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컨드 라이프
[신간] 세컨드 라이프
  • 이주리 기자
  • 승인 2019.08.2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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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무라드 지음/ 박명숙 옮김/ 문학동네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모두 지워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두번째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까?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주변 환경이 그대로라면 전혀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을 터. 그러나 정말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살던 집과 타던 차는 물론, 직업과 가족까지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의 삶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미디어가 나서서 모든 절차를 처리하고 지원해준다면?

투자금융사 모건스탠리의 전무 출신, 프랑스 대표 언론사를 소유한 알티스 미디어그룹을 이끌었던, 조금 특별한 이력을 가진 작가 베르나르 무라드가 그의 두번째 소설 『세컨드 라이프―인생을 바꿔드립니다』를 통해 새로운 소셜 픽션을 선보인다. 오늘날 프랑스 젊은 금융인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현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의 2016년 대선캠프에서 선거 자금 특별고문으로 활약했던 무라드는 “국가와 사회정의의 현대화”를 명목으로 삶이라는 자원과 기회, 운명을 재분배하려는 국가 거대 비밀 프로젝트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인의 삶을 조명하며 행복과 정체성, 인생의 우연과 필연, 정치적 유토피아와 미디어의 절대권력 등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국가 권력은 개인의 삶에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지독한 삶의 권태와 무기력에 빠져버린 마르크 바라티에. 매일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운 그의 머릿속엔 삶을 끝내고 싶은 생각뿐, 가족도, 회계 일도 그에게 삶의 활력이 되어주지 않는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아무 이유 없이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들, 매 순간 긍정의 힘으로 가득차 삶을 만끽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초인적인 자질을 타고난 것인지 그에겐 늘 의문이다. 그에게 우울과 회한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 듯하다. 스무 살 무렵엔 단편소설을 써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자 원고는 오래전 창고에 처박아두었다. 자신의 소설이 인정받지 못한 건 문단의 독단적이고 적대적인 시스템 때문이라는 피해망상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결국 자신의 마흔번째 생일날 자살을 결심한다. 그런데 빗속에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퇴근 무렵 사무실을 정리하고 떠나려는 순간, ‘구세주’라는 이름으로 메일 한 통이 도착한다.

발신자는 마르크의 계획을 모두 알고 있는 듯하다. 인생을 바꿀 기회가 있으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 전 연락을 달라며 ‘두번째 기회’를 제안한 사람, 그는 어떻게 마르크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던 계획을 알고 메일을 보낸 것일까? 마르크는 결국 최종 선택을 잠시 미루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정부를 위해 일한다”는 그의 기이하고 새로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로 한다. 어차피 포기해버리기로 마음먹었던 삶이었으니.

그에게 메일을 보낸 남자, 대통령이 거느리는 거대 미디어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피에르앙드레 노벨리는 마르크에게 ‘인생을 완전히 바꿔주겠다’고 제안한다. 마르크처럼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거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하는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정부 프로젝트의 일환인 리얼리티쇼에 출연해 수백만의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작위로, 아무런 대가 없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 마르크 바라티에는 자신을 좀먹던 절망과 고통, 공허감 속에서 아주 작게 빛나던 호기심을 발견한다.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기회의 균등한 분배’를 위해 구상되었다는 이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심한다.

티브이 리얼리티쇼에 출연한 열 명의 지원자들은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려 무작위로 삶을 맞교환한다.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우연을 통해 공평하게 재분배하여 내가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의 삶을 살아간다. 마르크 역시 완벽해 보이는 새로운 직업, 새로운 신분증, 새로운 아내, 새로운 집에 적응하며 그가 삶을 승계받은 남자 아르노 드몽탈이 되어간다. 그리고 모든 것이 뒤바뀐, “잘 짜인 한 편의 멋진 소설 같은 삶”에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본다. 정부의 첫 ‘실험 대상’이 된 그의 사생활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려는 미디어, 변해버린 옛 가족들, 살가운 듯하면서도 어딘지 그늘이 엿보이는 새 딸의 눈빛 등 그가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은 전보다 더 많지만, 마르크 바라티에는, 아니 아르노 드몽탈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번째 기회를 헛되이 날려보내지 않으려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아르노 드몽탈의 기이한 취미와 그가 감춰온 비밀, 그리고 국가가 감춰온 더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그는 점차 희미해져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이 아닌 또다른 자아에 잠식당하지 않으며 자신이 꿈꾸던 “소설 같은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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