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류지연의 중국적응기 '소주만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내 나이 38세.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안정적인 한국생활을 뒤로 하고 타국에서 하루아침에 외노자(외국인 노동자의 준말) 신세가 되었다.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아프리카만큼 멀게만 느껴졌던 중국이라는 나라,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38살 아줌마의 중국 체험기, 지금부터 시작해본다.

 

2019년 8월 14일 수요일, 대망의 아침이 밝았다.

‘아기다리고기다리던데이트’가 아니라, 6살 딸내미의 ‘아기다리고기다리던첫등교’일이다.

아파트 단지 앞에서 학교버스를 타는 시각이 오전 7시 18분이기에 오전 6시부터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부지런히 아이를 깨웠다. 조금 졸리다고 투정을 부리긴 했으나 다행히 그럭저럭 일어나서 요즘 애정하는 ‘꿀 바른 식빵’으로 아침을 먹는다. 밥을 먹는 사이 아이 머리를 묶고, 어제 미리 싸둔 책가방에 물병을 챙겨 넣는다. 교복을 입어야 하기에 옷 실랑이를 할 시간이 줄었다는 게 다행이다.

 

국제학교 교복과 체육복, 모자를 필수로 사야 한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바깥놀이를 나갈 수 없다고 한다.
국제학교 교복과 체육복, 모자를 필수로 사야 한다. 모자를 쓰지 않으면 바깥놀이를 나갈 수 없다고 한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오늘은 딸내미가 처음으로 초등학교, 그것도 국제학교에 등교하는 날이다.

한국에서도 3년 3개월 동안 어린이집만 다녔기에 학교는 처음이다. 더군다나 중국 나이로는 5살이기에 저 어린 것이 어찌 벌써 학교를 들어가나 싶어서 남편은 무척 감격하는 눈치다. 내 경우는 어린이집이든 학교이든 ‘아이가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똑같기에 딱히 감흥은 없었다. 더군다나 한 반에 한국인 아이들이 많기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한국처럼 따로 입학식이 없는 대신 하루 전 학부모와 아이가 함께하는 학교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확인한 결과 아이 반의 총 23명 학생 중 모두 9명이 한국인이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중국계와 서양계가 절반 정도로 보였다. 1학년에는 총 4반이 있고, 교실은 특이하게 두 반씩 이어져 있어서 옆 반 아이들과도 활동 및 놀이를 같이 하게 되어 있었다. 작년 하반기에도 학교 상담 차 한 번 들러서 교실을 본 적이 있지만 오리엔테이션 때 다시 가서 보니 한국 학교랑은 교실 구조가 영 달라서 놀자판 수준이라 어린이집과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따로 열을 맞춘 책상이 있는 게 아니라 어린이집처럼 구역별로 놀 것들이 나뉘어져 있어 한쪽은 인형놀이, 한쪽은 미술교구, 한쪽은 모래놀이, 한쪽은 블럭놀이, 한쪽은 휴식장소(카펫 하나와 큰 소파 하나가 놓여있었다) 하는 식이다. 다른 학년 교실은 가보지 않았지만 4학년 학부모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거기도 책상이 4~5개씩 서로 마주보게 놓여 있고 그런 책상 그룹(?)이 교실에 4그룹 정도 있어서 일종의 토론식 책상구조라고 한다. 자리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그날그날 와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면 된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다양한 국적의 원어민 교사가 맡고 있고, 보조교사는 중국인이다. 그리고 두 반에 한 명씩 언어(영어)교육을 담당하는 합동교사(co-teacher)가 배치되어 있었다. 한국처럼 음악과 체육은 별도 교사가 따로 있었다. 점심 식사는 식당에 가서 먹되, 5~6인용 원형 식탁마다 가운데 음식이 차려져 있고, 아이들이 개인 접시에 먹고 싶은 것만 먹을 만큼 덜어서 먹는 구조였다. 음식은 딱히 어느 나라 풍이라고 할 수 없게 다국적(?) 식사로 나오는 편이었다. 쌀밥과 빵, 고기, 야채, 수프 종류, 음료수(물과 레모네이드/오렌지주스같은 음료 1종) 정도의 메뉴가 차려지는 것 같다. 또한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어린이집 시절처럼 과일, 스낵 등 간단한 오전/오후 간식이 나온다고 했다. 바깥 놀이를 오전/오후 두 번에 나누어 30분씩, 하루 총 1시간 나가는 것도 한국 기준과 똑같았다. 대충 환경이 비슷하니 남은 것은 아이가 낯선 언어 가운데에서도 잘 적응해주길 바랄 뿐이다.

 

식당에 차려진 식사
식당에 차려진 식사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국제학교의 바깥 놀이터, 한국처럼 정형화된 놀이기구는 없고, 좋게 말하면 자연 친화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돈 별로 안 들인 듯한 느낌의 놀이터이다.
국제학교의 바깥 놀이터, 한국처럼 정형화된 놀이기구는 없고, 좋게 말하면 자연 친화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돈 별로 안 들인 듯한 느낌의 놀이터이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사실 처음에 학교 선택을 할 때 국제학교는 마지막 고려사항이었다. 아직 어리기도 어리거니와 한글을 아직 읽고 쓸 줄 모르는 아이에게 중국어도 아닌 영어를 배우는 국제학교는 너무 부담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영어, 집 밖에서는 중국어, 집 안에서는 한글을 쓴다면 너무 혼란스러울 것 같았고, 짧으면 2년, 길어야 3년의 외지 생활인데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계속 쓰지도 않을 언어를 배우는 데 굳이 부담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소주에 있다는 한국학교를 보내려고 생각했었다. 어린 나이에 편도 30분 남짓 학교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찾아보니 소주한국학교는 도심이 아닌 외곽에 위치해 있어 남편 회사며 내가 다닐 학교(9월부터 소주대학교 어학당을 다니려고 계획중이다)와 너무 멀었다.(대부분의 국제학교와 국제유치원은 소주공업원구(苏州工业园区, sūzhōu gōngyè yuánqū)에 밀집해 있는데, 소주한국학교는 도시 남쪽인 오강구(吴江区, wújiāngqū)에 있어서 대표 중심지인 동방지문에서는 대중교통으로 1시간 반 정도, 자차로 40~50분이 걸린다.) 나야 외곽에 살면서 먼 거리를 다녀도 부담이 좀 덜하나 야근과 주말 출근이 잦은 남편은 외곽 거주에 난색을 표했고, 한인 상권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처음 적응기에는 생활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결국 대중교통과 한인상권을 고려하여 거주지를 정한 결과 소주한국학교는 탈락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 고려한 것은 한국유치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놀이학원’이다. 한국에서 영어 유치원이 정식 유치원이 아닌 ‘학원’인 것처럼, 중국에서 유치원 등록을 하려면 건물‧마당 등의 시설 기준이 있는데 영세한 한국 기관들은 이를 충족시킬 수 없어 학원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 놀이학원은 선택의 폭이 좁았다. 딱 세 군데만 있기 때문이다. 6월에 중국으로 들어온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아이와 함께 한국 놀이학원을 방문하는 거였다.

처음 갔던 곳은 한 상가 건물의 6~7층을 쓰고 있었다. 시설 관리를 깨끗하게 잘 한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리 보였는지 몰라도 깔끔하니 좋아 보였고, 좀 낡긴 했지만 교실마다 공기청정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고층에 위치해있다 보니 만에 하나라도 화재 등 비상상황의 경우 아이들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남편은 거부감을 보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곳은 한인상가 안에 위치한, 한인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오래되어 그런 건지 몰라도 낙후된 느낌이었고, 결정적으로는 급식이 없어서 매일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 기우인지는 몰라도 더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도시락을 따로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고 싸오면 그대로 상온에 놔뒀다가 점심에 먹인다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세 번째 방문한 곳은 역시 한 상가 건물의 3~4층이었다. 시설은 나름 아늑했고, 공기청정기는 없었지만 4층의 도서관에 피톤치드 발생기가 놓여 있었다. 남편은 먼저 소방시설 설치 여부를 확인한 후 3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두 번씩 오르내리며 피난경로가 괜찮은지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 상의한 결과 세 번째 놀이학원으로 합의를 보았다. 보육시간은 대략 9:30~15;00이고 원비는 한 달에 3,500위안(한화 약 595,000원)이니 보육수당이 지원되는 한국 비용과 시설 수준을 고려하면 결코 싸지는 않다. 다른 놀이학원들도 그렇지만 따로 운동장이 없어 실내활동만 하는 것도 단점 중의 하나이다.(주 1회 원내에서 체육 시간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오래 보내기는 힘들다는 판단에 8월 정식 개강 전까지 단기간만 보내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는 국제 유치원을 고려해 보았다. 국제유치원은 서 너 군데 정도가 있었는데, 아이를 보내는 남편 회사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아쉽게도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한 시도 입을 쉬지 않고 뭔가를 말해야 하는 아이의 특성상, 말이 안 통하는 유치원에 혼자 한국인으로 덩그러니 들어가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에 유치원도 그렇게 탈락했다.

그렇다 보니 마지막 선택지인 국제학교 중에서는 일부러 한국인이 더 많은 곳을 골랐다. 국제학교의 경우는 세 군데가 있는데, 두 군데는 영국계이고, 한 군데는 싱가포르계이다. 영국계의 경우 학제가 우리나라와 달라 만 5세가 유치원이 아닌 1학년으로 입학이 가능했다. 학교 최종 선택 전 아이와 함께 체험 수업을 한 번 가보았다. 처음에는 교실에 들어가 쭈뼛거리다가 한국인 여자아이들 대여섯 명을 만나서 신나게 놀더니 집에 돌아와서는 빨리 다시 학교에 가서 그 아이들과 놀고 싶다는 거였다. 어린 나이에 1학년에 들어간다는 점과, 여아는 치마 교복밖에 없다는 점,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평판이 있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적응은 빨리 잘하겠거니 싶어서 영국계인 D 학교를 골랐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4:10이다, 학교버스를 학년별로 나눠서 운영하기 번거로워서 그런지 모든 학년이 똑같이 그 시간에 한 버스를 타고 집에 온다. 고학년들의 경우 방과 후를 신청하면 더 늦게 오기도 한다는데 1학년에게는 4:10도 충분히 고된 시간일 것이다. 하루를 어찌 보냈는지 물었더니 다행히 한국 여자친구를 사귀어 이것저것 하고 놀았단다. 선생님이 뭐를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했다고는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래도 첫 주가 끝난 주말 선생님이 첫날 찍은 사진이라며 위챗으로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는데, 다행히 밝게 웃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학교 버스, 44인승 대형버스에 튼튼하게 생겨서 나름 안심이 된다.
학교 버스, 46인승 대형버스에 튼튼하게 생겨서 나름 안심이 된다. ⓒ위클리서울/류지연 기자

첫 학교에 더군다나 국제학교, 학부모 소집도 상당히 많다고 해서 나름 긴장이 된다. 앞으로 어떤 학교생활이 펼쳐질지 기대해본다. 

<류지연 님은 현재 중국 소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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