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도 좋고 무당도 좋고
신부도 좋고 무당도 좋고
  • 유대칠
  • 승인 2019.08.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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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유대칠 칼럼

[위클리서울=가톨릭일꾼 유대칠]

박물관에 간다. 박물관에 가는 것이 자녀에게 도움이 된다는 글을 읽어서다. 하지만 박물관에 가야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냥 아는 것은 가야한다는 것뿐이다. 박물관에 가는 것, 딱 그뿐이다. 막상 박물관에 가면 무엇을 할지 모른다. 박물관에 왔으니 그만이다. 자녀의 목이 마를까 챙기고 배고플까 챙기고 그것이 전부다. 아이들 앞엔 이상한 과거의 유물들이 있지만 부모도 아이들도 무엇을 할지 모른다. 그냥 구경을 한다. 하지만 재미없다. 그저 유리관 속 오랜 과거의 물건들뿐이다.

나는 그냥 박물관에 간다
자녀와 박물관에 같이 갔다는 것, 그것으로 끝났다 생각한다. 그것이 전부다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실패다. 자녀에게 박물관은 무척이나 재미없는 곳으로 기억된다. 그저 이상한 과거의 물건이 유리관 속에 있는 곳일 뿐이다. 부모에게도 자녀에게 박물관은 박물관이 아니다. 그냥 가야하는 공간, 지루한 공간이다.

또 다시 박물관에 간다. 자녀에게 구경하라 하고, 복도 어딘가에 앉아 폰으로 재미난 세상 구경을 한다. 자녀도 대충 구경하는 척하다 자기들끼리 장난친다. 유리관 속 물건은 도저히 재미를 얻을 수 없다. 재미없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버티기 위해 장난을 친다. 그래야 그나마 재미난 곳으로 기억될 것이니 말이다. 박물관은 그렇게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결국 박물관이 아닌 어떤 재미없고 지루한 공간이 되어 버린다.

박물관을 즐기는 자녀가 되길 바란다면, 그냥 데려가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미리 전시 유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면 좋다. 공부해야 한다. 직접 자녀에게 일상의 언어로 재미나게 유물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재미난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성가시지만 공부해야 한다. 노력 없이는 안 된다.

 

사진출처=pixabay.com
ⓒ위클리서울/사진출처=pixabay.com

신부도 좋고 무당도 좋고
성당엘 다닌다. 같은 곳을 다니지만 그 모습은 참 다양하다. 성당을 다니면서도 여전히 점집을 찾는 이들도 있다. 아이의 출산일을 무당이나 역술인에 묻고 그 날 출산하는 이도 있다. 없는 것 같지만 정말 있다. 어딘가에서 직접 점보는 법을 배워 같은 다른 교우들 운세를 봐주기도 한다. 때론 점친 내용으로 인생 상담을 하기도 있다.

역술인이나 무당을 찾는 일, 그리고 그때 얻은 운세를 믿는 것이 성당을 다니는 자신의 모습과 문제없이 함께 이루어지는 이들이 있다.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무당이나 역술인을 찾아 짓고, 그 아이의 세례명은 성당 교우 혹은 신부와 고민하는 것이 어려움 없이 동시에 일어난다. 점집이 지어준 이름에 좋은 복을 준다는 세례명이면, 두 배로 복을 받으니 문제없이 함께 이루어진다.

제법 오래 성당 다녔다는 사람인데도 이러하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큰 성모상이 더 큰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이도 있고, 신부에게 성체를 영하지 않고 수녀에게 성체를 영하면 복을 덜 받기에 새치기하며 사제 앞에 서려고 자리를 바꾸는 이도 있다. 복을 받기 위해 말이다. 오랫동안 성당에 다녀도 이와 같다.

정말로 성당에 다니려면
자랑스러운 사회교리가 있다지만, 빨갱이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1891년 발표된 레오 13세 교종의 회칙 <새로운 사태> 이후 가톨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도 그들에겐 그저 빨갱이들 소리였다.

그냥 성당엘 간다. 원래 무당을 찾아 남을 이기는 비법을 묻던 그대로, 원래 이 나라 자본주의 속성에 익숙한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냥 성당에 간다. 한 본당의 일원이 되어 살아가도 사실 그렇게 크게 변한 것이 없이 성당에 다닌다. 노력하지 않으면 박물관은 지루한 곳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박물관은 박물관이 아니다. 그냥 지루한 곳일 뿐이다. 딴 일을 해서라도 시간을 보내야하는 지루한 곳 말이다. 성당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더 치열하게 변화해야 하는 곳이 성당이다.

<성경>과 ‘교부’에 대해 요약 정리해서 암기할 것이 아니라. 내 삶 가운데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부 때문에 내가 바뀌어야 한다. 삶이 바뀌어야 한다. 성당에 간다는 것은 예수를 믿겠다는 것이고, 예수의 삶으로 살아가겠다는 말이다. 이런 저런 초자연적인 기적보다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와 교부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분노들, 이기적 삶을 돌아보는 반성과 회심, 타인을 향한 사랑의 실천... 바로 이러한 것이다.

기억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그저 지식하나 더 암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변화를 위한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성당은 성당이 된다. 성당에 다닌다는 말은 어느 친목 단체의 일원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무당을 찾는 사람의 마음으로 찾아오는 곳도 아니다.

성당 모임에서 자신의 큰 아파트를 자랑하고,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이와 다투고, 서열을 결정하려 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무당과 역술인을 찾는다면, 과연 이런 삶이 성당에 다닌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삶에 대한 순수한 고민 속에서 성당을 찾아 스스로의 삶을 결단하려는 이들에게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는 이들이 스스로 신앙의 선배라며 목에 힘을 주고 있다면, 정말 그들은 성당을 다니고 있는 것일까?

작디작은 성당에서 권력으로 교우들끼리 다투고, 가진 재산을 자랑하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면, 성당은 그저 흔하디흔한 세상의 한 곳일 뿐이다. 친목단체나 취미동호회 모임처럼 말이다. 성당은 그런 곳이 아니다. 성당이 성당으로 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생각하며 신앙해야하고, 고민하며 신앙해야한다. 그렇게 변해야 한다. 그것이 성당을 다닌다는 것이다. 진짜 성당을 다닌다는 것이다.

<유대칠 님은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면서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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