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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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난타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되어 간다. 교육생이었을 때는 행동이 훨씬 자유로웠다. 몸이 아프거나 다른 일정과 겹치면 결석도 할 수 있었지만 강사가 되고부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꼬박꼬박 수업 시간을 지켜야 했다. 아파서 쉬고 싶어도, 아이들 학교에 참석해야 할 일이 생겨도 프리랜서 강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타 강사를 섭외해서 대신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왠지 그건 내 스스로가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자초지종을 회원들께 설명해 드리고 휴강을 한 후 보충 수업을 진행하는 편이 내게는 더 떳떳했지만 사실 회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올 여름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여름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장성한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더는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있었고, 수 십 년간 내 몸에 붙어있던 사랑니를 발치해야할 이유도 있었다. 감사하게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팀들 모두 여름휴가를 허락해 주셔서 무려 일주일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사랑니 발치다.

나에게 사랑니란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 있는지 없는지 서로 관심이 없었다. 사랑니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왼쪽, 오른 쪽, 상하좌우 모두 사랑니가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위쪽에 있다는 사랑니는 거울 앞에서 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입을 찢어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쪽 이들은 하마처럼 크게 입을 찢으면 보이긴 했다. 오른 쪽 아래 이는 자리 잡은 곳이 편했는지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의사들은 사랑니를 발치할 것을 권했다. 건강상, 위생상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며 발치하라고들 했지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특별히 아프지도 않았고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무관심 속에 피해를 주는 일도 딱히 없었고 게다가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공자님 말씀을 지켜야 한다는 억지 사명감이 내 발목을 잡고 있었다(본 적도 없는 공자님 말씀 지키느라 나는 귀도 아직 안 뚫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부모로부터 발부된 신체는 노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언젠가부터 남편은 내게서 구취가 난다고 했다. 우리 부부가 금슬이 좋아서 애정행각을 자주 벌이는 것도 아니고 서로 1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사는데도 구취를 느낄 정도라면 이건 좀 심각한 이야기다.

의사는 상하좌우 모든 사랑니의 발치를 권했다. 부모로부터 발부된 신체를 더 이상 지킬 수 없음에 깊은 통한을 느끼며 퍼런 마스크를 둘러 쓴 채 수술대에 누웠다. 잇몸 마취를 시작으로 군데군데 마취 주사를 찔러 대니 어느덧 내 입은 내 입인지 아닌지 퉁퉁 부었는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그야말로 괴롭기 짝이 없었다. 여러 가지 처치를 한 후 의사는 드디어 사랑니 발치를 시작한다며 움직이지 말 것과 소리가 날 수도 있다는 주의사항을 알려 주었다. 기구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입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듯하더니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불현 듯 들었다. 빠지직 소리가 마치 내 잇몸을 부여잡고 절대 놓지 않겠다는 절규처럼 들렸고 그 순간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괜히 눈물도 났다. 흐느낌을 참느라 힘들었다. 의사는 일단 왼쪽 사랑니만 발치했다며 증거물들을 보여주는데 저런 흉측한 물건이 내 입안에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흉측한 물건들을 의사에게 보여준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3개월 뒤 오른 쪽 발치를 약속한 후 입안에 거즈를 물고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처방 받은 약봉지를 달랑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쓸쓸했다. 늙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엄마의 합죽한 입모양이 생각나기도 했다.

좀 쉬면 나아질 거야. 약도 먹고 피도 멈추었으니 괜찮아 질 거야. 하루 쉬었다가 다음 날 여행도 가야지. 스스로에게 위로하며 잠을 청하였는데 이런! 문제가 생겼다.

다음 날 아침부터 허리에 통증이 시작되었다.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졌다. 일어서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움직여야 했다. 몸을 누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누워서 자세를 바꾸는 건 꿈도 못 꿀 일이 돼버렸다. 허리에 통증을 유발시킬만한 나의 행적들을 되짚어 보았다. 무거운 물건을 든 적도 없고, 넘어지지도 않았고,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굳이 들추자면 사랑니 발치하던 날 온 몸을 경직시킨 이유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사랑니의 복수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 가는 걸 싫어하고, 더구나 치과는 쳐다보지도 않고 살아온 터라 발치하는 그 순간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사랑니 입장에서는 나에게 치통을 유발시키지도 않았고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서 잘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하루아침에 거처를 잃었으니 원통하고 분하였을 게다. 굳이 잘못을 따지자면 양치질을 잘 못해 부실한 관리를 한 내가 원인일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움직이지도 못하게 허리 통증으로 복수를 하다니….

사랑니만큼이나 데면데면한 남편이 한방병원을 권해서 침을 맞았다. 의사가 언제부터 허리가 아프냐고 물어보는데 사랑니 뽑다가 힘을 너무 많이 줘서 그렇다는 대답을 하기가 참으로 민망했다. 다행히도 의사는 ‘염좌’라는 병명을 대며 그럴 수 있다고, 치료 잘 받으면 나아 질 거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동그랗게 뚫린 침대머리맡에 얼굴을 쳐 박고 엎어져서 엉덩이 반만큼이나 바지를 내리고 침 한 대에 신음소리 한마디씩을 더해가며 뜨끔뜨끔 침을 맞는 내 모습을 사랑니들이 보면 통쾌해 할까? 살을 잡아당기는 듯한 부황치료는 또 얼마나 아픈지. 이건 사랑니 발치에 대한 대가치고 너무 혹독하다. 나는 정말 병원이 싫다. 사람을 너무 아프게 한다. 울고 싶어졌다. 이러는 내가 꼭 어린애 같다.

사랑니를 발치한 지도 침 치료를 시작한 지도 어느 듯 3주가 되어 간다. 사랑니가 뽑혀 나간 자리는 뻥 뚫려 있는 덕택에 매 순간 허전함을 느낀다. 양치질을 할 때도 어색함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허리는 어느 정도 나아지고 있다. 꼬리뼈 부근이 조금은 불편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날아다닐 지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여름휴가를 마치고 수업에 복귀했지만 큰 동작이나 허리를 굽혀야 하는 부분들은 어색해 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랑니를 빼다가 힘을 너무 많이 줘서 허리가 아파요.” 참 말하기도 민망스러운 변명이다.

이해심 많은 우리 회원님들은 살살 하라며 걱정 한 보따리를 해 주신다. 본인들의 경험담도 빼 놓지 않고 알려 주신다. 허리통증에 좋은 음식이며 약재도 권해 주신다. 이 시점에 공연이 있었다면 꽤나 난감할 뻔 했는데 어찌 알고 공연도 없으니 참 다행이지 싶다. 사랑니의 역습에 거하게 당하고 나니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나 한 여름도 이젠 한풀 꺾인 기세다. 한 차례 태풍도 휩쓸고 지나가니 저녁엔 에어컨 없이도 제법 견딜만한 날씨다. 이제 곧 가을이 오겠지. 그리고 약속되어 있는 오른 쪽 사랑니를 발치할 그날도 다가오겠지. 그 때는 좀 덜 무서워질까. 우수수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이 벌써 그리워진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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