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해바라기 삼총사
해바라기 삼총사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는가. 이웃 나라의 재판까지 뒤집어엎고자 안달복달하는 이것들이 대체 사람인가 귀신인가,”

눈만 뜨면 그런 소리나 중얼거리며, 뉴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날이 가는지 오는지 알 수도 없었던 어느 하루 우리 집 마당에서 수박이 터졌다. 방구석을 뛰쳐나와서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문득 수박을 발견했던가. 가운데 손가락 하나를 갈퀴처럼 구부려서 톡톡 노크를 하듯이 두드리는 순간 쩍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뒤를 이어 쩌억 쩍, 소리를 길게 내며 갈라진다. 마치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다.

내가 만일 그 시간에 수박을 발견하고 다가서지 않았더라면, 수박은 아마 내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 그만 터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면 개미와 달팽이와 바퀴벌레와 그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생명들이 달라붙어 맛있는 수박을 먹자고 노래하며 다 먹어치우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이 다 먹고 난 뒤에, 혹은 한참 먹고 있는 중에 내가 그것을 발견했다면, 나는 보나마나 억울하고 분하고 또한 내 자신이 한심해서 두 다리 쭉 뻗고 앉아 하늘이나 보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수박은 내 손가락 관절이 닿는 순간 쩍쩍 갈라져 주었다. 제대로 농창하게 익은 수박이, 내가 굳이 칼을 대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이, 기분 좋게 상쾌한 소리를 내며 쩍쩍 갈라져 주었으니 나는 아마 오랜 세월 그날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살다가 이렇게도 기쁜, 이렇게도 희열이 막 용솟음치는 일은 또 처음이다.

흙이 닿지 않도록 두 손으로 조심조심 들어 올리자니 제법 무겁다. 족히 오 킬로그램은 나가겠다.

 

자동으로 쩍 갈라진 수박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자동으로 쩍 갈라진 수박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감나무에 오이 노각이 주렁
감나무에 오이 노각이 주렁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방으로 가져와서 커다란 쟁반 위에 올려놓으니 빈자리가 거의 없이 꽉 찬다. 내 생애 이렇게도 큰 수박을 따 보기는 처음이다. 다른 사람이 길러놓은 것을 딴 것도 아니다. 내 손으로 수박 모종을 마당에 심어놓고 비가 없으면 지하수를 뽑아 뿌려주고, 태양이 너무 뜨거우면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등 그야말로 애지중지 길러낸 것이니. 이것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는 완전한 내 작품이다.

뿌듯하다. 감격스럽다. 농사의 농자도 제대로는 잘 모르는 내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니. 먹기도 아까워서 보고만 있는데 대통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남과 북이 경제적으로 힘을 합쳐 평화를 정착시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 한 문장이 내 귀를 뻥 뚫어놓았다. 이어서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 했던 전전날의 발언을 구체화시킨 대통령의 그 발언에 나는 그만 울고 말았다.

울자고 해서 운 것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어쩔 겨를도 없이, 가슴에서 커다란 것이 목울대를 탁 치면서 입으로, 눈으로, 온 몸으로 뛰쳐나온 것일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벌컥 쏟아내며 끅끅거린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뜬금없는, 뜻밖의 사태인 것만은 아니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 왔던가. 얼마나 목마르게 갈망해 왔던가. 자신만만하게 덤벼라 덤벼 이놈들아, 하고 우리의 대통령이, 우리의 지도자가 호령해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 왔던가. 이 눈치 저 눈치 온갖 눈치를 보느라 할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할 말은커녕 스스로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이 납작 엎드린 채로 제국주의자들이 이렇게 하라 하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 하면 저렇게 해온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일견 측은하기도 하지만, 저렇게도 약해빠져서 어쩌란 말이냐 하는 서글픔에 그만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선방불패라는 말이 있다. 먼저 치고 들어가는 쪽이 이긴다는 이 말은 동네 꼬마들의 싸움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얼떨결에 얻어맞고 코피를 흘리면서 앙, 울어버리면 패배한 것으로 인식되는 동네 꼬마들의 싸움은 물론 국가와 국가 간의 분쟁에 대입할 만한 것이 아니긴 하다. 그렇긴 해도 기선제압은 매우 훌륭한 전략임이 분명하다. 병법은 진실을 놓고 다투는 기술이 아니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해서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전략이고, 한 나라의 대통령은 개인적인 자존이나 도덕 감정에 우선해서 비용이 절대적으로 적게 드는 그런 전략을 선택해야만 한다.

 

대풍을 자랑하는 토마토
대풍을 자랑하는 토마토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물통에 발을 담고 홀짝
물통에 발을 담고 홀짝~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대통령이 유약하고 비겁하면 국민은 이민을 꿈꾸는 등 극단적인 활로를 모색하기 마련이다. 전투에서 장군이 적장과 밀통할 궁리나 하고, 여차하면 홀로 도망가겠다는 마음이나 품고 있다면 그 전쟁은 당연하게도 백전백패인데 무슨 희망으로 살아갈 것인가. 슬프게도 우리는 그동안 그런 함량미달의 대통령을 많이도 겪어 왔다. 과거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는 그런 비겁자들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두리번거리는 꼴을 목도하고 있다.

남북이 경제협력으로 평화를 정착시키면 일본을 능가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자는 비판도 아닌 비난을, 조롱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일본은 친구지간이고 북한은 주적인데 협력이라니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는 식이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 석 자 본명보다는 아베 일베 나베로 더 훌륭하게 알려진 야당의 원내대표 또한 질세라 허둥지둥 이런저런 온갖 말도 안 되는 헛발질을 하고 나섰다. 나라가 잘 되면 자기들이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노골적으로 투영된 이 사람들의 이런 언행은 새로울 것도 없는 거의 오물 수준이긴 하지만, 썩어가는 물이 아니면 먹을 것을 찾을 수 없는 벌레들에게는 새로운 세상임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등장했다.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사람의 모습을 본뜬 벌레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딸이 위안부로 끌려간다 해도 박수로 환영할 거라는 등의 발언은 분명 사람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람은 해도 보고 달도 보고 수평선 너머의 가물가물한 것도 보고 그래서 꿈이라는 것도 꾸지만 벌레는 행동반경이 보통 삼십 센티미터 내외이고, 특별한 경우라도 삼 미터를 넘어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허헛 참, 고것들 불쌍해도 지나치게 불쌍하네.”

헛웃음을 피식피식 웃어가며 중얼거리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세상을 인간 우위로 파악하는 휴머니스트인가 보다. 달려가서 머리채라도 뽑아버릴 생각은 못하고 불쌍 어쩌고 소리나 뇌까리고 있으니, 나는 사람이고 너희는 벌레라고 하는, 벌레는 사람에 비해 한참 열등한 동물이라는 인식이 내 마음에 깔려 있다는 느낌이어서 일견 씁쓸하기도 하다. 사람과 벌레를 동격으로 파악할 수는 없는 것일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안 될 것 같다.

 

보기는 이래도 달콤한 풋사과
보기는 이래도 달콤한 풋사과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석류도 때를 만났다고 활짝
석류도 때를 만났다고 활짝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이것은 사실 기분 좋은 현상이다. 그동안 내밀하게 숨어서 암약해 왔던 각종 쓰레기와 오물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나섰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무엇이랴. 게다가 오물과 쓰레기를 먹고 사는 벌레들까지 커밍아웃을 하고 나섰다. 우리는 저 쓰레기와 벌레들의 행위를 일러 발악이라고 한다. 발악을 사전적으로 풀이하자면 어떤 존재가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을 때 본능적으로 떨어대는 지랄발광이다.

그런저런 생각에 빠져 혼자 흐뭇해하고 있는데 뽕밭에 초보신선 오형렬이가 전화를 해 왔다. 친구가 토끼를 가져왔다고, 토끼탕 해 먹게 얼른 오란다. 이 더운 날 토끼탕은 무슨 얼어도 못 죽을 토끼탕이냐고 했더니 죽는다고 키득거린다. 녀석의 집구석이야 어차피 컨테이너라서 들어갈 자리도 없고, 마당에 커다란 고무통을 내놓고 거기에 차디찬 지하수를 가득 채워 발을 담그고 앉아 물장구를 쳐가며 맥주를 마시잔다. 듣고 보니 그것 참 좋겠다 싶어 길을 나서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녀석의 뽕나무밭 컨테이너 움막까지는 이십여 킬로미터. 가는 길에 주마간산 격으로 좌우를 힐끗힐끗 살피는데 그것 참,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밭두렁에 심은 호박은 벌써 넝쿨을 쭉쭉 뻗어 밭두렁을 거지반 다 장악해 들어갔고, 양파를 캐낸 뒤에 심은 메주콩은 그새 싹이 나와서 떡잎을 떨구고 울창해졌고, 대파밭에서는 쭉쭉 뻗은 대파들이, 땅콩밭에서는 땅콩이, 고추밭에는 주렁주렁 열린 고추가 이글이글한 태양을 맛있다고 쭉쭉 빨아들이며 익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탄저병으로 죽어가곤 했던 고추가 금년에는 하나도 안 죽었다. 이십여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고추밭을 최소한 서른 개는 지나쳤건만, 죽었거나 죽겠다고 시들어가는 고추 모종은 단 한 포기도 못 보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뭘 잘못 봤나 해서 다시 보았지만 죽은 것은 역시 하나도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마당에 심어놓은 고추도 죽은 것은 없었다. 작년만 해도 일반 고추는 초기에 절반 정도가 죽었고, 장마가 끝난 뒤에는 삼분의 일도 안 남았었다. 오이고추는 다섯 포기를 심어서 열 개도 못 따먹었고, 꽈리고추는 역시 다섯 포기를 심어서 한 물 정도나 수확을 하고 말았고, 청양고추 또한 그냥저냥 하다 말았지만, 금년에는 단 한 포기도 죽지 않았다. 죽기는커녕 어찌나 주렁주렁 많이도 열렸는지 오이고추는 미처 따 먹지를 못해서 빨갛게 익어갈 지경이었다.

 

카알라
카알라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이 많은 고추를 누가 먹을까
이 많은 고추를 누가 먹을까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고추뿐만이 아니었다. 많지도 않은 달랑 세 포기 사다가 심은 오이가 감나무를 따라 넝쿨을 뻗어 올라가는데 이파리 하나마다 한 개의 오이를 생산해 내고 있었다. 그것을 처음에는 정신없이 따먹었지만, 토마토가 익기 시작하면서부터 슬슬 외면했더니 세상에, 이 뜨거운 여름날에 늙은 오이가 하나 둘 늘어만 갔다. 그리고 토마토는, 그 또한 많지 않은 한 포기에 삼백 원씩 일곱 포기를 사다가 심었는데 어찌나 열매를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았는지 가지가 찢어질 지경이었고, 찢어진 가지를 나뭇가지와 끈으로 묶는 방식의 수술까지 해야만 했다. 수술을 하면서도 이게 과연 살아날까 했는데 잘만 잘아 주었고, 미처 다 먹을 수 없는 토마토는 삶아서 냉동을 해야만 할 정도로 겁나게 익어갔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아아 그렇구나. 금년에는 풍년이 들겠구나. 풍년도 보통의 것이 아닌 대풍이 들겠구나.

요즘 농촌에서는 풍년이 들면 가격 폭락이 걱정돼서 농민들은 너도나도 울상을 짓게 되지만, 금년에는 어쩐지, 어쩐지 울상이나 짓고 있을 일은 생기지 않을 것만 같다. 없어서 못 먹는 북한이 지척에 있는데 너무 많아서 울상을 짓는다는 건 명백한 모순이다.

모순은 풀어야 한다. 대통령이 용감하게, 자신만만하게 의지를 갖기만 한다면 그까짓 모순 정도는 얼마든지 풀어낼 수도 있다. 가령 개성공단 재개를 미국이 못마땅해 한다면, 북한 근로자들의 인건비를 현금이 아닌 농산물로 대신하겠다고 큰소리탕탕 치며 당당하게 나설 수도 있겠지 않겠는가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