十濟) 등 바다를 통해 이동하여 한반도 중남부 일대에 백제라는 나라를 세운 경위 등이 그러하다. 백제라는 이름부터 해상국가였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중국과 일본과 교류협력을 매우 활발히 했다. 특히 일본 열도로 건너가 일본국가의 기원을 제공기도 했다.

 

- 장보고에게 있어 청해진의 역사성을 말한다면.

▲ 장보고와 청해진 주민들은 신라에 의해 정치적으로 강제로 복속됐기 때문에 이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정신’이 강했다. 이들의 강력한 ‘에너지’가 해양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한·중·일 동북아 무역네트워크를 구축했고, 해상물류 활동개척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됐다. 장보고는 청해진에 머물지 않고, 당나라에 있던 고구려와 백제 유망민(流亡民)과 신라인들을 하나로 통합해 갔다.

그러면서 거대한 상적, 물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주요 교통요지에 자치적 지역망을 형성했다. 재당(在唐) 고구려, 백제 유망민과 신라인의 통합 즉, 저항적 에너지를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했던 것이다. 예컨대 황하 중하류와 회수, 양자강 하류 남부지역은 본래 우리의 동이족이 활약했던 지역으로서, 해상민족이었던 백제계가 일찍부터 요서지역과 양자강 하류지역에 진출했었음이 중국역사서에도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 활동무대는 어디였나.

▲ 20여 곳의 신라방(新羅坊)과 신라인촌(新羅人村)을 경영했고 이는 국제물류의 효시를 이뤘다. 장보고가 활약할 당시의 중국의 신라방, 신라소, 신라인촌은 산동성 적산포 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문등현 유산포, 청도 팔수하촌, 연운항의 숙성촌, 강소성의 회안(楚州), 연수향, 사주(泗州), 양주(陽州) 및 소주(蘇州)외성, 절강성의 명주(明州), 천태(天台)현 신라촌, 태주(台州)의 신라촌 등 동연구회가 직접 확인한 곳만도 10여 곳이 넘는다. 그 외에도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 복건성에 산재해 있는 장씨(張氏) 집성촌이라든지 김씨(金氏) 집성촌의 일부가 당시 신라인들과의 무역교류 협력의 흔적이 남아있다.

 

- 이슬람권 등 중계무역도 성행했는데.

▲ 장보고 청해진 세력은 단순히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 3각 무역에 그치지 않고, 중국내의 남북 중계무역을 담당하고, 나아가서 절강성, 복건성, 광주성 및 양자강 일대에 진출해 있던 페르시아, 동남아시아 상인들과의 상거래를 주도한 국제무역상(國際貿易商)으로서 우리나라 국제무역의 효시였다.

그 물적 증거로는 양주와 영파 등에 자리 잡은 신라관(고려관)의 옆에는 이슬람관이다. 지명과 문헌기록에 나타난 신라인 집단거주 촌은 최소 20여 곳이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역적 분포를 보면 산동반도(황해 횡단항로)와 강소성(경항(京抗) 대운하), 절강성, 복건성(남중국항로), 일본의 하까다 태재부(太宰府) 등 동북아시아의 해운(海運)과 수운(水運), 교통요충지와 상업도시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이로써 장보고 세력은 당시 한·중·일 3국의 중요 교통과 상업요충지에 대외경제 무역교두보를 확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샴 등 서방무역세력을 한·중·일을 중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오늘날 국제물류와 해운조선업과 중계(中繼)무역의 효시가 다름 아닌 장보고 선단이었다. 1955년 라이샤워 교수가 명명한 동양 3국의 해상무역왕(The Prince of Maritime Commercial Empire) 칭호가 사실임이 입증되고 있다. <2회로 이어집니다.>

 

▲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졸업
1968년 미국 하와이대학 유학
1976년 중앙대학교 농경제학 교수
1998년 농림부 장관
전 소비자정의센터 고문
전 경제정의실천연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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