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인터뷰]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3회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김성훈 장보고글로벌재단 명예이사장(전 농림부 장관) ⓒ위클리서울/한성욱 선임기자

- 정치권의 인식변화가 절실하다.

▲ 바다는 한민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바다를 멀리하면 망했고, 바다를 가까이 할 때 흥했다. 바다를 가까이 한 해양세력국가인 유럽이나 미국을 보라. 오늘날까지 번영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한때 대한민국이 세계 조선업 1위를 구가했지만, 지금은 중국에게 밀리고 있다. 과거 정권들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된 것도 해양에 있음을 몰랐다. 국내 굴지의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부도 처리했고, 해운강국 위상을 크게 떨어트렸다.

이 일은 훗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큰 실수로 기록될 것이다. 한진해운 부도는 ‘한진’이라는 기업 하나를 없앤 게 아니라 바다를 없앤 거다. 그러면서 바다경영이 망가졌다. 차라리 정부가 인수해 경영했더라면 더 나았다. 과거 조선조 때로 되돌아간 사실상 ‘경제적 쇄국정책’이나 다름없다. 훌륭한 리더라면 바다경영을 향한 젊은이들의 기상을 키우고 뛰어들도록 독려해야 한다.

 

-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가 나갈 방향은.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바다길이 막히고 해양진출이 부진할 때 국운은 쇠퇴하였다. 한반도가 역사상 바다를 경영하고 대외진출을 도모한 것은 백제의 요서경략(遼西經略)과 양자강 유역 진출과 그 후 3백년이 지나서 장보고(張保皐) 대사에 의한 동양 3국의 해상무역 제패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신라 말기 장보고가 죽자, 동시에 청해진이 쑥대밭이 되고 바다경영은 당, 송, 일본 등에 의존하는 폐쇄적인 체제로 축소됐다. 통일신라와 그 후속 왕조들의 국세는 계속 위축되기에 이르렀다. 본시 예성강의 대객주(大客主)이었던 해상세력의 맹주 고려 왕건(王建)이 통일한반도의 군왕으로 등장한 이후, 바다경영은 단지 국내 조운(漕運)으로서의 기능과 역할만 했다.

그런대로 명맥을 보전한 것은 불가사의다. 그것도 대양경영의 주도권을 송나라 중국에 맡겨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한반도내의 동이족(東夷族)들은 중국과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동일 민족, 동일 세력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한반도 내부에 남아있던 동족 간의 세 불리기와 권력쟁탈에 몰입했다.

 

- 장보고는 최초의 세계인이었다는 평가다.

▲ 장보고 대사의 성품과 처신은 대단히 인도주의적 민족적이지만, 그 지향은 언제나 국제적이었다. 활동범위는 세계를 무대였다. 오늘날의 다국적 기업인의 원형이었다. 따뜻한 인간애와 정의감, 그리고 동포사랑과 국제화 정신은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고구려, 백제, 신라계 동포들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한편, 당나라가 당시 비록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임에도 무령군중(武寧軍中) 소장직에 이어 대사라는 직명을 부여받았을 만큼 중국에도 큰 공을 세운 듯하다. 또한 영향력도 막강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신라 본국으로부터 대번에 군사 1만 명을 거느리도록 허락받은 사실이라든지 감의군사(感義軍使), 진해장군(鎭海將軍)을 제수받고 식읍(봉토) 2천호를 하사받은 배경도 그렇다. 두 나라에서 공히 행정상 자치권을 누렸다는 사실은 오늘날로 말하면 장보고 대사가 두 국적을 향유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으로서의 치외법권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위대한 정치력을 보유하였음을 뜻한다.

 

- 정보교류와 종교, 문화, 산업의 교두보였다.

▲ 종합상사 격의 장보고 상단의 국제통상지식과 정보력은 당시로는 상상을 뛰어넘는 우수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무역 업무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정부 공무역(公貿易)업무의 대행, 3국 정부 공식사절 안내, 여객운송, 선박건조(造船)와 수리, 한-중-일어 통역과 선원 제공, 종교문화지원, 실크와 청자개발무역, 즉 실크로드와 세라믹로드 개설운영 등 각종 상업서비스와 문화사업까지 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장보고 선단은 그 활동영역이 국제무역에 그치지 않고 종교, 문화, 학술 진흥과 산업발달에 크게 기여했음이 확연하다.

 

- 불교 중흥의 원동력이기도 했는데.

▲ 완도 상황봉의 법화사(法華寺), 제주도 하원동의 법화사(法華寺) 그리고 중국 산동반도 적산의 법화원(新羅院), 절강성 천태산의 국청사(國淸寺) 신라원, 그리고 일본 교토의 적산선원(赤山禪院) 등은 종교적으로 또는 정신문화사적으로 모두 직간접으로 장보고 대사의 불교 및 무역 항해 활동과 깊은 관련을 맺고 설립되었다.

뿐만아니라 9~10세기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일대와 일본의 중요 사찰 및 승려들의 입당구법(入唐求法) 수업도 장보고 선단의 편의제공으로 이루어졌었다. 장보고 대사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의 불교 발흥에 원동력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 초 국경기업의 시초였다.

▲ 장보고의 청해진 조직은 병부(兵府) 즉, 군사체제와 민부(民府) 무역체제, 재당(在唐)-재일(在日)의 신라인 집단거주지의 자치제 등 3개의 조직체로 일종의 독립적인 소정부(小政府) 형태를 띤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군산상(軍産商) 복합체적 종합상사 성격이 농후하다. 청해진이 신라 중앙정부로부터는 일정한 독립적인 행정과 경영체제를 유지했다.

재당 신라방과 신라소 경영은 당나라 중앙정부로부터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받았던 것으로 보아, 장보고의 재당 영향력과 신라인들의 뛰어난 상업정신 등 탁월한 영도력하에 3국민이 결집한 결과다. 장보고와 재당 신라인들은 오늘날의 다국적(多國籍) 초 국경(MNC 또는 TNC) 기업의 효시라고 말할 수 있다.

 

- ‘장보고 정신’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나.

▲ 장보고 대사는 당시에 오지나 다름없는 서남해안 구석에 있는 완도에다가 청해진을 설치했다. 청해진은 범선시대 항로의 천연적인 요충지였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서도 지리적 장점과 자연의 힘을 이용해 남북 중국항로와 일본으로의 항로를 장악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완도 섬 청해진이었다. ‘바다경영을 통해 대륙을 지배한다.’는 정치-경제적 안목으로 해양을 제패한 천재성을 주목해야 한다.

1992년 전남 완도에서 개최했던 제1회 장보고 대사 해양경영사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어시누스대학의 ‘휴 클라크’(hugh Clark) 교수도 완도의 항해사적 전략적 중요성을 거듭 지적했고, 장보고 대사의 천재성에 찬탄을 거듭한 바 있다. 일본의 공식적인 역사기록이나 라이샤워 교수의 저서 등에 나타난 바와 같이 당시 신라의 뛰어난 조선술과 바다 항로 장악은 ‘원인이라기보다 그 결과였다’고 말할 정도다.

 

- 바다가 한민족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 줄 것인가.

▲ 대한민국은 세계 제1의 조선국이다. 세계 유수의 해운강국으로 발돋움 한 한국과 중국, 일본 동양 3국이 5대양 6대주를 누비는 국제무역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5대양 6대주가 우리 모두의 일터다. 그 바다 너머 새로운 물결이 우리에게 손짓하고 있다.

황해와 중국해, 동해바다를 국적도 없이 떠돌고 있을지 모를 장보고와 신라인들의 영혼을 달랠 새로운 전기를 모색할 때다. ‘백가제해(百家濟海)’의 혼을 이어받은 바다의 후손들이 지금 이순간도 지구촌의 험한 파도와 바다를 헤쳐 나가고 있다. 해양민족 ‘본능’이 발현되고 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라이샤워 교수가 말한 세계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해양상업제국의 무역왕자, 장보고의 혼과 피와 본능이 태평양 동북아권 시대를 맞아 이 순간도 우리의 피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바다는 우리에게 과거만 묻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가리키고 있다.

 

- 한국이 어떻게 해야 21세기 해양패권국이 될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전해 달라.

▲ 장보고는 고대 해상민족이었던 위대한 한국인의 원형이다. 현재와 미래에 있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는 우리나라 선단인 해운, 원양어선, 해군, 국제상사 등이 바로 장보고 후예들이다. 장보고는 저항적 에너지를 한 차원 높여 대륙경영과 세계사 개척이라는 창조적인 이상을 내연(內燃) 시키다가 비명에 일찍 갔을망정, 장보고 대사는 우리가 포기할 수 없는 끊임없이 쫓아가야 할 소중한 역사적 표상(表象)인 것이다.

한국은 지금 21세기 세계화 시대 속에서 동북아시아와 세계의 실크로드 주재자로 일어서느냐 아니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남북한 대립과 갈등으로 군소국가로 전락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것은 우리 문제만이 아니다. 동양 3국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세계사 개척을 위해서는 온 국민이 장보고 대사의 정신을 가슴 속에 깊이 되새기는 일부터 해야 한다. 더 나아가 동양 3국이 함께 살길을 개척할 공존공영의 실크로드를 만들 때다. 특히 목포와 부산을 잇는 남해안벨트를 통해 장보고의 혼과 정신을 다시 살려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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