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승숙 지음/ 문학동네

ⓒ위클리서울/출처: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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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지난여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환상적이고도 핍진하게 그려낸 '여기에 없도록 하자'로 현실과 소설을 엮는 독보적인 감각을 장편소설로도 완벽하게 선보인 바 있는 작가 염승숙. 등단 15년차, 기복도 쉼도 없이 또박또박 자신만의 보폭으로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작가는 이제 한국문단의 가장 믿음직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환상과 실재를, 다정과 비정을, 재미와 리듬을 씨실과 날실 삼아 특유의 문체와 함께 매끄럽게 직조하는 탁월한 감각을 가진 그가, 소설집으로는 '그리고 남겨진 것들' 이후 5년 만에 네번째 소설집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를 선보인다.

이번 소설집은 염승숙의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진 소설세계를 경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집이자, 상실 이후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 곡진하게 쓴 비망록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불가해한 이 세계의 면면을, 읽을 수 없는 수만 가지의 이유를, 그럼에도 그것이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극도의 섬세함과 예민함으로 감각해 궁굴리고 공글린다. 평론가 오은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자들을 보고, 들리지 않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며, 존재하지 않는 구멍에 자발적으로 빠진 이 작가”는 미풍에도 흔들리는 풍부한 감수성과 무(無)의 소리조차 감각하려는 집요함을 통해 천천하게 다가오는 진실의 순간을 기다리고, 기록한다.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를, 작가 염승숙의 행보를 설명할 단어로 ‘포착’만큼 걸맞은 표현은 없을 듯싶다. 포착(捕捉). 잡고 또 잡음. 얼핏 포착이란 단어는 순발력을 함의하고 또 그것이 중요한 듯 보이지만, 염승숙의 세계에서 기회나 기미를 재바르게 알아차리는 것보다 더욱 종요로운 일은 ‘놓지 않음’에 있다. 세계의 균열을 예리하게 포착하되 예단하지 않을 것. 또한 포착하고 단면을 스케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단면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다각도로 헤아리는 것이 바로 염승숙만의 차별화되고 도드라지는 단편 미학이다. 염승숙의 소설은 빠르게 이해에 다다르지 않고, 빠르게 해소해버리지 않으며, 빠르게 화해하지 않는다.

비극적 폭력의 세계에서 오해와 짐작은 체화된 무력이 아니라 이에 맞서는 가장 온당한 강력이기도 할 터. 오래전부터 이어진 고독을, 어쩌면 생래적일지도 모를 고독을 다룬 이 소설들은 「추후의 세계」와 「거의 모든 것의 류」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옛 연인과의 한나절 해후를 담은 「추후의 세계」는 범죄로 아이를 잃은 ‘우중’과 우연으로 커리어가 몰락한 ‘나’의 비극 이후의 재회담이다. ‘하진’의 “눈과 손에서 쓰이는 단 한 줄의 아름다운 문장”이 되고 싶지만, “모르는 사람이 너무 갑자기 마음에 들어버리면 말로 표현 못할 자기혐오가 동반”되고 마는 ‘류’를 그린 「거의 모든 것의 류」 역시 사건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분투를 담은 묵직한 소설이다.

이 엄혹하고 무자비하고 불가해한 폭력의 세계 속에서도 피어나는 로맨스가 어쩌면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첫번째 ‘읽을 수 없는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씁쓸함을 동반한 이 로맨스는 난데없음이 아니라 차라리 필연적이다. 작가가 그려내는 인물은 오해라는 사랑을 쥔 사람들이자, 비극 이전의 온기를 기억해두었다 지금으로 옮겨오려는 사람들이며, 그렇기에 가장 내밀한 형태의 사랑은 연대의 모습으로까지 뻗어나간다. 작가는 “항상 자신과 자신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나누”는 사람들과 “묻지 않고 외면했던 무수한 순간들”(「작가와 그의 문제들」)을 기어코 소환해 절박한 심정이 되어 쓰고서 ‘배려’의 다른 얼굴일 ‘무심함’을 가장해 독자 앞에 내어놓는다.

염승숙의 소설 속에서 어제의 상참(傷慘)은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려는 상상이 된다. 그렇기에 부서지고, 가라앉고, 추락하고, 사라지는 세계는 무참하되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점차로 많은 걸 잊고 또 무수히 잃어버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남아 있는 건 여전히 남아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뭔가”(「충분히 근사해」)를 남긴다고 작가는 말한다. 단단하기에 흔들리는 사람들, 신중하기에 오해하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나는 지금 근사할까”(「충분히 근사해」)라고 회의하고 자문하는 사람이야말로 언젠가 근사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읽을 수 없이 아름다운 세계에는 아마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크게 울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앉아” “지구라도 꽉, 붙들고 싶은 심정이 되어”(「거의 모든 것의 류」) 글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난독의 세계”(「추후의 세계」)에 대한 목격담이자 “눈부신 두려움”을 마주한 증언의 모음집 『세계는 읽을 수 없이 아름다워』. 간절한 마음을 담아 꾹꾹 써내려간 단어로부터 시작하는 사랑의 기억술은 독자의 마음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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