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강정구 교수-3회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2회에서 이어집니다.>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 ‘북핵 폐기’ 내지 ‘비핵화 프로세스’, 관점에 따라서는 어디까지가 폐기이고 비핵화인지 규정하기 힘든 상황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남북을 포함 주변 강대국들이 어떤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 핵동결과 비핵화는 전혀 다른 의미다. 동결은 핵폐기 또는 비핵화의 출발일 뿐이다. 비핵화 프로세스는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 ICBM 등의 순차적 폐기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진행과정에 따라 또 진행과정에 맞춰 미국과 남한이 평화협정이나 평화군축 불가침조약 등을 제대로 이행하느냐에 달려있다. 2006년 북의 1차 핵시험 이후 2.13합의에 따라 북미 간에 비핵화평화체제 4단계까지 합의하고 이행에 들어간 적이 있다. 당시 북은 1-2차 합의를 전적으로 이행하고, 이에 따라 냉각탑까지 폭파했다. 그렇지만 다음 단계인 평화체제 구축인 3-4단계는 진입도 못하고 부시의 합의 파기와 오바마의 기피로 결국 무산됐다.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도 미국의 합의 이행률은 1/4정도 였고 북은 거의 100%였다. 그렇지만 부시는 2002년 켈리 특사를 북에 보내 고농축우라늄 생산을 북이 인정했다는 거짓말로 협정을 파기했다. 지금까지 북미 핵합의를 파괴한 것은 100% 미국이지 북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미국이 이런 파기를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평화협정 등은 중국, 미국, 남북이 당사자이므로 중국과 유엔 등이 미국의 변칙을 허용하지 않게 해야 한다. 실제로 평화체제 구축의 감시단과 집행관으로 중국, 러시아, EU, 유엔 등을 동참시킬 필요가 있다.

 

-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선 주변국들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된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주변국들이 통일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데.

▲ 미국과 일본이 통일을 원치 않는 것은 분명히 드러났다. 미국과 일본은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통해 중국을 포위봉쇄 하는 ‘아시아태평양 재균형’이나 '인도태평양 구상'을 전략으로 설정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이런 구도가 허물어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반통일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남북과 시베리아 및 중국 본토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철도, 가스관, 송전망 등의 구축으로 낙후된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의 연해주와 시베리아 등의 개발과 활성화를 전략적인 과제로 선정하고 있다. 곧 통일이 되면 중국의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발 전략이 엄청난 탄력을 받게 된다. 구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친통일적일 수밖에 없고 미일은 반통일적일 수밖에 없다.

 

- 현재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 남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지.

▲ 미국발 대중(對中) 무역전쟁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대 한국 무역전쟁을 통해 한.일 분업체계에서 한국을 하위체계 속에 계속 묶어두거나, 동북아나 세계질서에서 일본의 위상이 한국에 의해 엎어치기나 훼손을 결코 허용할 수 없는 구도를 만들겠다는 장기적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도발을 개탄하기보다 한반도 새판짜기를 재촉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계기로 한.미.일 3각 군사동맹으로 중국을 포위봉쇄하려는 미국의 신냉전 전략에서 발을 빼야 한다. 미국 첨병 구도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70여 년 전 냉전의 첨병으로 몰려, 분단과 남북적대 구도가 강제된 쓰라린 역사의 전철을 더 이상 밟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친일을 바탕으로 외세의존을 체질화한 채 기득권체제를 공고히 해 왔던 이 땅의 정당, 언론, 정치인, 사회단체, 개인 등을 자연스럽게 솎아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누가 맹목적 종일(從日)주의자이고 토착왜구인지 이번을 계기로 저절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 시민 일반이 이들을 제대로 판별할 수 있게 돼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늦게나마 내릴 수 있는 획기적 전환이 이뤄지길 고대한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 등을 계기로 평화시대를 맞아 한.미.일 분업체계에서 벗어나 남북 간의 분업체계와 한.중 분업체계를 확충하고 정착화 해야 할 것이다. 통일 밑거름으로 남북분업체계 확충은 물론이거니와, 우리 수출의 1/3을 차지하고 13억 인구의 세계 최대시장인 중국과의 분업체계를 미국과 일본보다 중시해야 하는 것은 통계숫자가 명시하는 바다. 또한 기존의 군사동맹체계에서 벗어나 동반자와 우호친선협력체계로 관계 설정을 평화시대와 통일시대에 걸맞게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나아갈 경우 오히려 남북 사이 평화와 통일에서 핵심적인 사항에 근접하게 돼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구축에 일대 전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일본의 무역전쟁을 위기로만 볼 게 아니라 기회로 삼아야 한다.

 

- 금년은 3.1운동-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을 맞은 해다. 남북 관계를 떠나 화합을 도모해야 할 한국 내부 사정도 좋지 않다. 남남 내부 갈등은 여전하다. 여전히 친일, 좌우 갈등 문제 등은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구조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촛불항쟁의 얼을 발화하고, 탈냉전평화통일시대를 활짝 열고, 일본 발 무역전쟁을 기회로 삼아 새판짜기를 진척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기존 외세의존 주류권력체계 대신 새로운 민족민주민중-자주평화통일지향의 신주류를 형성해 구조적으로 친일친미 잔존세력이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 경우 북과의 평화통일 행로가 가속화 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발표 ⓒ위클리서울/한국공동공동취재사진기자단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발표 ⓒ위클리서울/한국공동공동취재사진기자단

- 일각에서는 이제 와서 굳이 통일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가진다. ‘그저 평화롭게 각자 살면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마인드라고 할 수 있겠다.

▲ 천진난만한 생각이다. 통일이 되지 않으면 주위의 열강이 끊임없이 남북을 이간질 시키고 편 가르기를 해서 남북 사이 대립과 적대를 부추긴다. 지난 75년의 분단체계가 그랬고 지난 역사가 그랬다. 삼국시대, 임진왜란 등에서 조선을 분할해 각기 열강이 차지하려 했고, 이는 근세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우리에겐 통일이 바로 평화다. 한국전쟁 이후도 한반도는 전쟁위기의 연속이었다. 마치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것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말할 필도 없거니와 이후 냉전기간(1953-1989년)에서의 1962년 10월 쿠바미사일위기, 1968년 1월 미국 정탐선 푸에블로(Pueblo) 나포사건 전쟁위기, 1969년 미국 EC121 정찰기 격추사건 전쟁위기, 1976년 8월의 판문점 미루나무사건 전쟁위기 등 연속이었다. 또 탈냉전기간에는 1991-1992년 이라크전쟁(걸프전쟁) 종결 직후 120일 전투시나리오 등 제2의 한국전쟁위기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6월엔 ‘한 두 시간만 늦었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었다. 이어 국방장관 페리와 핵 전담대사 갈루치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기적이라고 지적한 1차 영변 핵위기, 미국의 인공위성 사진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단정 짓고 모의 핵폭탄 BDU-38로 핵전쟁 실전연습까지 벌였던 1998-99년 금창리 핵위기, 휴전 이후 최초의 남북 정규군에 의한 무력충돌이라는 1999년의 1차 서해교전과 2002년의 2차 서해교전, 2002년 한국 정부에 통보도 하지 않고 대북 선제공격을 비밀리에 한다는 작전계획 5027-02와 콘 플랜 8022라는 작전계획을 발판으로 한 2003년 9-12월 전쟁위기, 2010년 연평도 보복 포격 당시 이명박 정부가 그때 북폭을 하지 않았던 게 천추의 한이라고 말할 정도로 전면전 위기로 몰렸던 12.20전쟁위기 등이 있었다. 근래엔 김정은 참수작전, 코피전략, 블루라이트닝 등으로 한반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 수많은 전쟁위기에서 12.20전쟁위기와 서해교전을 빼고 나면 모두 미국이란 외세가 유발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굳이 통일을 해야 하나’라는 식의 질문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 남북 관계가 과거보다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통일은 요원해 보인다. 물론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고 많은 전문가들의 고언한다. 어떤 문제 의식으로 통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 세계질서는 중미 세력교체기로 접어들어 신냉전체제로 진입했다. 한미일 3각 군사동맹에 편입되어 중국-러시아와 대결구도로 가면 냉전초기에 한국전쟁을 강제당한 것처럼 한반도가 또 다시 참화에 휩싸일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남북 간에 형식적이고 상징적인 통일을 하루 빨리 이룩할 필요가 있다. 신냉전체제 하에서도 미국과 중국이 대타협을 통해 한반도의 영구분할을 꾀할 수 있다. 마치 통일 이전의 동서독 영구 분할 전략처럼 말이다. 이미 키신저가 1973년대 제안하고 박정희가 발표한 6.23선언은 실제로는 영구분단 선언이었다. 제2의 6.23선언이 강요될 우려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상징적인 통일이라도 이룩해 한반도가 통일국가임을 못 박아야 한다. 인권을, 곧 사람이 사람답게 존엄성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조건을 부여받을 권리를 위해서도 통일은 긴요하다. 첫째, 통일되면 평화가 보장돼 생명권이 보장된다. 둘째, 통일되면 남북경제공동체가 형성되어 비약적 통일편익을 가져와 민중의 생존권이 월등히 높아진다. 셋째, 국가보안법 철폐, 인위적 간첩만들기 등이 사라져 자유시민권이 신장된다. 곧 인권의 핵심범주인 생명권, 생존권, 자유시민권이 비약적으로 증진되는 인권세상을 위해서도 통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고 운명이다.

 

- 우리사회 원로로서 남북 문제, 국내 현안과 관련 덕담을 건네자면.

▲ 역사에서는 결정적 전환기(critical historical period)라는 게 있다. 결정적 시기인 10-20년 사이 선택한 역사행로가 이후 100년 200년의 역사를, 때로는 몇 백 년을 좌우하게 된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중국의 개혁개방의 경우롤 보면 결정적 시기인 10~20년 향방이 그 이후를 거의 결정지었다. 지금 바로 이 시점이 한반도 역사의 결정적 전환기이다. 탈냉전평화통일시대에 진입한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눈앞에 매몰되지 말고 한반도를 넘어서 세계를 보는 넓은 안목으로 먼 훗날을 내다봐야 한다. 탈냉전평화통일시대의 역사적 과제, 우리 모두가 수행해야 할 민족사적 책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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