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지음/ 문학동네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존재는 밝은 빛으로 비추면 달아난다. 철학이 가변적이며 모호한 존재를 붙잡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예술의 힘을 거기 얹어야 가능한 작업일 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이진경이 존재론을 통해 문학과 예술 텍스트를 독해한 책이다. 철학자의 시선이 기존 비평이나 문학사, 예술사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독법을 보여준다. 

존재의 비밀을 찾기 위해 존재론이 필요했다. 존재론은 지금 여기 없는 것, 있지만 없다고 간주되는 것을 더듬어 찾는 사유다. 그래서 존재론은 많은 경우 ‘유’보다는 ‘무’를 향해 간다. 존재론은 지금 여기 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에 대한 탐색이고, 지금 우리가 사는 삶과 다른 삶의 가능성을 묻는 물음이다.

철학자가 구태여 존재론을 들고 나온 것은 지나치게 눈부신 빛과 이성, 성공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 시대에, 자꾸 실패하는 것들이나 어떤 모호함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의 존재론을 통해 세계의 바깥에서 존재의 비밀을 찾고자 한다. 존재의 어둠 속에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이때 존재란 우리를 인도하는 빛이 아니라, 모든 규정이 지워지는 어둠이다. 존재는 어떤 능력이지만, 앎을 늘려가는 인식능력이 아니라 앎을 정지시키는 ‘무지’의 능력과 가깝다. 그것은 ‘해방’의 힘을 갖지만, 지식을 통한 해방이 아니라 미지(未知)를 통한 해방과 가깝다.

또한 존재론은 거절당한 자의 사유다. 그러니 존재론은 타자의 사유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존재를 읽기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했다. 

이 책에서 글쓴이는 문학과 예술을 통해 존재를 사유했다.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철학은 기원의 형상에서나 일반적 형상에서나 대개 ‘진리’를 추구하며, 확고한 근거를 묻고 모든 것을 그 단단한 기반 위에 올려놓고자 한다. 철학은 대개 인식론의 지반을 떠나기 어렵다. 철학은 ‘빛’을 애호한다.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근거의 확실성을 확인하고, 진리인지 거짓인지 입증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빛을 통해서다. 인식론은 빛의 사유다. 

반면 문학과 예술은 확고해 보이는 것에서 취약함을 간취하고, 명료하고 뚜렷하게 규정된 것을 모호한 다의성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많은 경우 문학은 희망보다는 절망에 다가가려 하고, 빛이 아닌 어둠에 끌려가며, 확실한 이유를 찾기보다는 이유 없이 말려들게 되는 ‘운명적인’ 사태를 다루고자 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시와 소설, 그림, 연극 등 예술을 통해 존재론을 펼쳐나간다. 문학과 예술은 철학과 달리 많은 경우 자신의 존재론을 설명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철학은 언제 어디나 있을 법한 것들에 대해 쓴지만, 시인과 예술가는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을 불러낸다. 

문학비평가나 예술사가의 관점이 아닌 철학자의 시선에서 독해한 텍스트의 결이 흥미롭다. 이를테면 그는 인간, 동물, 식물, 심지어 사물에서도 세계란 어떤 존재자 인근에 펼쳐진 특이성의 장임을 발견한다. 한편, 그는 미술 작품에서 작품을 예술로 만드는 것은 작품에 재현된 대상이 아니라 그 대상을 둘러싼 이 대기이고, 그 대기 속에 녹아든 감응이며, 그 감응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임을 간파하기도 한다. 김시종과 이성복의 시에서 ‘존재론적 사건’을 발견하기도 한다. 철학자의 독법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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